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캘거리도 아닌데 개인 최고 기록을 세운건가요?"
12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열린 2016~2017시즌 국제빙상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종목별 세계선수권 겸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테스트 이벤트 남자 1500m 레이스가 끝난 뒤 장내가 소란스러워졌다. '기대주' 김민석(18)이 세운 깜짝 기록 때문. 김민석은 이날 1분46초05로 결승선을 통과하며 5위에 이름을 올렸다. 비록 메달을 목에 걸지는 못했지만, 개인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며 환하게 웃었다. 종전 기록은 지난해 캐나다 캘거리에서 작성한 1분46초09. 김민석은 "기록을 세워서 기분이 좋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사실 이번 대회에서 자신의 '기록'에 만족한 선수는 김민석 뿐이 아니다. 10일 열린 여자 500m에서 올 시즌 최고인 37초48을 기록, 은메달을 목에 건 '빙속여제' 이상화(28) 역시 "기대한 기록이 나왔다"며 웃었다. 이 밖에도 여자 500m 박승희(25)는 개인 기록, 여자 3000m 김보름(24)은 한국 기록을 세우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무더기 시즌 기록의 비결은 '좋은 빙질'
강릉에서 나온 '무더기' 시즌 베스트 기록. 이는 단순히 한국 선수들에게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일본의 사토 아야노 역시 "3000m 레이스에서 평소보도 좋은 기록을 얻었다"고 만족했다. 고다이라 나오는 여자 500m, 스벤 크라머는 남자 1만m에서 각각 일본과 네덜란드의 기록을 세웠다. 일각에서 '이번 대회에 출전한 선수 중 70%가량이 시즌 기록을 낸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한꺼번에 쏟아진 시즌 기록. 비결은 무엇일까.
선수들은 입을 모아 '최상의 빙질 상태'를 꼽았다. 남자 1500m 레이스에서 1분44초36을 기록, 우승을 차지한 켈드 누이스(네덜란드)는 빙질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는 경기 후 "강릉의 빙질은 스케이트가 꽂혔을 때 부서지는 얼음이 아니"라며 "스케이트가 닿는 감각이 좋다"고 평가했다.
얀 다이케마 ISU 회장도 빙질 상태에 엄지를 세웠다. 그는 12일 대한민국 미디어와 가진 공식 기자회견에서 "모든 선수들이 빙질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고 박수를 보냈다.
▶가속도까지 붙는 강릉 경기장… 변수는 부상
이상화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는 대회 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빙질 상태라 기대된다"며 "세계기록이 많이 나오는 캐나다 캘거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훈련만 잘하면 세계기록에 가까운 성적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조심스레 예상했다.
객관적인 지표가 이를 증명한다. ISU가 공식 집계한 남녀 21개 종목의 세계기록은 미국의 솔트레이크시티(11개)와 캐나다 캘거리(10개)에서 나왔다. 두 경기장 모두 해발고도 1000m 이상에 위치해 공기 저항이 적고, 얼음의 밀도가 높다. 스피드스케이팅 레이스에 최적화된 환경이다. 반면 강릉 스피드스케이팅장은 고도가 높지 않다. 대신 빙질 관리에 더욱 심혈을 기울였다.
실제 강릉 스피드스케이팅장은 정수된 물로 빙판 표면을 매끄럽게 했다. 무엇보다 아이스의 밀도를 높여 세계 최고 수준의 빙질을 유지하고 있다. 이를 위해 평창조직위원회는 캐나다 캘거리 경기장 아이스메이커와 함께 이번 대회를 진행했다. 캐나다에서 온 아이스메이커 5명은 강릉의 기온과 습도 등 환경을 고려해 빙질 온도를 체크했다. 대부분의 경기장이 영하 얼음 온도 5~7도 수준을 유지하는 것과 달리, 이번 대회 얼음 온도를 영하 9도에 맞춘 이유다.
'무더기' 시즌 베스트에는 가파른 곡선도 한몫 했다.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은 반지름이 21m에 불과해 코너링을 돌 때 순간 스피드가 붙는다. 좋은 빙질에 가속도까지 더해지면 기록을 끌어올리는데 도움이 된다.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본 관계자들이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세계신기록이 나올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하는 이유다.
변수는 있다. 부상이다. 이번 대회에서 몇몇 선수가 인-아웃 코스 이동 때 속도를 이기지 못해 상대 선수와 부딪칠 뻔한 아찔한 장면이 있었다. 이후 이전 속도를 유지하지 못한 채 레이스를 마쳤다.
세계선수권을 통해 '평창 리허설'을 마친 선수들. 과연 강릉 스피드스케이팅장의 특징을 이해하고 본 대회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