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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부터 탈락까지, 대표팀 사령탑들의 명과 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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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대표팀 감독직을 '독이 든 성배'라고 해도 좋을까. 잘하면 영웅으로 치켜세우지만, 못하면 역적 취급을 받으니 적절한 표현인 듯 하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이 결국 1라운드에서 탈락했다. 제대로 된 전략과 실력을 갖추지 못하고 나섰다가 최악의 결과를 받아들었다. 애초부터 단추를 잘못 뀄다는 지적이 많다. 멤버 구성을 주도한 김인식 감독에게 화살이 돌아가는 분위기다.

김 감독은 프로야구 선수들이 국제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한 1998년 이후 대표팀 지휘봉을 가장 많이 잡은 사령탑이다. '국민 감독'이라는 영예로운 칭호도 얻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이 국민 감독의 첫 작품이었다. 당시 김 감독은 두산 베어스 사령탑이었다. '국민 감독' 타이틀은 2006년 WBC 4강 신화와 함께 공식화됐다. 초대 WBC였던 만큼 김 감독은 국내와 해외파를 총망라해 베스트 멤버를 소집할 수 있었다. 투수 구대성 박찬호 김병현 김선우 봉중근 서재응, 타자 이승엽 최희섭 등 해외파 선수들은 "국가가 없으면 야구도 없다"고 외친 김 감독의 부름에 응했다. 당시만 해도 선수들은 대표팀 선발을 매우 영예롭게 생각했다. 한국은 1회 WBC에서 기형적인 리그 방식 탓에 3위에 그쳤을 뿐 종합 승률은 6승1패로 1위였다.

김 감독은 2009년 2회 WBC에서 기세를 높였다. 1,2라운드를 통과한 뒤 준결승에서 베네수엘라를 꺾고 결승에 진출했다. 미국 LA 다저스타디움에서 열린 일본과의 결승에서 연장 10회 명승부 끝에 3대5로 패했지만, 준우승은 역대 WBC 최고 성적으로 남아 있다. 공교롭게도 김 감독은 당시 결승전 패배와 이번 대회 이스라엘전 패배를 자신이 지휘한 역대 대표팀 경기 중 최악이라고 했다.

김 감독이 6년 뒤인 2015년 초대 프리미어 12 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한국은 일본과의 결승에서 4대3의 역전승을 거뒀고, 일본 야구의 심장 도쿄돔은 태극기 물결에 휩싸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한국 야구는 김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하지만 김 감독은 아마도 자신의 마지막 국제대회일지도 모르는 이번 대회에서, 그것도 홈에서 가장 치욕스러운 결과를 받아들여야 했다. 김 감독은 프로 선수들을 이끌고 참가한 5차례 국제대회에서 우승 두 번, 준우승 한 번, 4강 한 번의 성과를 냈다. 그래서 이번 실패는 충격이다. 역설적으로 그렇게 믿었던 김 감독이었기에 더 쓰라리다. 김 감독은 대표팀 사령탑으로 24승8패, WBC에서 이번 1라운드 2차전까지 12승6패를 기록했다.

'전년도 우승팀 사령탑이 대표팀 감독을 맡는다'는 원칙이 있음에도, 굵직한 국제대회가 열릴 때마다 한국 야구는 김 감독을 바라봤다. 대표팀 감독은 국가를 위해 희생한다는 마음만 가지고 되는 게 아니다. 최선의 전력을 구축하고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야 뜻한 바를 이룰 수 있다. 카리스마와 소통, 책임감이 따라줘야 한다. 김 감독은 이 모든 부분에서 신중을 기했고 가끔은 정면돌파를 선택했다.

역대 WBC, 올림픽(예선 포함), 아시안게임 대표팀을 이끈 사령탑은 김 감독을 비롯해 총 7명이다. 경력과 성적에서 김인식 감독이 가장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에 못지 않은 영광을 누린 감독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대표팀 김경문 감독이다. 김경문 감독은 최종 예선서 6승1패를 거두고 본선에 올랐다. 일본, 쿠바, 미국 등 강호들을 잇달아 물리치고 9전승 신화를 이룩하며 올림픽 사상 첫 금메달을 품에 안았다. 김 감독은 이후 "베이징올림픽은 매우 귀중한 경험이자 개인적으로는 매우 행운이었다"며 되돌아보곤 한다.

대표팀 사령탑 경험이 상처가 된 감독도 있다. 2003년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아테네올림픽 예선을 겸한 아시아선수권에 참가한 김재박 감독은 1승2패로 탈락의 쓴 맛을 봤다. 김재박 감독은 3년 뒤 열린 도하아시안게임에서도 동메달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류중일 감독 역시 2013년 3회 WBC서 1라운드를 통과하지 못해 한을 남겼다. 류 감독은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서 5전승으로 우승해 체면치레를 했다. 아시안게임 우승은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주성노 감독,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5전승) 조범현 감독도 이뤘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선 김응용 감독이 동메달을 선사했다.

대표팀 감독이라는 자리의 부담은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전임감독제를 도입한 일본의 경우 '사무라이 재팬'으로 불리는 대표팀 사령탑을 매우 영예롭게 여기면서도,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크게 지워진다. 베이징올림픽서 노메달에 그친 호시노 센이치 감독은 숱한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반면 WBC는 일본의 무대였다. WBC 1,2회 우승, 3회 3위를 차지한 일본은 오 사다하루, 하라 다쓰노리, 야마모토 고지 감독에 이어 이번에는 고쿠로 히로키 감독을 앞세워 세 번째 우승도전에 나섰다.

미국도 4차례 WBC 사령탑이 모두 달랐다. 벅 마르티네스, 데이비 존슨, 조 토레에 이어 이번에는 메이저리그 통산 1769승의 노장 짐 릴랜드가 지휘봉을 잡았다. 전원 현역 메이저리거들로 대표팀을 구성한 미국은 이번에는 기필코 우승을 차지하겠다는 각오다. 2라운드 진출에 성공한 네덜란드 사령탑 헨슬리 뮬렌 감독은 2013년 3회 대회에서 4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번에도 네덜란드는 다크호스다.

1~3회 연속 루이스 소호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가 낭패를 본 베네수엘라는 메이저리그 명 유격수 출신 오바 비스쿠엘 감독을 선임, 우승 도전을 선언했다. 캐나다와 호주는 어니 휘트 감독, 존 디블 감독이 4연속 WBC 지휘봉을 맡았다. 흥미롭게도 두 감독 모두 지난 세 차례 대회에서 한 번도 1라운드를 통과한 적이 없다.

어느 나라든 명망있는 인물, 검증을 거친 사령탑을 대표팀 감독에 앉히기를 원한다. 그러나 결과는 바람대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대표팀 전임감독제를 놓고 찬반 의견이 대립한다. 중요한 것은 어느 쪽이든 잡음을 최소화하고 집중력을 높이는 일이다. 그래야 과정이 좋고 어떤 결과도 떳떳하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