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백지은 기자] 청춘사극의 성공 법칙은 뭘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KBS2 월화극 '화랑'이 21일 종영한다. 종영을 한회 앞두고 화랑은 이제까지 풀어내지 못했던 이야기를 한꺼번에 쏟아내고 있다. 선우(박서준)와 삼맥종(박형식)이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칼을 겨누고, 아로(고아라)가 선우 대신 활을 맞고 쓰러지는 등 결말을 예측하기 힘든 폭풍 전개를 이어갔다. 그러나 결과는 썩 신통치 않다. 20일 방송된 '화랑'은 7.6%(닐슨코리아, 전국기준)의 시청률에 그쳤다. '성균관 스캔들', '구르미 그린 달빛'을 모두 히트시키며 청춘 사극 명가로 떠오른 KBS에게는 다소 씁쓸한 결과다. 그렇다면 왜 '화랑'은 전작의 영광을 이어오지 못했을까. '성균관 스캔들', '구르미 그린 달빛', '화랑'을 비교, 청춘 사극 성공 법칙을 살펴봤다.
▶ 꽃미남은 다다익선, 일처다부제
꽃미남의 존재는 청춘사극 주시청층인 1020 여성을 공략하기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다. '성균관 스캔들'에는 유아인 송중기, '구르미 그린 달빛'에는 박보검 곽동연 진영(B1A4)가 있었다. '화랑'에도 박서준 박형식(제국의아이들) 조윤우 도지한 민호(샤이니) 김태형(방탄소년단 뷔) 등 꽃미남 군단이 출격했다.
다만 이들과 긴밀한 접점을 갖는 여자 캐릭터는 한명 이상이 되면 곤란하다. 러브라인이 분산될수록 파급력과 몰입도가 떨어질 뿐 아니라 설득력을 갖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화랑'의 경우 아로와 숙명(서예지)이 라이벌 관계이고, 러브라인은 아로를 중심으로 한 삼각관계와 수연(이다인)과 반류(도지한)의 러브라인으로 나뉜다. 이렇게 복잡한 관계를 설득력 있게 끌고가려면 그만큼 캐릭터의 서사를 탄탄하게 다져놔야 한다. 하지만 청춘사극은 비교적 호흡이 짧은 편이다. 캐릭터마다 이야기를 심어주기에는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최대한 잔가지를 쳐내고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인물 관계를 꾸려나가는 작업이 필요하다. 실제로 '성균관 스캔들'(하효은(서효림) 초선(김민서))과 '구르미 그린 달빛'(조하연(채수빈) 명은공주(정혜성) 의 경우 여성 캐릭터는 갈등을 유발하거나 조연 캐릭터로서 틈새 코미디를 선사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됐다. 주요 등장인물과 관계를 맺진 않았다.
▶ '민폐 여주'는 그만, 사이다녀
최근 트렌드는 '사이다'다. 자신의 운명을 모두 남자에게 맡긴채 이리저리 치이며 눈물 흘리는 청순가련 여주인공은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것이다. 시청자는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시원한 돌직구녀를 원한다. 여기에 독창적인 매력이 더해진다면 금상첨화다.
'성균관 스캔들'의 김윤희(박민영)나 '구르미 그린 달빛'의 홍라온(김유정) 모두 그랬다. 남장여자라는 신분 때문에 더 남자처럼 행동하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통통 튀는 발랄함과 사랑스러움 안에 제 할말은 똑부러지게 해내는 강단있는 성격을 갖췄다. 그래서 이들을 중심으로 한 인간관계는 더욱 흥미로웠다. 남자주인공과는 애틋한 러브라인이 형성됐고, 의리로 뭉친 형이 생겼으며 속을 알 수는 없지만 연민으로 맺어진 친구도 나타났다. 이처럼 인간관계가 꼭 삼각관계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여주인공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인간상과 감정선이 그려지며 재밌는 변주곡을 듣게 됐다.
'화랑'의 아로도 어느 정도는 이와 비슷한 맥락의 캐릭터라 볼 수도 있다. 아로는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내숭이나 가식도 없다. 이런 아로의 매력에 선우도, 삼맥종도 빠져들었다. 그런데 딱 여기까지였다. 이성적 끌림과 연민 사이에서 갈등하는 아로의 심경을 보여주기에 '화랑'은 2% 부족했다. 삼각관계의 중심이 되는 캐릭터이긴 했지만 포커스 자체가 삼맥종과 선우에게 맞춰져있다 보니 아로의 감정선은 곁가지로 취급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로의 희생 장면 또한 민폐로 비춰졌다. 선우를 대신해 활을 맞고 쓰러졌다는 것은 아로의 선택을 대변하는 중요한 신인데도 감동이 약했다.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홍라온이 이영(박보검)을 위해 몸을 내더진 신이 중요하게 취급됐던 것과는 사뭇 다른 결과다.
▶ '영웅본색' 저리가라, 브로맨스
브로맨스는 최근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코드다. 남자들간의 진한 우정과 의리를 동경하는 젊은 여성층에게 어필할 수 있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성균관 스캔들'과 '구르미 그린 달빛' 역시 이 트렌드를 잘 따른 작품이었다. 남자 캐릭터들 간의 브로맨스 뿐 아니라 남장 여자 주인공을 중심으로 한 세미 브로맨스까지 더해지며 시청자를 사로잡았다. 특히 '구르미 그린 달빛'은 이영과 김병연(곽동연)의 절절한 브로맨스로 엔딩을 장식할 때마다 시청률이 뛰어오르는 효과를 보기도 했다.
'화랑'도 브로맨스를 곳곳에 배치했다. 선우를 중심으로 다른 화랑들이 뭉치는 모습, 반류와 수호의 티격태격 호흡 등을 통해 브로맨스를 표현하려 했다. 무엇보다 삼맥종과 선우의 브로맨스에 힘을 실었다. 자신만의 세계에 갇혀살던 삼맥종이 연적임을 알면서도 선우를 벗이라 칭하는 모습은 수많은 여성 시청자의 마음을 일렁이게 하는 신이었다. 이런 호흡 때문에 마니아들은 끝까지 '화랑'을 놓지 못했다.
만약 '화랑'이 선우-삼맥종-아로의 지지부진한 삼각관계에 열중하는 대신, '화랑'만이 가질 수 있는 브로맨스에 더 집중했다면 조금은 다른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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