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17WBC A조 첫 경기 한국-이스라엘전은 국내팬들에겐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한국은 10회 연장승부 끝에 1대2로 패했다.
미국 마이너리그 선수들이 주축이 된 이스라엘, 그것도 트리플A가 아니라 싱글A, 더블A 선수들이 더 많은 '급조된' 팀. 하지만 이날 경기에서 맨 먼저 눈에 띈 점은 양국 투수들의 스피드 차이였다. 이스라엘은 모두 6명의 투수를 마운드에 올렸다.
선발로 나선 제이슨 마르키스는 메이저리그 124승에 빛나는 백전노장이다. 한국 나이로 마흔. 은퇴 직전 고국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출전했다고 했는데 140㎞초반의 컷패스트볼과 슬라이더로 한국 타자들을 울렸다. 3이닝 무실점. 이후 마운드에 오른 좌완 제레미 블라이시와 우완정통파 게이브 크라머는 140㎞대 중후반의 빠른 볼을 거침없이 뿌렸다. 마무리 조시 자이드는 150㎞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자랑했다. 스피드가 전부는 아니지만 투수의 구속은 몸상태를 가늠할 수 있는 기본 척도다. 네덜란드 투수들도 마찬가지다. 에이스 릭 밴델헐크의 경우 이미 지난달말 일본 전지훈련에서 시속 153㎞를 가볍게 찍었다.
반면 한국 투수들은 시즌 베스트에 가까운 스피드와 몸상태를 보여준 투수가 부족했다. 마무리 오승환이 유일하게 150㎞를 찍었을 뿐이다. 장원준 심창민 차우찬 원종현 이현승 임창민 오승환 임창용이 나섰지만 145㎞ 이상의 속구를 뿌린 투수는 원종현(최고 147㎞), 임창용(최고 147㎞), 오승환 정도였다. 이들도 시즌 베스트 이하다. 거의 모든 투수들이 시즌 베스트에 한참 못 미치는 몸상태였다. 물론 당연한 측면도 있다. 평소같으면 리그 개막 이전이다. WBC 조직위원회도 개최 시기(이른 봄)를 감안, 투구수 제한을 두고 있다. 일종의 배려다.
하지만 문제는 팀별 편차다. 이는 한국대표팀 코칭스태프도 걱정한 부분이다. 김인식 감독은 "메이저리그 애들보다 마이너리그 애들이 더 무섭다. 더블A 애들은 스프링캠프가 시작되자마자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야 한다. 있는 힘을 다해 어필한다. 빨리 페이스를 끌어올리는 것이 몸에 배였다. 우리 투수들은 천천히 개막에 맞춰 몸상태를 끌어올린다. 바짝 긴장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마이너리그 선수들의 경우 겨우내 빨리 몸을 만든다. 스프링캠프 시작과 동시에 실전에 투입되기도 한다. 일본프로야구도 마찬가지다. 스타급 몇몇 선수들을 제외하면 미리 몸을 만들어 캠프에 합류한다.
김동수 대표팀 배터리코치는 이스라엘전에 앞서 "이스라엘이나 네덜란드 투수들을 보면 벌써 145㎞을 쉽게 찍는다. 우리팀은 142㎞정도만 나와도 박수를 보낼 판이다. 선수들의 컨디션을 끌어올리는데 안간힘을 다했지만 시기적으로 힘든 측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은 이스라엘에 일격을 당했다. 한국 대표팀 타선은 연장 10회까지 산발 7안타(1득점)에 그쳤다. 베스트 구위에 근접한 상대 투수들의 파워에 넋놓고 당한 셈이다. 반면 한국대표팀 투수들은 KBO리그에서 활약중인 외국인 타자들보다 오히려 수준이 떨어지는 이스라엘 타자들에게 8안타, 볼넷 9개(고의 4구 1개)를 내줬다. 투수는 최고 몸상태가 아니면 구위에 대한 자신감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것이 충격패에 대한 면죄부가 될순 없지만 변수 중 하나였던 것은 맞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