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영국)=이건 스포츠조선닷컴 기자]역시 공은 둥글다. 축구에는 절대가 없다. 약팀도 강팀을 충분히 잡을 수 있다. 이를 이변이라고 한다. 다만 이변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변은 더욱 희소성이 있다.
18일은 영국 축구 이변의 날이었다. FA컵 16강전 5경기가 열렸다. 매치업은 흥미로웠다. 5경기 모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대 비(非)EPL팀의 대결이었다. EPL팀은 2승1무2패를 기록했다. EPL 입장에서는 자존심을 제대로 구겼다.
자존심 추락의 시작은 번리였다. 5부리그인 링컨시티에게 0대1로 졌다. 그것도 홈경기에서 패배였다. 링컨시티는 1914년 퀸즈파크레인저스 이후 104년만에 FA컵 8강에 오른 넌리그(5부리그 이하)팀이 됐다.
링컨시티의 기운을 밀월(3부리그)이 이었다. 홈에서 지난 시즌 EPL챔피언 레스터시티를 상대했다. 밀월은 후반 초반 수비수 한 명이 퇴장했다. 수적 열세 속에서 괴력을 발휘했다. 경기 내용에서 전혀 밀리지 않았다. 결국 후반 45분 결승골을 넣으며 1대0으로 승리했다.
허더스필드(2부리그)도 맨시티를 상대로 좋은 모습을 보였다. 자신들의 홈에서 맨시티를 맞이했다. 탄탄한 수비력을 선보였다. 결국 0대0 무승부를 기록했다. 양 팀은 재경기를 하게 됐다.
미들스브러는 3부리그 옥스퍼드유나이티드에 3대2로 승리했다. 하지만 불안했다. 2골을 먼저 넣은 뒤 2골을 내줬다. 막판 골이 아니었다면 재경기를 했을 수도 있었다.
첼시만 EPL의 자존심을 제대로 살렸다. 첼시는 울버햄턴(2부리그) 원정에서 2대0으로 승리했다. 어려운 경기를 펼쳤지만 결국 승리를 낚아챘다.
EPL팀이 고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심리적인 불안정이 첫번째 이유다. 한 수 아래의 팀을 상대한다. 처음에는 방심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가 경기가 제대로 안 풀리면 조바심이 난다. 여기서 흥분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선수 본인은 물론이고 팀전체의 리듬에도 악영향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번리와 링컨시티 경기에서는 조이 바튼이 제대로 성질을 부렸다. 후반 22분 상대 선수와 격돌했다. 옐로카드로 끝났지만 분위기가 어수선해졌다. 가뜩이나 경기가 안풀리던 번리였다. 이 사태 이후 번리의 흐름은 꼬였다. 결국 후반 막판 링컨시티에게 결승골을 허용하며 무너졌다. 밀월과 레스터시티 경기도 마찬가지였다. 전반 44분 밀월은 세트피스 상황에서 레스터시티에게 거칠게 달려들었다. 레스티시티 선수들은 격분했다. 결국 단체 몸싸움이 펼쳐졌다. 후반 레스터시티는 상대 선수 1명이 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졸전 끝에 패배했다.
두번째는 선수 구성이다. 레스터시티의 경우 주전 선수들을 대거 제외했다. 스완지시티와의 리그경기와 비교했을 때 10명을 바꿨다. 현실적인 이유는 있었다. 레스터시티는 22일 세비야와 유럽챔피언스리그(UCL) 16강 1차전 원정경기를 치러야 한다. 주전 선수들의 체력을 아껴야 했다. 번리 역시 몇몇 주전 선수들을 빼고 나왔다. 맨시티도 그동안 나서지 못했던 선수들을 몇몇 자리에 넣었다. 주전을 대신해 나선 선수들은 열정이 넘쳤다. 여기에서 자신을 보여야 했다. 다만 그동안 경기에 나서지 못했던 것이 문제였다. 전체적으로 선수들의 경기 감각이 떨어졌다. 준비 부족이 활실하게 보였다.
세번째는 하부리그 팀 선수들의 투지였다. EPL팀과 상대한 선수들로서는 져도 본전이었다. 이기면 대박이었다. 한 번 해볼만했다. 엄청난 투지를 보였다. 클라우디오 라니에리 레스터시티 감독은 "우리는 투지가 부족했다. 전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여기에 하나 더, 철저한 준비가 있었다. 하부리그팀들 입장에서는 선수비 후역습 전술로 나섰다. 무기는 세트피스였다. 링컨시티는 코너킥에서 골을 만들어냈다. 대니 코울리 링컨시티 감독은 BBC에 나와 "세트피스를 많이 연습했다"고 말했다.
물론 첼시만은 달랐다. 첼시는 울버햄턴에 2대0으로 승리했다. 수비진에는 약간 변화를 주기는 했다. 그래도 디에고 코스타, 에덴 아자르, 윌리안, 페르도 등 공격에는 주전 선수들을 대거 배치했다. 유럽 대회를 치르지 않기 때문에 운용할 수 있는 폭이 넓었다. 집중력을 보여준 끝에 2대0으로 승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