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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들의 바뀐 등번호, 그 안에 담긴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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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에서 등번호가 도입된 것은 1928년부터다.

1928년 8월 잉글랜드 아스널과 셰필드 웬즈데이와의 경기에서 처음으로 유니폼 상의에 번호가 새겨졌다. 당시만 해도 등번호는 심판과 관중들이 선수들을 쉽게 구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그래서 초창기 등번호는 포지션과 연관이 깊었다. 1번부터 11번까지, 11명이 그라운드를 누볐다. 어느 정도 정해진 규칙도 있었다. 1번은 골키퍼의 몫이었고, 공격수들은 9번을, 공격형 미드필더는 10번을 다는 식이었다.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등번호의 의미는 점점 커졌다. 등번호는 이제 선수들의 아이덴티티(정체성)다. 대부분의 슈퍼스타들은 그를 상징하는 등번호가 있다. '세계 최고의 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레알 마드리드)의 상징은 7번이다. 그는 그가 하는 사업 혹은 그의 시그니처 상품에 그의 이름 약자 CR과 7번을 더한 CR7을 새긴다. 칠레의 전설적인 공격수 이반 사모라노는 인터밀란 시절 18번을 달았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1과 8 사이에 +가 있었다. 9번을 선호하던 사모라노는 '축구황제' 호나우두에게 9번을 빼앗기자 기지를 발휘했다.

2017시즌 개막을 앞두고 K리그의 각 팀들이 속속 등번호를 공개하고 있다. 선수들은 1번부터 99번 사이에서 1년간 자신을 대표할 등번호를 골랐다. 그 속에는 저마다의 사연이 담겨있다.

초심파의 대표주자는 황의조(성남)와 김진수(전북)다. '성남의 에이스' 황의조는 지난해 달았던 10번 대신 16번 유니폼을 다시 입기로 했다. 좋은 성적을 냈던 2015년을 기억하며 초심으로 돌아가고자 직접 등번호 변경을 원했다. 황의조는 2015년 15골을 넣으며 국가대표까지 발탁됐다. 유럽생활을 접은 김진수도 초심을 위해 22번을 달았다. 비록 부상으로 나서지는 못했지만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김진수의 등번호는 22번이었다. 그때처럼 간절한 심정으로 재기에 성공하기 위한 의지의 표시다

목표의 표시로 등번호를 고른 선수도 있다. 이정수(수원)는 올해도 40번을 단다. 40세까지 현역으로 활약하고 싶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제주의 새로운 외국인 선수 마그노는 22개의 공격포인트를 올리겠다는 목표로 22번을 골랐다.

자신의 상징적 번호를 되찾은 선수들도 많다. '수원 호날두' 조나탄은 70번에서 7번으로 돌아왔다. 호날두 바라기인 조나탄은 7번을 선호한다. 대구 시절에도 7번을 달았다. 하지만 지난 시즌 중반 수원으로 오면서 원했던 7번을 달지 못했다. 이상호가 서울로 이적하며 7번이 공석이 됐고, 그렇게 7번을 다시 손에 넣게 됐다. 지난 시즌 성남에서 부상으로 허덕였던 황진성은 강원으로 오며 자신의 상징인 8번 유니폼을 입는다. 포항에서 달았던 8번으로 복귀하며 제2의 전성기을 꿈꾸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원치 않는 등번호를 받아든 선수도 있다. 멘디(제주)는 10번과 13번을 선호한다. 지난해 울산에서 10번을 달았고, 기니비사우 대표팀에서는 13번이 그의 번호였다. 하지만 제주에는 이미 주인이 있었다. 결국 출생년도를 의미하는 88번을 선택했다. 강원의 캡틴 백종환도 마찬가지다. 77번을 달고 있는 백종환은 원래 7번을 선호했다. 하지만 상주에서 강원으로 복귀할 당시 팀에 7번의 주인이 있었고 후배를 배려해 77번을 선택했다. 올해 7번 복귀를 꿈꿨지만 문창진의 영입으로 또 한번 양보를 택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