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 피규어(캐릭터 모형), 게임, 무선조종(RC) 자동차 등의 '덕후'(마니아) 소비자들이 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덕후는 일본어 '오타쿠'(おたく)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는 신조어다. 원래 '특정 분야의 정보나 관련 상품, 지식을 적극적으로 수집하는 사람'을 뜻하는 오타쿠가 '덕후', '오덕'이라는 말로 변형돼 쓰이고 있다.
특히 소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하는 이들은 취향을 소비로 표현하는 '위너 소비자'로서 취미 생활에 필요한 제품과 컴퓨터·오디오·카메라 등 IT기기에 돈을 아끼지 않는다. 100만원에 달하는 고가임에도 지난해 10월 국내에서 애플의 신작 스마트폰 아이폰7과 아이폰7 플러스가 출시됐을 때 제일 처음으로 구매하기 위해 3박 4일을 기다린 소비자들도 대표적인 덕후로 볼 수 있다.
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전반적인 소비 침체에도 최근 수년간 게임, 장난감, 드론 등 덕후들이 찾는 품목의 판매량이 매년 두 자릿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SK플래닛의 온라인쇼핑사이트 11번가에서 완구, 드론 등 취미용품의 최근 1년(2016년 3월∼2017년 3월) 판매액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55% 증가했다. 이중엔 990만원에 달하는 초고가 드론(모델명 'DJI Inspire 1 RAW 듀얼 리모트 드론')도 판매되고 있으며, 160만원대 'DJI 매빅' 드론은 고가군에서는 비교적 대중적(?)인 모델로 뽑히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물량 부족으로 인해 사전 예약판매를 해야 손에 넣을 수 있는 실정이다. 최근 TV 인기 예능프로그램인 '미운우리새끼'에서 가수 김건모의 수집품으로 드론이 등장했듯이, 경제력이 있는 성인 남성들 중 드론을 즐기는 인구가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드론 이외에 11번가 취미용품 카테고리에선 모형·조립식 장난감과 보드·테이블 게임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 품목의 판매액은 최근 2년간 21∼47%까지 늘어났다.
특히 모형·조립식 장난감의 경우, 최근 1년(2016년 3월~2017년 3월)사이엔 39%의 성장률을 보여줬다. 앞서 2015년 3월부터 2016년 2월까지의 성장률 또한 40%로 상당히 높다.
지난해 큰 인기였던 PC 게임 '오버워치'를 즐기기 위해 높은 사양의 PC 제품이 필요해지자 게임 전용 모니터 판매량이 485%나 증가하기도 했다.
온라인 쇼핑사이트 G마켓에서는 전기로 충전해 바퀴 1∼2개로 움직이는 전동 휠 등 전기 레저 제품 판매량이 2015년에 전년보다 약 11배(1116%)나 폭증했다. 지난해 역시 전년 대비 201% 증가했다.
특히 최근엔 웬만한 경차 값인 1000만원 이상 되는 고가 전동휠까지 시장에 나와 눈길을 끌었다.
또한 피규어 판매액도 2014년에 전년대비 45% 증가했으며 2015년과 지난해도 각각 54%와 12% 늘었다.
RC헬기·RC자동차 등 모형·무선 조종 제품도 이 기간에 18∼136%나 판매가 증가했다. 이와 관련 SK플래닛 11번가 취미용품 담당 최지현 매니저는 "경기불황으로 다른 부분의 지출은 줄이더라도 본인이 좋아하고 관심 있어 하는 분야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면서 "다른 사람의 눈엔 낭비로 보일 수도 있지만, 구매자에게 기쁨을 준다는 측면에서 제품 나름의 효용이 있는 것이다. 외로운 어른의 동심을 자극하는 키덜트 상품이 상대적으로 고가인데도 판매가 꾸준히 늘어나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설명했다. 키덜트는 어린이(kid)와 어른(adult)의 합성어로 장난감과 캐릭터 등을 좋아하는 아이 감성을 지닌 어른을 뜻한다.
이처럼 '덕후' 소비가 주로 이뤄지는 온라인 쇼핑사이트들은 이들을 잡기 위해 다양한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옥션은 지난 2월 '올 어바웃 키덜트'(All about KIDULT)라는 키덜트 전문관을 열었다. 올 어바웃 키덜트에는 한정수량으로 제작돼 100만원을 넘는 희귀 피규어를 비롯해 '스타워즈' 시리즈와 '원피스', '진격의 거인' 등 유명 영화와 만화 캐릭터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가격도 만만치 않아서, 이중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제어할 수 있는 '배트맨 배트모바일 텀블러 앱컨트롤'은 143만7000원에 팔리고 있다. 100만원이 훌쩍 넘는 드론들도 역시 잘 팔린다.
업계에선 이러한 현상이 시장이 성숙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업계 관계자는 "한 영역을 깊이 파고들어갈 시간과 열정, 정보수집 능력 뿐 아니라 경제적 여유까지 있어야 덕후로서 소비를 할 수 있다"면서 "성숙한 시장에서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자기 나름의 취향을 소비로 연결한 것이니 존중하는 분위기가 사회에 자리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전상희 기자 nowater@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