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표팀에서 중책을 맡은 차우찬(LG 트윈스)과 양현종(KIA 타이거즈)은 컨디션이 천천히 상승하는 '슬로우스타터'에 가깝다.
이번 WBC 대표팀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투수다. 최정예 전력이 꾸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우완 투수가 부족해 김인식 감독의 고민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장원준(두산 베어스)과 차우찬 양현종 등 '에이스' 역할을 맡아줄 선수들의 어깨가 무겁다.
차우찬과 양현종은 정규 시즌을 놓고 봤을 때, '슬로우 스타터'에 가깝다. 유형은 다르다. 차우찬은 시즌 초반 헤매다가도 시즌 후반이 되면 오히려 힘이 붙는 스타일이고, 양현종은 천천히 페이스를 끌어올려야 마지막까지 무리 없이 완주를 해왔다. 너무 빨리 경기 감각을 만들면, 후반기에 종종 체력 난조를 호소했었다. 차우찬과 양현종 모두 소속팀 선발진에서 중요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더욱 세밀하게 컨디션을 만들어왔다.
당연히 두 사람에게 WBC 출전은 '변수'다. 정규 시즌 개막 직전에 열리기 때문이다. 다른 선수들에게도 개막 직전 국제대회는 부담이지만, 소속팀의 선발투수로 돌아가야 하는 만큼 부담감이 더 크다. 시즌 레이스가 훨씬 더 길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차우찬은 지난 19일 대표팀의 첫 연습경기인 일본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맞대결에서 3번째 투수로 등판해 2이닝 4안타 2실점을 기록했다. 직구 최고 구속 140km를 넘지 못했고, 제구도 흔들리는 모습이었다. 첫 실전 경기인 것을 감안해야 하지만 불안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차우찬은 그동안 여러 차례 "원래 시즌 초반이 좋지 않은 스타일이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닌데, 가만히 두면 알아서 컨디션이 올라온다"고 이야기해왔다.
물론 올해는 다르게 준비했다. WBC 대회도 있고, FA(자유계약선수)로 대형 이적을 했기 때문이다. 차우찬은 "올해는 전반기에 못하고, 후반기에만 잘하면 안 될 것 같다. WBC 대회도 있고 초반부터 잘해야 한다"며 1월초부터 본격적으로 몸만들기에 들어갔다. 괌에서 개인 훈련을 시작한 후 대표팀에 곧장 합류했다. 선동열 코치도 차우찬의 컨디션에 높은 점수를 매겼다.
양현종도 마찬가지다. 대표팀 최종 엔트리 발표 이후 양현종의 어깨 상태를 두고 우려도 나왔다. 양현종이 꾸준히 관리를 해줘야 하는 부분이다. 김인식 감독도 "어깨 상태가 변수"라며 걱정을 했다.
하지만 우려를 딛고 양현종은 정상적으로 대표팀에 합류했다. 선발대로 오키나와에 건너갔고, 소속팀 훈련을 소화한 후 대표팀에서 첫 실전 등판을 앞두고 있다. 김인식 감독은 22일 요코하마 DeNA베이스타스와의 연습경기 선발투수로 양현종을 예고했다.
양현종은 스포츠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컨디션 조절에 대한 불안감이 조금은 있다. 그래도 당장 앞일만 생각하겠다. 우선 WBC에 집중하고, 이후 또 몸을 만들어서 시즌에 들어갈 것"이라고 책임감을 보였다.
차우찬과 양현종 모두 어느 때보다 비장한 각오로 3월을 준비하고 있다. WBC 성적은 물론이고, FA 계약 이후 첫 시즌까지 앞둬 남다르게 몸을 만들었다. 대표팀 역시 두 사람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 '슬로우스타터들'은 가장 좋은 컨디션으로 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