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스피드스케이팅 취재를 위해 오비히로에 가는 길이었죠. 기차를 타고 가는데, 갑자기 멈춰서는 것입니다. 어리둥절했습니다. 창밖을 보니 바로 이해가 갔습니다. 눈보라에 기찻길이 막혀 버린 거였죠. 30분 가까이 발이 묶인 상태, 한국에 있는 선배에게 상황을 설명했더니 '눈 오는 게 보고 싶다'는 엉뚱한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하하. 그렇네요. 당황스럽지만 잊지 못할 추억을 하나 더 만들었습니다.
눈 때문에 생긴 이런 당황스러운 상황이 아니면 이곳 생활은 한국과 거의 비슷합니다. 시차가 없으니 더욱 그렇죠. 아침 TV 프로그램도 비슷합니다. 새벽 뉴스가 끝나면 어린이용 만화를 방송합니다. 브라운관을 통해 호빵맨과 세균맨이 투닥거리는 모습을 보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는 못해도 괜히 웃음이 납니다.
생각해보니 일본을 두고 '만화 왕국'이라고 했던 것 같습니다. 실제 이곳에는 캐릭터 매장이 즐비합니다. 삿포로, 기차 등을 형상화 한 캐릭터도 있습니다. 물론 이번 대회 공식 마스코트인 에조몬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붉은 망토를 두른 에조몬은 주목 받기를 원하는 하늘다람쥐를 형상화했다고 합니다. 겨울스포츠로 아이들에게 꿈을 선사한다고 하네요.
에조몬은 삿포로 거리마다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습니다. 눈으로 만든 에조몬은 특히 눈길을 끌죠. 에조몬을 활용한 상품도 여기저기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경기장 공식 판매점은 물론이고 편의점에서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변화무쌍한 모습으로 말이죠. 에조몬은 단순히 캐릭터 인형으로만 판매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볼펜과 수첩, 배지는 물론이고 귀마개, 과자 등 다양한 상품이 마련돼 있었습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발걸음까지 멈추게 하더군요.
문득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공식 마스코트 수호랑 반다비가 생각났습니다. 저는 2016~2017시즌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 겸 평창 테스트 이벤트에서 수호랑 반다비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만남의 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을 한 바퀴 빙~ 돈 끝에 가까스로 판매점을 찾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종류는 생각만큼 다양하지 않았습니다. 인형, 볼펜, 수첩 등이 단출하게 진열돼 있었습니다. 실망하는 기색을 눈치챘을까요. 옆에서 캐릭터를 정리하던 직원이 다가와 "많이 팔렸습니다. 외국인 선수들이 기념품으로 많이 사더라고요"라며 애써 위로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채 쓸쓸하게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우리의 수호랑은 도전 정신과 열정을 가진 '씩씩한' 백호를 모티프로 했습니다. 반달가슴곰 반다비는 평등과 화합에 앞장서는 가슴 따뜻한 친구입니다. 이름 만큼이나 멋진 뜻을 지닌 우리의 수호랑과 반다비를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자주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먼 훗날 평창동계올림픽을 기억할 때 수호랑 반다비의 웃는 얼굴을 떠올리며 미소지을 수 있도록 말이죠.
삿포로(일본)=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