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월드컵은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순간이다. 태극전사들은 홈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달성하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2017년. 한국 축구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진출에 도전하는 한국 대표팀은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1~5차전에서 사선을 넘나들었다. 다행히도 홈에서 치른 우즈베키스탄과의 5차전에서 2대1 역전승을 거두며 급한 불은 껐다. 그러나 여전히 살얼음판이다. 한국은 3승1무1패(승점 10점)를 기록하며 1위 이란(승점 11점), 3위 우즈베키스탄(승점 9점)과 치열한 순위 쟁탈전을 벌이고 있다. 월드컵 본선 직행권은 조 1, 2위에게만 주어진다. 조 3위는 플레이오프(PO)에서 살아남아야만 월드컵 무대를 밟을 수있다. 위기의 순간, '젊은 형님' 차두리와 설기현이 소방수로 나섰다.
지난해 10월이었다. 2015년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한 차두리가 대표팀 코치로 '깜짝' 복귀했다. 논란의 소지는 있었다. 차두리는 독일에서 지도자 연수중으로 대표팀 코치에 필요한 A급 자격증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유럽축구연맹(UEFA) B급 지도자 자격증을 가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대한축구협회는 차두리를 전력분석원 타이틀로 대표팀에 합류시켰다.
그만큼 절박한 상황이었다. 슈틸리케호는 앞서 열린 이란 원정에서 0대1로 패했다. 유효슈팅은 '0'개에 그쳤다. 무엇보다 슈틸리케 감독의 '소리아 발언'으로 분위기는 가라앉을대로 가라앉았다. 감독과 선수를 하나로 묶어줄 중재자, 적임자는 차두리였다.
효과는 있었다. 선수들은 물론이고 감독의 굳은 신임을 얻었다.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한 차두리는 한국이 우즈베키스탄을 제압하는데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캡틴' 기성용은 21일 중국전을 앞두고 가진 공식 인터뷰에서 "차두리 분석관과는 경기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한다"며 "현역 선수들과 대표팀 생활을 함께 했었기에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선수로서 경험이 많아 조언을 해준다. 선수들도 힘을 받고, 나도 도움을 받는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차두리의 활약 덕분일까. 또 한 명의 한-일 월드컵 주역이자 '젊은 형님'이 대표팀에 합류했다. 설기현이다. 2월 대표팀에 합류한 설 코치는 "중요한 시기에 대표팀 코치로 합류하게 돼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개인적으로는 큰 영광이다. 슈틸리케 감독을 잘 보좌해 국민께서 원하는 러시아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수있도록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다시 뭉친 '설-차'는 23일(한국시각) 중국 창사 허룽스타디움에서 열리는 최종예선 6차전에 동시 출격한다. 중국전은 러시아월드컵의 분수령이다. 6차전에서 승리할 경우 순위 싸움에서 유리한 고지에 오를 수 있다. 반면 중국전에서 패하면 슈틸리케호는 또 다시 풍랑에 휩싸이게 된다.
쉽지 않은 대결이다. 상대는 변했다. 신임 감독을 등에 업고 나온다. 새 단장을 마친 중국이 어떤 모습으로 그라운드에 나타날지 쉽사리 예측할 수 없다. 게다가 한국과 중국은 최근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갈등이 최고조에 올라 있다. 어수선한 상황인 만큼 선수들의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는 '젊은 형님' 설기현과 차두리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 선수에서 코치로 대표팀에 재승선한 두 젊은 형님이 후배들을 이끌고 중국 안방에 공한증을 다시 펼쳐보일 수 있을까. 벤치에서 보내는 그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관심이 모아진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