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빚을 꼭 갚아야죠."
그간 K리그는 전북과 서울의 2파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두 팀의 양강구도는 K리그의 거대한 물줄기였다. 하지만 올시즌은 초반부터 지각변동이 감지되고 있다. 진앙지는 제주다.
제주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리그 초반이지만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제주는 지난달 22일 장쑤 쑤닝(중국)과의 2017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조별리그 H조 1차전에서 0대1로 석패했다. 그러나 경기력은 인상적이었다. 함께 ACL 무대를 밟은 서울, 수원, 울산보다 훨씬 짜임새 있는 축구를 구사했다.
지난 1일엔 제주발 태풍이 일본 열도를 집어 삼켰다. 감바 오사카를 4대1로 완파했다. 당시 2골을 터뜨린 이창민은 박지성(은퇴)의 '산책 세리머니'로 국내팬들에게 '사이다'를 선사했다. 굴욕을 당한 감바는 고개를 떨궜다.
5일 열린 인천과의 클래식 1라운드에서도 제주발 파상공세가 이어졌다. 이창민 안현범, 마르셀로가 인천 진영에서 춤판을 벌였다. 권순형은 중원을 장악했다.
간결한 패스 워크, 빠른 스피드와 힘, 그리고 틈만 보이면 상대 골문을 노리는 과감성. 그렇다. 제주는 진일보했다.
인상적인 공격력의 제주, '숨은 실세'는 따로 있다. '베테랑 수비수' 조용형(34)이다.
2010년 8월 제주를 떠난 조용형은 지난해 12월 다시 돌아왔다. 6년 4개월여만이다. "나이도 들고 언젠가 돌아오고 싶었는데 불러줘서 고마웠다."
사실 그에게는 제주에 마음의 빚이 남아 있었다. 조용형이 떠나던 시점에 제주는 리그 1위였다. 그런데 조용형 이적 후 주춤하며 2위로 리그를 마쳤다. 조용형은 "그 때가 아니면 해외로 못 나갈 것 같아 이적을 했다. 떠나기 전 팀이 선두였는데 내가 나가고 나서 2위를 했다"며 "중요한 시점에 팀을 어렵게 했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런 마음이 조용형을 더 열심히 뛰게 만들었다. 조용형은 제주 스리백의 중앙을 맡아 물 샐 틈 없는 수비벽을 구축하고 있다. 안정적인 빌드업, 영리한 위치선정에 라인 조율과 리딩 능력도 완벽하다.
조용형은 "내가 동료들에게 묻어가고 있다. 동료들이 워낙 잘 뛰어줘서 팀이 강해진 것"이라며 자세를 한껏 낮췄다.
그러나 욕심까지 감출 순 없었다. 그는 "2010년보다 올시즌 제주가 더 강하다. 일찌감치 조직력을 끌어올린데다가 좋은 선수들도 대거 영입했다"며 "클래식, ACL, FA컵 어느 대회에서라도 우승을 노려볼 만하다"며 각오를 다졌다.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