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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투맨인터뷰]위성우 감독 "인자한 지도자? 악역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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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으로 존재 이유를 증명해야하는 프로 스포츠에서, 지도자들은 한해한해 버티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기대했던 성적에 못 미치면 소모품처럼 버려질 수밖에 없는 숙명. 충분한 시간,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코치로 6시즌, 감독으로 5시즌, 총 11시즌 연속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린 지도자가 있다. 여자 프로농구 아산 우리은행 위비 위성우 감독(46)이다. 신한은행 코치로 통합 6연패를 함께 했던 그는 우리은행 사령탑에 올라 꼴찌팀을 통합 5연패로 이끌었다. 2016~2017 정규리그에선 33승2패, 승률 9할4푼3리, 거짓말같은 대기록까지 수립했다. 아무리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떨어지는 여자농구라고 해도, 이쯤되면 연구대상이 될만 하다.

선수 시절 크게 주목받지 못했던 수비전문 식스맨 출신. 선수 경력과 지도자 능력은 무관하다는 걸 분명하게 보여줬다. 지난 주 스포츠조선 회의실에서 마주한 위 감독은 시종일관 자세를 낮췄다. 우리은행이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시기에 감독을 맡아 운이 좋았다고 했다. "관심을 가져주는 건 고맙지만, 여전히 어색하다. 우승 기분은 3일이면 가신다"고 했다. 겸양이 지나치면 의심을 사게 된다. 그런데 1시간 30분 인터뷰가 진행될수록, 마음 한구석 자리했던 의구심이 안개걷히듯 사라졌다. 혹독한 훈련으로 악명높은 위 감독은 "나도 좋은 소리 듣고 싶고, 인자하고 존경받는 지도자가 꿈이다. 몰아붙이면 뒤에서 욕한다는 거 잘 안다. 하지만 능력이 부족한 나는 그렇게 할 수 없다"고 했다.



-코트에선 혹독한 조련사, 뛰어난 승부사다. 집에선 어떤 남편, 아빠인가.

▶코치, 감독 12년하면서 올해 처음 후회했다. 시즌 중에 아내가 몸이 아파 수술을 받았다. 병원에 누워있는 아내를 보고, 이제까지 한 번도 그런적이 없는데, '내가 왜 이러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시즌 중이라 잠깐씩 아내 얼굴보러 가는 일밖에 할 수 없었다. 선수, 지도자하면서 아이가 커가는 걸 제대로 못 봤다. 어느날 보면 기던 아이가 걷고 있고, 어느날 보면 학교들어가고 그러더라. 대학 2학년 때 만나 7년 연애해 결혼한 아내는 말이 별로 없다. 지금까지 힘들다는 얘기 한 번 안 했다. 집사람한텐 징크스가 있다. 경기있는 날 집안 청소를 하는 거다. 병원에 있을 때 청소 걱정을 하더라는 얘기를 들었다. 코끝이 찡했다. 이런 걸 보면 나 혼자 잘 해서가 아니라, 아내와 주변 사람들이 기를 모야주셔서 잘 된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일도 잘 하고 가정도 잘 챙기는 분을 보면 존경스럽다. 고1 딸이 있는데, 엄한 아빠다. 엄마 아빠가 무뚝뚝한 부산사람이라 그런지, 아이도 그렇다. 누군가 '위(魏)씨? 특이한 성씨네'라고 했더니, '우리 아빠가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이에요' 하더란다. 내색은 안 했지만 아빠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거다. 버릇는 말, 행동하면 호되게 야단친다. 선수들한테 인성, 예의를 강조하는데, 내 아이가 그러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지도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여자팀이 남자팀보다 힘들다고 한다.

▶10년 넘게 여자팀에 있다보니 여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웃음) 힘들다. 남자팀 지도자는 안 해봤으나 정확히는 모르겠으나, 여자팀은 아기자기한 디테일은 있다. 여자농구가 재미도 있고, 사제간의 정도 남자팀보다 낫다. 함께 있을 때 잘해주지 못했는데도 은퇴한 선수가 '선생님, 밥사주세요' 하고 찾아온다. '스승의 날'엔 손발 오그라들지만 꽃도 달아주고 그런다.

-남자팀에서 감독 제의가 있었다고 들었다. 새로운 영역에 도전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나.

▶간접적으로 의사를 물어온 적이 있다. 그런데 나는 한우물을 파면 다른 걸 못하는 성격이다. 두 가지 일을 못한다.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준비가 너무 안 돼 있다. 조금 더 공부해야 한다. 제의가 들어와도 100% '노(NO)'다. 여자농구 발전을 위한다고 자주 얘기하고도 별로 기여한 게 없다. 선수 육성 등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우승을 밥먹듯이 하는데 위성우 리더십의 비밀, 하나만 알려달라.

▶선수들에게 내가 부족하다는 걸 다 얘기한다. 작전을 지시하면서 '잘 될 지 모르지만, 한 번 따라와 달라'고 한다. 물론, 잘 안 될 때가 있다. 그러면 솔직히 잘못 판단했다고 말한다. 선수들은 다 안다. 그래서 모르는 걸 아는체 안 한다. 우승 몇 번 했지만 가르치면서 확신 안 서고, 잘 못할 수 있다. 창피하다고 안 되는 걸 끝까지 강요하면 불신이 생긴다. 잘못은 인정해야 도움 받을 수 있다. 안 되는 걸 알면서 조용히 그대로 가면, 함께 죽으러 가는 거나 마찬가지다.

-여자농구를 대표하는 지도자다. 위상을 체감할 때가 있을텐데.

▶내가 잘 나서 우승한 게 아니다. 알아보고 그러면 어색하다. 우승 기분은 정말 잠깐이다. 선수들에게 '우승하면 3일 기분 좋다'고 말했다. 3일 지나면 관심에서 멀어진다. 첫 해 우승했을 때, 선수들이 허탈하다고 하더라. 나는 신한은행 코치로 여러번 경험했다. 사실 우승하면 남는 건 보너스, 휴가 밖에 없다.(웃음)

-우리은행하면 혹독한 훈련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우승할 때마다 선수들이 코트에서 감독을 밟는데, 점점 강도가 세진다는 얘기가 있다.

▶올해는 카메라에 잘 안 찍혔다고 해서 두 번 밟혔다. 이전과 좀 다른 것 같다. 첫 해와 두 번째 우승 때는 선수들이 내가 미워서 밟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밟혀도 된다고 생각했다. 독한 훈련을 견뎌냈으니까.(웃음) 계속 우승하니까 이제는 세리머니가 된 것 같다. 정말 내가 미우면 우르르 몰려나와 무자비하게 밟아야하는데, 그런 느낌은 아니었다. 재미있는 게, 진짜로 욕 많이 먹고 야단 많이 맞은 선수보다 그렇지 않은 선수가 더 적극적이라는 거다.(웃음)

-우승이 쌓이면 훈련 강도가 약해지지 않나.

▶처음 왔을 때 우리 팀은 꼴찌였다. 첫 해는 정신없이 하다가 우승했고, 2년째 우승했을 때도 우리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승을 하고 다음해에 꼴찌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1~2년 때는 훈련량을 줄이기 않았다. 두 번 우승하니 여유가 조금 생겼다. 너무 강하게 몰아붙이면 부러진다는 생각을 했다. 선수들이 버텨내기 어려울 것 같았다. 3년차부터 훈련 강도를 조금 풀고, 포인트 잡아 연습했다. 불필요한 부분은 걷어냈지만, 중요한 부분은 타협하지 않았다.

-외국인 선수 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팀이 적지 않다. 외국인 선수를 잘 컨트롤해 왔는데, 특별한 노하우가 있나.

▶가장 힘든 부분이다. 처음이 중요하다. 외국인 선수가 처음오면 '간'을 본다. 툭툭 던져본다. 먹히면 되는 좋고, 아니면 안 되고 이런 식이다. 우리 팀에선 그런 방식이 안 통한다는 걸 보여줬다. 모든 외국인 선수가 훈련 시간이 길다고 불평한다. 리바운드 훈련을 할 때 외국인 선수를 열외로 하더라도, 반드시 코트에서 쉬게 한다. 또 '너희들을 위해 팀이 존재하는 게 아니다'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외국인 선수들은 자기가 한 실수를 남에게 떠넘기려고 때가 있다. 잘 하는 선수한테는 말을 못한다. 잘 보여야 하니까. 못하는 선수한텐 불만을 표출한다. 한 외국인 선수에게 경고를 했는데도 신인급 선수에게 계속 그렇게 행동해, 짐을 싸 돌아가라고 했다. 자기 잘못을 아니까 사과하고 팀에 녹아들더라. 물론, 자부심을 심어주는 것도 중요하다. 일종의 밀당이다.

-유재학 울산 모비스 감독과 비슷한 방식인 것 같다.

▶선수 마지막 해에 유 감독님과 함께 했다. 은퇴할 무렵이라 주로 벤치에 있었다. 조금 더 많이 배우고 왔으면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 따라한 건 아니고 성적을 내려고 하다보니 그렇게 되더라. 나뿐만 아니라 많은 지도자들이 유 감독님을 롤모델로 볼 것이다. 선수 때 모신분이라 내겐 어려운 분이다. 우승하면 축하 연락을 주신다. 그런분에게 칭찬받으니 기분이 좋다. 농구가 단체 스포츠지만 개인 스포츠이기도 하다. 공은 한 개고 공 따라 움직이지 않나. 축구, 야구와 달리 농구는 전원 공격 전원 수비다. 공격한만큼 수비도 해야한다. 공격만 하고 수비만 한다? 말이 안 된다. 희생하는 선수도 있어야 하는데, 명분이 있어야 한다. 선수들에게 연습하면서 주입해줘야 한다. 집사람이 그런다, 제발 선수들에게 인상 좀 쓰지 말라고. 선수들에게 뭐라고 하지 말라고 한다. 그런 거 좋아하는 사람 없다. 나도 좋은 소리 듣고 싶고, 인자하고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는 게 꿈이다. 독하게 하면 뒤에서 욕한다는 거 잘 안다. 하지만 악역도 해야 한다.

-전주원 코치, 박성배 코치와 상대팀 감독으로 만난다면 재미있을 것 같다.

▶전 코치는 감독 자리가 나면 1순위로 갈 거다. 본인이 추구하는 농구가 있을텐데, 처음부터 준비하라고 했다. 전 코치나 박 코치를 상대팀 감독으로 만난다면 긴장은 좀 할 거 같다.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을테니까. 하지만 걱정 안 한다. 처음엔 손해를 보겠지만, 1~2년 되면 또 상대를 알게 되지 않을까. 경쟁하면서 함께 성장하면 된다.

-24승1패로 정규리그 우승을 확정짓고, 남은 10경기에서 9승1패를 했다. 선수들에게 동기부여가 어려웠을텐데.

▶우승이 결정났는데, 기록 세우자고 하면 웃기는 거 아닌가. 주변에서 자꾸 기록 얘기를 하니까, 말은 안 했지만 최고 승률을 생각하게 되더라. 만약, 그때 기록 얘기를 했다면 불만이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무언의 분위기'가 있었다. 이기는 게 습관이 되다보니 지는 데 적응이 안 되는 거다. 우승 확정 후 다음 경기에서 KB스타즈에 졌지만 아무 얘기 안 했다. 그런데 선수들 눈빛이 달라졌다. 지고싶지 않다는 눈빛이었다.

-다음 시즌 통합 6연패에 도전하는데, 삼성생명-KB스타즈 전력이 만만찮을 것 같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단 한번도 우승을 목표로 하지 않았다. 3년 계약하고 첫 해에 안 되면 그만두려고 했다. 모든 걸 쏟아붓고 안 되면 2,3년 더 해봐야 무슨 소용있나. 시즌을 시작할 때 선수, 코치들에게 '올해 우리가 플레이오프는 가겠냐'고 묻는다. 이게 본심이다. 전주원 코치는 '감독님은 항상 위는 안 보고 아래만 본다'고 말한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다. 삼성생명, KB스타즈 다 좋아졌다. 사실 올해도 우승할 운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승아가 팀을 떠났고, 양희지가 안 좋았다. 외국인 선수도 후순위로 뽑았다. 리빌딩 생각까지 했다. 우리 팀에 잘 맞는 외국인 선수가 올 줄 몰랐다. 팀 사정상 박혜진을 포인트가드로 쓸 수밖에 없었다. 박혜진은 정통 포인트가드는 아니지만 새로운 걸 발견했다. 대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카드인데, 잘 맞아떨어졌다. 이런걸 보면 나는 분명히 유능한 지도자가 아니다. 혜진이가 너무 잘 해주면서, 전화위복이 됐다. 내년 시즌에도 우승 생각 안 한다.

-MVP는 박혜진이지만 마음 속 MVP는 임영희라고 했다. 어떤 의미인가.

▶박혜진(27) 임영희(37), 두 선수와 함께 한다는 건 내게 복이다. 임영희는 굉장히 열심히 운동하는데 소극적이었다. 내 선수시절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그런데 다그칠수록 본인도 모르는 능력이 나왔다. 그 정도 레벨이라면 거만할 수 있는데 한결같다. 시즌 끝나고 휴가를 더 줘도 한번도 더 쉰 적이 없다. 오히려 더 일찍 들어와 운동하다. 연습 안하면 느슨해져 지금 자리를 놓칠까봐 그러는 것 같다. 우리 나이로 올해 서른여덟이다. 더 잘 해주고 싶지만 게임 못하면 크게 질책한다. "그 따위로 하려면 그만두라"도 독하게 야단치면, 조용히 '죄송합니다' 한다. 그리고 다음날 또 열심히 운동한다. 이번 정규리그 MVP를 받은 혜진이가 챔피언결정전 때 찾아와서 그러더라. '감독님, 저는 지난해(챔피언결정전 MVP)도 받았으니까, 올해는 영희언니가 받게 할 수 없을까요"라고. 내가 팀을 제대로 끌어왔구나 생각했다. 지난해 정규시즌 때 영희가 잘 했다. 당시 영희가 '감독님, 저는 받아봤으니까 (양)지희가 받았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그 나이에 본인이 받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겠나. 마음속으론 이번 챔피언결정전에서 영희가 MVP를 받았으면 했다. 1,2차전 기록이 혜진이랑 영희가 비슷했다. 그런데 3차전 전반에 영희가 너무 부진했다. 상을 의식해서 그런지 소심한 플레이를 한 거다.(임영희는 위 감독 부임 첫 해인 2012~2013시즌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MVP, 2013~2014시즌 MVP를 수상했다. 박혜진은 2016~2017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MVP에 올랐다)

-여자농구에서 터무니없는 슛이 자주 나온다는 지적이 있다. 우리은행 독주가 리그 전체 수준이 떨어져 가능한 건 아닌가.

▶요즘 선수들은 운동 끝나면 휴대폰만 본다. 우리 어릴 때는 농구밖에 없었다. 농구로 빵내기, 과자내기 했다. 인천아시안게임 여자대표팀 감독을 맡았을 때, 훈련 끝나면 남자대표팀 훈련장을 찾았다. 유재학 감독님이 슈팅 훈련을 보면서 '어휴, 또 빽차(에어볼·슛한 볼이 림에 맞지 않는 경우를 뜻하는 농구 은어)를 날리네. 어떻게 국가대표가 연습 때 빽차를 날리냐'라며 혀를 차더라. 그런데 여자농구에선 더 자주 나온다.(웃음) 더 많은 시간을 농구에 투자해야 한다. 조금 더 열정을 갖고 해야 한다. 프로는 사과다. 던져놓은 사과(샐러리캡)를 여럿이 쪼개먹는 거다. 능력좋은 선수가 반을 가져갈 수도 있다. 요즘 선수들은 한 조각 챙기면 더 먹을 생각을 안 한다. 너무 쉽게 만족한다.

-지난해 역대 최고 승률을 기록했다. 더 높은 승률이 가능할까.

▶기록은 허망한 거다. 아무도 기억 못한다. 올림픽 기록이라면 평생 가겠지만…. 좋은 선수 뽑아 도약의 발판이 마련됐을 때 우리은행에 왔다. 운이 좋았다. 하지만 이게 영원할 순 없다. 신한은행에서 이미 경험했다. 올라왔으니 내려가는 시기가 있을 것이다. 내가 걱정하는 건 통합 6연패가 아니라, 우리가 꼴찌를 해도 상대가 쉽게 생각하지 못하는 팀을 만드는 것이다. 과도기가 와도 연착륙시켜 다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단단한 팀을 만들어야 한다.

-최고 대우로 재계약 얘기가 나온다.

▶성적을 낸만큼 대접받는 게 프로지만, 이미 6개 구단 감독 중 가장 많은 연봉을 받고 있다. 지금도 충분히 많이 받고 있다. 많이 받으면 그만큼 부담이 더 커지는 거 아닌가.(웃음)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