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리그의 외국인선수 국적은 뻔했다. 브라질 아니면 동유럽이었다.
'세계 최대의 축구선수 수출국' 답게 브라질은 K리그에서도 위용을 과시했다. 1983년 이래 K리그를 거쳐간 717명의 외국인 선수 중 368명이 브라질 국적자였다. 비율이 무려 51.3%다. 지난 시즌에도 상주를 제외한 클래식 11팀의 외국인선수 33자리 중 45.5%에 달하는 15자리가 브라질 선수의 몫이었다. 전북과 제주는 아예 3자리를 모두 브라질 선수로 채웠다. 그 다음이 동유럽이었다. 유고,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등 구 유고 출신들이 주를 이뤘다. 브라질에 비해 숫자는 적었지만 초창기 K리그 외인사를 주도했던 라데, 마니치, 샤샤(이상 구 유고), K리그 사상 최고의 외인으로 평가받는 몬테네그로 출신 데얀(서울) 등 동유럽 출신 선수들이 남긴 임팩트는 강렬했다. 당연한듯 매 겨울 K리그 팀들이 외인 영입으로 고민할 때마다 브라질 아니면 동유럽 선수들이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2017년은 다르다. K리그 외인 다변화의 서막이 열렸다. 특히 서유럽 선수들이 대거 K리그에 발을 들였다.
이적시장에 새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강원은 23일 키프로스 국가대표 수비수 발렌티노스 영입을 발표했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예선전에도 출전했고, 유럽챔피언스리그와 유로파리그 경험이 있는 선수다. 울산은 23일 오스트리아 21세 이하 대표를 지낸 수비수 리차드를 데려왔다. 유로파리그에 출전할만큼 실력과 경험을 두루 갖췄다는 평이다. 잠잠하던 포항도 25일 새로운 외국인선수를 데려왔다. 스웨덴 연령별 대표를 두루 거친 수비수 마쿠스가 주인공이다. 네덜란드, 잉글랜드 등에서 두루 경험을 쌓은 장신 수비수다. 이들은 모두 해당 국가 '1호 K리거'로 이름을 올렸다.
뿐만 아니라 전남은 헝가리의 공격수 페체신, 대전은 조지아 출신의 레반 등을 더했고, 이랜드는 남미로 눈길을 돌려 파라과이의 아키노, 아르헨티나의 타블로를 데려왔다. 이들의 가세로 K리그는 더욱 풍성해졌다. 아직 외국인선수 영입 작업이 마무리되지 않았지만, 다음시즌 K리그를 뛰는 외인들의 국적은 18개국(헝가리, 조지아, 브라질, 키프로스, 니제르, 세르비아, 폴란드,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스웨덴, 기니-비사우,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스페인, 오스트리아, 코트디부아르, 루마니아)으로 늘었다. 아시아쿼터까지 포함하면 23개국(베트남, 일본, 동티모르, 팔레스타인, 호주)이다.
K리그 외인 다변화의 시작은 센터백 기근에서 출발했다. 김기희(상하이 선화) 김주영(허베이 화샤) 김형일(광저우 헝다) 등 K리그 최고의 센터백들이 중국으로 떠나며 공석이 생겼다. 그 자리를 메웠던 '아시아 쿼터' 호주 출신 수비수들을 찾기 어려워지면서 각 구단들은 눈을 세계 각지로 돌렸다. 아무래도 소통에서 한계가 있는 브라질 출신 보다는 영어에 능통한 유럽 출신 선수들이 물망에 올랐다. 특히 요니치(세레소 오사카)가 인천에서 성공시대를 열며 발빠르고 힘 좋은 유럽 출신 센터백들에 대한 수요가 급증했다. 이번에 온 발렌티노스, 리차드, 마쿠스의 포지션도 모두 센터백이다.
여기에 중국 무대가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면서 동아시아 축구를 바라보는 외국인 선수들의 시각의 변화도 원인으로 꼽힌다. 키프로스, 오스트리아, 스웨덴 등 비교적 자국리그가 성행하고 있는 리그의 선수들이 소속팀의 반대를 뒤로 하고 K리그를 밟은 이유는 역시 '중국, 일본, 중동 등 돈 많은 아시아리그로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기 위해서' 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그 거점으로 K리그를 택한 것이다. 실제 리차드, 마쿠스 등은 경력에 비해 그리 높지 않은 이적료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인선수는 K리그의 또 다른 축이다. 다양한 국적만큼 다양한 개성과 이야기거리로 무장한 새로운 외인들의 활약 속에 2017년 K리그가 더 풍성해지길 기대해 본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