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트렌드를 움직이는 사람들, 방송·예술·라이프·사이언스·사회경제 등 장르 구분 없이 곳곳에서 트렌드를 창조하는 리더들을 조명합니다. 2017년 스포츠조선 엔터스타일팀 에디터들이 100명의 트렌드를 이끄는 리더들의 인터뷰를 연재합니다. 그 열세번째 주인공은 프로젝트 그룹 '커플의 소리'를 이끌고 있는 아티스트 부부 허남훈 감독 그리고 김모아 작가입니다.
[스포츠조선 전혜진 기자] 그 남자 작사, 그 여자 작곡. 누구나 꿈꾸는 영화 같은 스토리를 그대로 삶에 담아낸 이들이 있다. 여행뿐 아니라 삶의 순간에서 받은 영감을 음악, 책, 영상으로 기록하는 프로젝트 그룹 '커플의 소리'다. 감독이자 연출가인 '찍는 남자' 허남훈 그리고 배우이자 작가인 '쓰는 여자' 김모아가 만나 이루어졌다.
남자 허남훈은 크리에이티브 컨텐츠랩 에이치앤에이치(hnh)를 이끌고 있다. 뮤직비디오, CF, 다큐멘터리 등 분야 할 것 없이 감각적인 영상작업을 해내고 있다. 여자 김모아는 원래 뮤지컬 배우였으나 지금은 감정을 글로 표현하는 작가다. 허남훈과 함께 스토리를 만들고, 프로듀서 역할도 병행한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소리를 내는 이들은 13년 된 커플로 서로에게 영감을 주며 감각적인 문화적 결과물을 쏟아낸다. 책, 음악, 영상…이들에게 어떤 경계는 없다. 그냥 조금 더 가깝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세상과 소통할 뿐이다. 또 이들은 트렌드하지 않은 게 가장 트렌드한 것이라 말한다. 요란하지 않게, 세상이 형식 지어놓은 틀을 내려놓고 자신들에게 맞춰진 가치로 흥미로운 작업을 해낸다. 개인에게 맞춰진 작은 가치 모두가 트렌드인 시대에, 그들의 등장은 그 어떤 것보다 트렌디하다.
최근 허남훈 김모아 부부는 가인과 제프버넷의 콜라보레이션 뮤직비디오 제작을 끝냈다. 또 프로젝트 그룹의 이름을 그대로 딴 '커플의 소리'라는 책을 발간, 조용하고 힘있는 방식으로 베스트 셀러 타이틀을 거머쥐기도 했다. 유럽 11개국, 26개 도시, 78일간의 기록을 고스란히 담은 책. 그런 바쁜 와중에도 여전히 또 다른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는 이들을 만났다. 이처럼 그들에게 작업은 작업이 아니다. 그저 일상 매 순간의 기록이고, 삶 속에 자연스레 흐르는 재미있는 소리다. (이하 일문일답)
-아티스트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부부입니다. 어떤 작업을 따로, 또 같이하는지 소개해주세요.
▶허남훈(이하 허): 삶과 일, 두 가지 영역이 있다고 보면 삶이 '커플의 소리'고 일이 'hnh'라 볼 수 있겠네요. hnh는 다큐멘터리와 광고를 만드는 회사고 커플의 소리는 김모아 허남훈이 함께하는 생각과 작업이죠. 가령 커플의 소리가 무언가를 한다면 hnh가 찍어주는, 서로 실험실과 같은 거라 볼 수 있겠네요. 근데 저희는 이 둘의 경계를 최대한 허무려고 해요. 그게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기도 하고요.
-서로를 만나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허: 원래는 엠넷 VJ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음악, 영상을 만드는 것 그리고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하고 많은 취미가 있었죠. 그러다 연기라는 걸 하게 됐고, 2003년 뮤지컬 배우를 할 때 배우였던 김모아 작가를 만났어요. 이후 올해로 14년째 만나고 있네요.
▶김모아(이하 김): 저는 대학교 시절, 그러니까 2000년부터 2010년까지 뮤지컬을 10년 정도 했어요. 지금은 책을 쓰고 시나리오 작업도 하고 영상 기획도 하죠. 특히 영상 기획과 준비는 감독님과 많은 부분 같이해요. 제가 촬영은 할 수 없지만, 촬영이 원만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일이죠. 근데 오히려 제가 하는 일에 많이 도움이 되는 게 감독님이에요. 미술, 소품, 장소 등에 관련된 모든 걸 같이 해주세요. 이후에 편집, 색보정, 사운드보정 하시면 저는 옆에서 '이씬 좋아요. 좋은 것 같아요' 같은 작은 도움을 주는 게 다예요.
-작업하신 영상물들을 보면, 소박하지만 뭔가 특별해요.
▶허: 굉장히 생활감 있는 작업들을 하려 해요. 세트를 짓는다거나 어떤 작업을 위해 새로운 걸 만들고 또 허무는 것은 낭비고 소비라고 생각하거든요. 모델에게도 메이크업이나 헤어도 잘 안하는 편이고, 의상도 집에 있는 옷을 많이 활용해요. 장소 선택도 실제 있는 공간을 최대한 활용하고 협소한 공간에서 작업하는 걸 좋아하죠. 그래서 배우들 섭외 할 때에도 저희는 그런 부분 미리 양해를 구해요. 이게 실제 모습을 반영하고 싶기 때문인 것 같아요. 상업적인 것으로 채우면 시간이 지나면 의미가 없다고 느껴지더라고요. 대신 저희의 삶이 묻어있으면 저희에겐 더 의미가 있으니까.
-낭만적인데요. 왠지 러브스토리도 낭만적일 것 같아요.
▶김:제가 먼저 고백했어요(웃음) 감독님은 오히려 도망 다니시고. 그 당시 무척 재미있는 작업들을 하는 게 멋있었어요. 한번은 음악을 만들어오셨는데 그걸 듣고 멋있었던 것 같기도(웃음) 그래서 뮤지컬 '금발이 너무해'라는 작품을 끝으로 제 길도 잠깐 멈추고, 같이 꿈을 꿔보고 싶었어요. 감독님이 제게 그런 질문을 많이 해주기도 했고 같은 길을 걷고 있는데 우리가 이렇게 살 게 아니라 매 순간 서로 질문하면서 살면 좋을 것 같다 싶었어요. 단순히 지금까지 해왔고 예전에 가졌던 꿈이라서 가는 게 아니라.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한번 해보자 하셨죠. "무얼 하고 싶은지"에 대한 대답을 하기가 조금 시간이 걸리긴 했는데, "글을 쓰고 싶고 노래를 부르고 싶고 여행을 다니고 싶다. 그리고 또 연기하고 싶다"고했더니 대답이 "하자. 같이 해보자"라고 돌아오더라고요. 그때부터 커플의 소리라는 작업을 시작하게 된 거죠. 그 후 2014년 여행을 떠났고, 2015년 5월에 '커플의 소리 인 유럽'이라는 책까지 낼 수 있었어요.
-서로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이 맞았던 거네요.
▶허: 많은 사람들이 저희가 같은 방향을 본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만은 않아요. 속마음을 꺼내야 하고 물어 봐줘야 하고 이야기해줘야 하고, 그게 다 같진 않더라고요. 저희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누구든 이야기를 나누면서 점차 같은 방향이라고 확신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제가 가고 싶은 방향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고 상대방 역시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줬을 때, 그 사이 맞는 요소들을 찾아 나가게 되는 것 같아요.
▶김:그런 방향성에 대한 대화가 많아요. 그 부분은 제가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hnh에서 감독님 작업을 하는 게 기존의 영상 작업보다는 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요. 그게 감독님이 살아오신 삶과도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고요.
▶허:저는 저희의 삶의 방향은 형식을 깨자, 삶이라는 형식, 한국의 남자여자가 사는 형식, 한국의 직장 또는 일이라는 형식을 무너뜨리고 싶어요. 우리는 그 형식에 너무 갇혀 살아가고 있으니까. 저는 사실 고등학교도, 대학교도 자퇴했어요. 그런 형식을 많이 깨는 삶을 살아온 것 같아요. 그렇게 각도가 틀어지니까 틀어진 방향대로 가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살아가고 있어요.
▶김: 좋아요(웃음)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 어렵잖아요.
▶허: 외롭고 특이한 경험이에요. 고등학교를 자퇴한다는 게 아마 상상하지 못할 거에요. 다들 등교한 오전 9시가 되면 길에 아무도 없어요. 친구도 없고 누가 있겠어요. 지금처럼 스마트 폰도 없이 마냥 서점가서 잡지보고, 레코드 샵에서 음악 듣고, 버스 타고 종점에서 종점 왔다 갔다 하고, 또 그냥 걷죠. 그런 게 큰 영향이 있었나 봐요. '나는 친구들과는 처한 상황이 다르구나, 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그래서 제가 하는 모든 것들은 다 독학으로 이루어진 거에요. 그런 부분에 있어 더 고민하고 뭐든 저만의 형식을 찾아 나가려고 하고 있는데, 삶에서도 그게 자연스럽게 묻어 나오더라고요. 배우를 하면서도 스스로 '눈치 보지 말자. 돈 버는 것, 이런 것보단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무엇을 하고 싶나.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나'라고 물었어요. 그래서 김모아 작가에게도 '나랑 어떻게 살래'라고 물었죠.
-그렇게 해서 '커플의 소리'가 탄생한 거네요.
▶김: 남자 허남훈과 여자 김모아에 대한 이야기에요. 그걸 함축적이고 직관적인 이름으로 표현했어요. 부부보단 발음이 좋아 커플'이라는 단어를 선택했죠. 우리가 할 수 있는 걸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고 글로 사진으로 소리를 전하고 싶었어요. 저희는 반반이 모자라 함께 다니거든요. 서로가 모자라서 같이 있는, 허남훈 김모아가 전하는 본질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커플의 소리' 책에 담긴 유럽 여행은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허: 제가 늘 꿈꿨던 게 사랑하는 사람이랑 뭘 하면서 살까, 만약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있다면 어떤 걸까 했던 거에요. 2010년, 일을 그만둘 당시에는 연출을 하고 있어요. 그러다 글을 한번 써보자, 여행을 준비해보자 싶었고 2010년부터 2013년까지 3년간 유럽 배낭여행과 책에 관련한 계획을 짰어요. 여행을 다니면서 영상을 많이 찍고 노래도 하고 싶었죠. '하고 싶은 게 그거니까, 우리는 그걸 해야겠다' 싶었어요. 사실 사람들이 생각했을 때 굉장히 여유로웠을 것 같지만, 굉장히 적은 예산으로 짰어요. 기타도 들어있고 침낭, 카메라, 외장하드까지 짊어진 배낭자체도 무거웠고. 흔한 호텔도 아니었어요. 그 자체가 우리에게는 굉장히 큰 도전이었어요.
▶김: 열두 명 열세 명 되는 사람들이 한방에서 자기도 했고요.(웃음)
▶허: 지금 저희가 다니는 여행이나 프로젝트도 거의 다 그래요. 저희 자체가 소위 '금수저'가 아니에요. 여유가 있었다면 당장 출발했겠죠. 그게 전혀 아니기에 현실적인 부분들을 신경 쓰며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준비 했어요. 곧 홈페이지에 묵혀놨던 준비관련 영상을 공개하긴 할텐데, 길거리 노숙부터 한국 친구 집에서 얹혀 자기도 하고 캠핑장 텐트장에서 자기도 하고. 숙박비를 아끼려 항구에서 텐트치고 자다가 쓰레기차에게 욕을 듣기도 했죠. 아무튼, 여행이라는 형식도 좀 무너뜨리고 싶고 그랬던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순간순간의 느낌이 살아있는 것 같아요. 책 디자인도 직접 했다고요.
▶김: 끝에 제가 제일 좋아하는 페이지가 있는데, 지은이 편집 디자인 마케팅 제가 전부 저희가 다했다고 나와요. (웃음) 이것까지도 저희 작업이라서.
▶허: 일화를 털어놓자면, 저희가 직접 출판사와 인쇄소를 찾아 다니며 독립출판을 했어요. 디자인부터 종이 선택 다 저희가 하는거죠.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었고 책부터 영상, 여행 많은 부분에서 둘이서 해결하려 했죠.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며 힘에 부칠 때까지 해보자.
-그렇게 책이 나오게 된 거군요. 베스트셀러가 되었던데요.
▶허: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하나하나 생기더라고요. 언젠가 한번 우리 주변에 친구, 형님, 누나, 동생 등 50명 단 100명이라도 우리를 기다리고 책을 궁금해 하는데 굉장히 크다는 걸 새삼 느꼈던 적이 있어요. 사실 책을 낸다는 게 몇천 명이 알아야 되고 홍보도 해야 하고 소문도 나야 하고 이런 건데.. 딱 진짜 그만큼만 있어도 행복한 거죠. 작게나마 기다려주고 기대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좋아서 큰 승부욕이나 욕심을 부리지 않았어요. 오히려 천명, 만명을 생각한 전략을 짰다면, 아마 잘 안되었을 것 같아요. 하하.
-흥미로운데요. 승부욕이나 욕심을 버린다는 것, 작업 철학인가요.
▶김: 저는 일할 때 '잘'하려고 하지 않아요. '잘' 하는 거에 대한 기준이 뭘까 싶은 생각을 매번 했고 그 기준은 사실 개인의 취향이잖아요. 아 우리가 잘하려고 하기 보단 꾸준히 계속 하려는 것 자체가 귀한 시대가 온 것 같으니, 우리가 그렇게 해도 되겠다 싶었어요. 잘하려고 하기보단 지금을, 지금의 인생을 사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허: 제 삶에서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다는 것, 자유롭다는 건 굉장히 큰 부분이에요. 저는 천성적으로 경쟁하는걸 안 좋아해요. 승부욕이나 잘하려고 하는 게 내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그 뒤를 계속 쫓고 가는 거고 본질 자체가 없어지는 거잖아요. 어떤 일을 왜 하려고 했는지도 잊게 되고. 요즘처럼 모두가 사진작가, 작가, 만화가, 가수인 시대에 본질을 갖는 것은 가장 중요해요. 작품이나 예술이 뭔지 사실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지만 본질을 얼마만큼 깊이 있게 우러러 나와서 했느냐가 좋은 작업이라고 봐요. 내가 어떤 좋은 카메라를 들었나, 어떤 좋은 회사에 있나 이런것 보단 그 작업은 어떤 마음으로 했나. 그 순수한 본질을 찾으려고 해요. 이번 책도 그런 의미였던 것 같아요.
-마지막 질문이네요. 두분이 생각하는 트렌드란 무엇인가요.
▶김:원래 트렌드라고 하면 '대세'라는 단어가 짝처럼 붙잖아요. 대세가 있기 때문에 그걸 따라가고자 하는 추종자가 생겨서 그게 트렌드가 되는데, 요즘은 그게 깨진 것 같아요. '그들만의 리그'가 많아졌고 각자의 취향이 존중되는 시대죠. 트렌드와 취향이 같이 가는 시점이랄까요. 또 사람들이 저마자의 취향을 알아가는 단계에 있는, 찾아가는 지금이죠. 그래서 주류보단 나만 아는 카페, 나만 아는 곳을 SNS에 올리는 것처럼, 지금은 딱 그런 시기인 것 같아요.
▶허:저는 트렌드를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트렌드가 없어졌으면 하는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아까 이야기했던 형식, 트렌드가 사실 무언가를 팔기 위해 마케팅을 하고 만들어 가는 건데, 그게 본질을 없앨 위험이 있어요. 각자의 개성과 생각이 있을 텐데. 과거 우리나라는 대중문화라는 게 굉장히 셌고, 유행이라는 게 엄청났어요. 다들 폴로 모자, 리바이스 진을 입던 때요. 짝퉁이라는 게 나왔다는 게 가짜를 입으면서까지 그걸 따라가고자 했던 거죠. 근데 지금은 예를 들면 딘이라는 가수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있을거에요. 각각 그들만의 리그가 있고 따로 또 같이 잘 가고 있는거죠. 트렌드라는 것, 대중 문화라는 게 많이 옅어진 것 같아요.
▶김:제가 말한 것도 그래요. 그래서 요즘이 재밌고 좋아요. 옛날 작가들, 위인들 혹은 현대 흔히 말하는 성공한 사람들, 그 많은 사람이 죽기 전에 공통으로 하는 말이 더 많은 나라를 여행하지 못한 거래요. 그게 왜 그럴까 생각하면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싶은데 못한거죠. 여행이라는 게 자연스럽게 삶에 스미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기회라고 생각해요. 요즘이 그런 때인 것 같아요. '어 나 이걸 좋아하나?' 이렇게 많이 찾아보고 다양해지는 다채로운 지점이에요. 이대로 잘 갔으면 좋겠어요.
gina1004@sportschosun.com, 사진=이새 기자 06sej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