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영웅 기자] 노래는 듣는 이로 하여금, 각자의 다른 추억으로 기억된다. 모두가 봄 노래를 부르며 사랑의 설렘을 느낄 때, 누군가는 가슴 아픈 이별을 떠올리며 다른 기억을 찾는 것처럼. 살면서 '내 얘기' 같은 노래를 접하는 건 또한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그만큼 노랫말은 그때 그 순간의 일상을 담아낸다. 게다가 진솔하게 쓰여진 노랫말은 마치 지난 날의 여러 단면을 들여다보는 듯 하다. 그런 면에서 악동뮤지션의 노랫말은 솔직하다.
'싱어송라이팅'이라는 문구 자체가 마케팅이 되는 요즘, 악동뮤지션은 현 가요계가 바라는 인물이다. 이찬혁은 대중성을 묘하게 비켜가면서도 공감의 노래를 만들고 이수현은 어린 나이에 기대하기 힘든 안정된 보이스로 노래한다. 공감을 주는 가사 한 줄은 위로와 희망이 되고, 노랫말은 동시대를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거울이다.
악동뮤지션의 노랫말은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구체적인 묘사로 가득하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아무 말 못하는 외국인이 되어버린다거나('외국인의 고백'), '걷는 게 귀찮아서, 배로 누운 그대로 여기저기 닦다 보니 안 해도 돼, 걸레로'('라면인건가') '매력학과라도 전공하셨나. 다이어트 중 마주친 치킨보다 매력 있어'('매력 있어') 등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사소한 일상을 비틀어 바라보는 재주가 탁월하다.
모든 노랫말을 짓는 이찬혁의 재능은 이번에도 유효하다. 태어날 때부터 캠코더로 일상을 기록했다면 어땠을까('생방송')란 상상부터 아메리카노보단 핫초코에 가까운 사랑에 대한 정의('Chocolady')까지, 남매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투명하기만 하다. 그 속에 어쿠스틱 기타 선율, 풍부한 스트링 사운드, 레게 등 다양한 음악 장르를 녹여 성장스토리를 다채롭게 펼쳐놨다. 저속한 유행어에서 해법을 찾지 않아도 자극적인 MSG를 첨가하지 않아도 충분히 감성을 건드리는 음악, 참신한 발상에서 튀어나온 듯한 창작의 산물이다.
세상을 거꾸로 바라보자 통통 튀는 노랫말과 멜로디도 쏟아졌다. 창작에 특별한 비법은 없다는 이찬혁은 "평소에 메모를 하거나, 무언가 음악의 소재를 찾기 위해 노력하진 않는다"면서 "한 순간에 확 몰입해서 음악 작업을 하는 편이다. 단시간에 집중할 수 있는 저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거의 내 방에서 모든 노래를 떠올린다"고 말했다. 그러자, 수현은 "오빠는 항상 밥 차리는 시간에 곡을 써서 엄마한테 혼난다. 상습적으로 꼭 그러더라"며 거들었다.
"음 글쎄요. 곡은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쓰는 편이에요. 영감을 받을 때마다 메모를 하거나 일부러 길거리를 관찰하며 소재를 찾으러 다니지도 않죠. 다만 이런 저런 생각이 너무 많아서 큰일이긴 해요.(웃음)"(찬혁)
이찬혁은 주로 기타를 치면서 곡의 가닥을 잡는다. 악보 대신 간략한 메모를 남기는 습관 덕에 편곡자들은 애를 먹는다. 참신한 발상과 박자 감각, 통통 튀는 멜로디는 틀에 박힌 작업 방식을 거부한 결과이기도 하다. 다만, 이찬혁의 머릿 속에만 있는 편곡에 대한 커다란 그림을 풀어내는 과정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번 통기타로 작업을 하는데 그 이유는 다른 악기는 다룰 줄 모르기 때문이에요. 다른 악기의 소리를 상상하면서 곡을 쓰는 편인데, 그래서 그런지 편곡자 분들이 많이 고생하시죠. 편곡하는 과정에서 스케일이 커지는 걸 경험하고, 제가 작은 소스 하나하나 확인하다보니 편곡자 분들에게는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 뿐이에요."(찬혁)
새 음반에는 기존의 악동뮤지션 음악이 다소 낯설 정도로 마이너풍의 노래도 수록됐다. 몽골에서 어두운 학창시절은 보냈다는 이찬혁은 "지금은 밝기만 해보이는 저희지만, 조금은 어두운 풍의 노래도 만들어 왔다. 사춘기 때 겪었던, 그때 자리잡았던 감정에서 시작된 곡들"이라며 "외롭고 또 생각이 많던 시절의 산물"이라고 소개했다. 잔잔한 분위기의 발라드 타이틀곡 '오랜 날 오랜 밤'은 동생 수현의 보컬 조화를 고려한 좋은 소리의 퍼즐과도 같은 곡이다.
"취미로 노래하던 저희가 이렇게 진짜 가수가 되어 음악을 들려준다는 건 참 보람찬 일이에요. 꿈이 없던 제가 이렇게 잘 할 수 있는 음악을 하게 되었고, 동생이랑 나란히 노래할 수 있게 된 것 모두 너무 감사한 일이죠."(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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