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빌딩(Rebuilding). 사전적 의미는 재건축. 그러나 최근에는 스포츠에서도 심심치 않게 사용된다. 주로 중하위권 팀의 체질 개선을 뜻한다.
이 단어는 올 시즌 삼성화재에도 딱 어울리는 말이다. 삼성화재는 2005년 V리그 태동 이후 11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 무대를 밟았다. 우승 8번, 준우승 3번을 차지하며 전통의 강호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지난 시즌, 기분 좋은 전통이 깨졌다. 삼성화재는 챔피언결정전 진출에 실패하며 아쉬움을 남겼다.
새로운 출발선에 선 삼성화재. 올 시즌을 앞두고 큰 변화를 겪었다. 발목 부상으로 고생하던 고희진은 은퇴 후 코치로 새 삶을 시작했고, 지태환은 입대했다. 자유계약(FA) 자격을 얻은 이선규는 KB손해보험으로 둥지를 옮겼고, 보상선수로 리베로 부용찬을 품에 안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삼성화재는 트레이드를 통해 약점으로 지적된 센터를 보강했다. 삼성화재는 리베로 이강주를 OK저축은행에 보내고 센터 김규민을 받는 1대1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선수단 구성이 확 달라졌다. 변화는 팀 색깔 자체를 바꿨다. 삼성화재는 그동안 베테랑 선수를 중심으로 경기를 꾸렸다. 코트 위에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겪은 노련한 선수들을 앞세워 정상의 자리를 지켜왔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올 시즌 삼성화재는 어느 팀 못지않게 젊다. '베테랑'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선수는 '1985년생 듀오' 세터 유광우와 주포 박철우 정도다. 나머지는 20대 초중반의 어린 선수들이다.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경기 경험이 부족한 만큼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 임도헌 삼성화재 감독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임 감독은 "어린 선수들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경기를 읽고 흐름을 따라가야 하는데 부족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리빌딩은 분명 불안 요소가 잠재돼 있지만, 반대로 무한한 가능성을 품고 있다. 어린 선수들의 성장만큼 미래의 큰 희망은 없다. 임 감독은 "우리 팀 어린 선수들이 열심히 하고 있다"며 "이들의 성장은 우리의 희망"이라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실제 세터 이민욱과 손태훈은 올 시즌 눈에 띄는 성장세를 보이며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2014년 얼리 드래프트로 또래보다 먼저 프로에 발을 내디딘 이민욱은 제 포지션인 세터보다 원포인트 서버로 경기에 나설 때가 많다. 그러나 경기 중간중간 안정적인 토스로 경기를 조율한다.
임 감독은 "민욱이는 토스질 자체가 매우 좋다. 다만 아직은 2단 토스 등에서 흔들릴 때가 있다"며 "워낙 좋은 선수인 만큼 조금만 더 실력을 끌어올리면 제 몫은 충분히 할 것으로 본다"고 칭찬했다.
이민욱은 "비시즌 동안 열심히 준비한다고 했는데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어떤 역할이든 팀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세터로서도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고희진 이선규 지태환 등 센터들의 공백 속에 주전 자리를 꿰찬 2년차 신인 손태훈은 매 경기 경험을 쌓으며 발전하고 있다. 지난 시즌 14경기에 출전했던 손태훈은 올 시즌 벌써 18경기에 나섰다.
임 감독은 "태훈이는 처음과 비교해 많이 좋아졌다"며 "아직 부족한 점이 있지만 경기 경험을 통해 성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손태훈은 "프로에 와서 경기를 제대로 뛰는 것은 이번 시즌이 처음"이라며 "비시즌 동안 (유)광우형과 속공 훈련을 많이 했다. 2단 토스와 서브 등 기본기 훈련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는 "배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집중해서 하나가 돼야 된다는 걸 느꼈다. 후반기가 시작됐는데, 남은 경기 부상 없이 잘 치러서 봄배구는 물론, 우승도 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전반기 18경기에서 승점 26점을 쌓으며 5위에 이름을 올린 삼성화재는 어린 선수들의 성장을 앞세워 후반기 도약을 노린다. 임 감독은 "전반기 마지막에 아쉬움이 있었지만, 4라운드 첫 경기에서 승리하며 분위기를 바꿨다. 어린 선수들도 성장하고 있는 만큼 후반기에는 더욱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