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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C 14] 13연패 파이터 한복수의 피,땀,눈물의 인생이야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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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 일을 하는 아버지는 언제나 가정에 충실하셨고, 애틋한 사랑으로 가족을 돌보셨다. 가난했지만 가족들 간에 우애가 좋아 여느 집들보다 행복한 가정이었다.

중학교 때는 엉뚱했지만 반에서 왕따 반대모임을 만들어 모임의 부회장을 2년간 맡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도 작은 의협심 같은 게 숨어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해본다.

시간은 흘러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가정환경이 녹녹치 않아 학업보단 곧바로 돈을 벌어야 되는 상황이었다.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나이에 돈을 번다는 것은 쉽지 않는 부분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항상 무슨 일이든 성실히 땀 흘려 노력한다면 힘들지만 세상을 잘 살아 갈 수 있다고 하셨다.

마침 그러던 중 친한 친구가 재고된 옷, 가구, 도자기, 기타 물품 등을 아는 분에게 싸게 구입한 뒤 길거리 노점을 하며 판매를 하면 꽤 짭짤한 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친구와 나는 재고 물건들을 싸게 구입해 추울 때나 더울 때나 하루 20시간씩 거리에서 쪽잠을 자며 김밥·빵·우유 등으로만 허기를 채우며 열심히 장사했다.

길거리 노점상이란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자리를 맡지 않으면 금세 다른 장사를 하시는 분들이 오셔서 자리를 빼앗곤 하여 거의 하루 종일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물론 춥고, 덥고, 몸은 힘들어도 젊은 나이기에 버틸 수 있었으며 흥정을 하며 싸고 좋은 물건을 판매했을 때와 혹은 물건을 사 가신 분들께 지나가다가 너무 물건이 너무 좋고 잘 사용하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는 기분이 너무 좋고 뿌듯한 보람도 느꼈으며 사회의 구성원이 확실히 됐다는 느낌도 받았다.

이처럼 몸은 힘들어도 부모님과 학교에서 배운 대로 삶을 열심히 살아갔다.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했다. 그리고 차곡차곡 쌓여가는 돈도 내 마음을 뿌듯하게 했다. 그러다가 내가 번 돈으로 온 가족이 외식을 하며 삼겹살에 소주 한 잔을 할 때면 온 세상이 내 것만 같았고 더 이상의 욕심은 없었다.

하지만 그런 행복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23세 쯤 친형이 집으로 오다가 술 취한 11명의 남성한테 골목길로 끌려가 아무 이유 없이 심하게 구타를 당했다. 형은 소주병과 발길질을 인해 7군데나 부러지고 이빨도 4개나 부러졌으며 뇌출혈까지 발생했다. 때마침 지나가는 분이 신고해 목숨을 건졌다. 형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가 형을 보니 얼굴은 망신창이며 온몸은 부러져 붕대에 감겨 있고 의식은 혼수상태여서 중환자실에 있었다. 곧바로 의사선생님께서는 가장 급한 뇌수술 준비를 해야 한다며 형의 목숨까지 장담을 못하는 상황이었다. 정말 하루하루가 지옥이자 형에게 폭행을 한 11명을 잡아서 정말 똑같이 해주고 싶었다.

아니 도대체 무슨 이유로 형을 저 정도까지 때려야 할까. 사람을 이정도까지 폭행한다는 것도 믿어지지 않았으며 그런 폭행을 당하고도 형이 살아 있었다는 것도 기적과 같았다.

주위 사람들의 도움으로 폭행범 중 3명은 잡았는데 7명은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다. 그 중 2명은 돈이 없어 합의를 안보고 몸으로 때운다고 했다. 그러나 한 명마저 나 혼자 치료비를 모두 부담할 수 없다며 다 같이 법의 판결을 받자고 했다.(가해자들은 살인은 아니지만 그에 준하는 법정 혐의를 받았다. 하지만 술에 취한 우발적 범행으로 형량이 참작돼 지난해 출소했다.)

사실 이 사건의 판결은 너무 억울했다. 정말 똑같이 해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 사간으로 인해 단란했던 우리가족은 처참하게 무너지고 암흑 속에 갇혀 있는 것만 같았다.

형이 폭행당한 이후로 병원비가 너무 많이 나왔지만 23세 때 4년을 넘게 일하여 벌어놓은 5000만 원을 친형 병원비로 사용했으며, 그 뒤로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해 형의 병원비를 충당했다. 지금까지 총 8000만원 정도의 병원비가 들어간 것 같다. 하지만 아직까지 뇌수술로 인해 통원치료를 하고 있으며 아직 그 충격으로 일상생활이 불편하고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한다.

시련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매일 아침 5시부터 새벽 1시까지 다섯 가지 일을 하면서 모아놓은 돈은 형의 통원 치료비로 쓰고 남는 돈은 가정의 생활비로 썼는데 갑자기 먼 친구가 찾아와 좋은 재고 물건이 있다며 그것을 구입해서 팔면 정말 큰 마진을 얻을 수 있고 아울러 형 병원비와 너의 집 생활비 역시 충분히 쓰고 남을 것이라며 사업 권유를 했다.

예전에 길거리 노점상을 해봤기에 친구를 믿고 마지막 남는 돈과 함께 주위의 지인 분들에게까지 돈을 빌려 약 2000만원을 친구에게 줬다. 하지만 그게 그 친구와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

정말 TV나 영화에서만 보던 일들이 내 앞에서 벌어지니 온 세상의 분노와 울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어떻게 나에게 이런 모진 시련을 주는 걸까?

정말 내가 전생에 무엇을 잘못했단 말인가. 부모님과 학교에서 배운 대로 성실하게 땀 흘리며 열심히 일을 한다면 밥 먹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이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세상은 나 또한 우리 가족을 이렇게 힘들게 하고 시련을 주시는가라는 생각으로 매일매일 울면서 세상을 원망했다.

아픈 형도 챙기고 집안도 챙겨야 할 나로서는 어린 나이에 너무나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었다. 어린 나이에 망연자실해 죽고 싶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이후 한 달이 지나고 정신을 차려보니 현실은 정말 내가 빈털터리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내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아픈 형의 병원비 생각에 다시 마음을 잡고 아는 분을 통해 돈을 더 많이 주는 현대 중공업에 들어가 허드렛일을 하며 다시 한 번 열심히 일했다. 물론 아직도 형은 큰 수술을 여러 번 했음에도 계속해서 치료를 받고 있다. 형의 정상적인 사회생활과 그 충격은 언제쯤이면 사라질 수 있을까.권인하 기자 indy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