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고인이 된 전설적인 프로레슬러 김일 선수의 경기를 영상을 통해 본 적이 있다. 기자가 태어나기도 전에 활약했던 선수이기에 그의 활약상을 직접 본 적은 없지만 박치기로 거구의 외국인 선수를 쓰러트렸다는 이야기는 숱하게 들었던 터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서 눈으로 직접 본 김일 선수의 경기는 호쾌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금의 기준에 비추어 봤을 때, 경기 진행은 무척이나 느릿느릿했고, 사용되는 기술은 지극히 한정적이었다.
김일 선수가 당대 최고의 선수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기준이 달라진 지금에 와서 그 기량이 최고였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선수들의 기량을 평가하는 기준이 그 당시와는 달라졌기 때문이다.
기억 속에서 오랜 기간을 거치며 여러번 미화된 대상은 기록에 남아있는 실제 이미지보다 훨씬 아름답게 그려지고는 한다. 이런 것을 흔히들 '추억 보정'이라 부른다.
'추억 보정'은 비단 사람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추억 속에 있는 모든 것에 적용되며 이는 게임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에 재미있게 즐겼던 게임을 지금 다시 즐겼을 때 그때의 그 재미를 그대로 느낄 확률은 무척이나 희박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게임을 평가하는 기준도 덩달아 높아졌다. 당시의 기준으로는 재미있던 게임이었겠지만 지금 다시 플레이하게 되면 사람들은 지금의 기준에 맞춰 그 게임을 평가하게 된다.
또한 소위 명작으로 불리는 게임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를 기억하는 이들의 '찬양'을 받게 된다. 당시엔 칭찬 받아 마땅한 게임성을 지니고 있는 게임이라 할지라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게임에 대한 고평가가 이어지게 되면, 해당 게임을 접하지 못 한 이들은 게임에 대한 막연한 환상이 생기게 된다. 자기 스스로 만든 추억이 아닌 타인이 만들어준 '추억 보정'이 자리잡은 것이다.
문제는 추후에 그 게임을 플레이하게 됐을 시에 생긴다. 실제 게임이 '주변의 평가에 따라 자신의 머리속에 자리잡은 된 환상'을 뛰어넘는 경우는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IP 재해석, IP 활용이 대세가 된 요즘. 이러한 '추억 보정'은 개발사들이 극히 경계해야 할 심리적인 요소다. 개인이 과거의 추억을 되짚어보기 위해, 소문으로만 들었던 게임을 한 번 해보기 위해 예전 게임을 한 번 플레이해보는 것은 어디까지나 취미의 영역이다.
하지만 기업이 과거의 게임을 다시 한번 시장에 출시하는 것은 사업의 영역이다. 무게감이 다르다. 취미로 즐기는 것이야 '에이. 그땐 재미있었는데' 하면서 플레이를 멈추면 그만이지만 사업은 그렇지 않다. 개인이 취미로 추억을 떠올리는 데에는 기 만원이면 충분하지만, 기업이 추억을 다루려면 수십억 원이 필요하다.
이 IP가 오랜 시간을 뛰어넘어도 인정받을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이 IP가 등장한 이후 이러한 류의 게임이 얼마나 등장했는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 그저 '과거에 유명했고 이름값이 높은 게임이니 리메이크 한다'는 식의 개발은 지양해야 한다. 개발자, 기획자가 해당 작품의 팬이어서 원작에 대해 후한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거의 명작을 리메이크 한다는 것은 언뜻 봐서는 쉬운 결정인 것 같지만 사실 무척이나 까다로운 결정이다. 과거의 모습에서 조금만 어긋나면 원작을 기억하는 이들은 '내가 알던 그 게임이 아니다!' 라며 반발할 것이고, 과거의 모습을 뚜렷하게 남겨두면 원작을 기억 못 하는 유저들에게는 '케케묵은 게임이다'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올해만 해도 과거 IP를 재해석한 게임들이 여럿 등장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 하는 성과를 거둔 사례가 적지 않다. 기억 속의 IP가 현실에서 반드시 예전과 같은 위력을 보이기는 어렵다는 것이 입증됐다 할 수 있다.
추억을 다시 접하게 해줘서 고맙다는 반응이 나올 수도 있지만, 반대로 추억은 추억 속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는 말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 과거 IP 리메이크 작업이다. 때문에 IP 리메이크 결정은 신중해야 한다. 실패한 IP 리메이크는 단순히 게임의 실패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추억'까지도 파괴할 우려가 있으니 말이다.
게임인사이트 김한준 기자 endoflife81@gameinsigh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