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5억원을 뛰어넘는 소외감은 존재했나.
왼손 에이스 차우찬(29)이 삼성 라이온즈를 떠나 LG 트윈스에 둥지를 틀었다. 4년간 95억원(계약금 55억원, 연봉 10억원)을 보장받았다. 옵션계약 규모는 밝히지 않았다.
LG행은 어느 정도 알려진 사실이었다. 발표액이 나오자 논란이 가중됐다. 삼성은 지난주 차우찬과의 협상내역을 큰 테두리에서 직간접적으로 털어놨다. FA(자유계약선수)를 놓쳤다는 판단이 서면 팬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흔히 꺼내드는 카드다. 삼성은 100억원+α에 2년 뒤 해외진출 협력을 명시했다. 해외진출을 돕겠다는 것은 차우찬의 향후 초대형 대박기회를 막지 않겠다는 뜻이다. 실질적인 유인책은 아니다.
삼성에서 제시한 옵션 세부조항과 LG의 옵션 세부조항을 비롯한 축소발표, 세금대납 의혹 등은 여전히 수면 아래에 있다. 드러난 금액은 발표액 기준 100억원(삼성 제시), 그리고 95억원(LG 최종)이다. 그렇다면 차우찬은 5억원을 손해보면서 삼성을 떠났다는 얘기다.
LG 구단 관계자는 "차우찬이 입단협상 과정에서 몸값 뿐만 아니라 잠실구장 이점, 팀 분위기, FA 시작과 함께 변화 추구 등을 얘기했다"고 밝혔다. 돈 외에도 심리적인 요인이 있었다는 주장이다. 삼성에서 KIA로 이적한 최형우는 "이적 이유가 돈이 전부는 아니다. 김기태 감독님과 꼭 같이 야구하고 싶었다. 때로 삼성에서 약간의 소외감을 느낀 적이 있었다. (차)우찬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우린 대구출신이 아니다"고 말했다. 최형우는 전주고, 차우찬은 군산상고 출신이다.
삼성 구단 관계자는 "최형우와 차우찬을 잡기 위해 구단은 진정성을 가지고 협상에 임했다. 최형우가 처음에 던진 희망액은 우리가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차우찬의 경우 최형우를 뛰어넘는 금액을 제시했던 것이 맞다. 구단 사상 최고금액을 제시했다. 이적 뒤 팀분위기나 소외감 등을 언급하는 것은 팀을 떠나는데 대한 비난과 부담을 희석시키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실제 FA 협상은 상당히 복잡하다. 1차 희망액 카드를 오픈하자마자 도장을 찍는 경우는 거의 없다. 시간을 끌면서 줄다리기를 하고 이 과정에서 옵션과 이면계약, 부대비용 정산(세금대납이나 아파트 제공) 등이 논의된다. 선수를 놓친 팀에서 협상액을 공개하는 경우 대부분 진실공방이 벌어진다.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몸값 외 이적요인은 야구환경이나 부당한 대우 정도 밖에 없다.
삼성은 최근들어 투자에 소극적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합리적인 투자를 강조하고 제일기획으로 이관된 뒤에도 쓰는 돈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항변에도 '삼성이 변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박석민이 떠나고, 최형우에 이어 차우찬도 짐을 쌌다. 예전같았으면 상상조차 못했을 일이다. 삼성의 주축 FA에 대해선 타팀에서 영입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대구고를 졸업한 박석민은 역대 최고액(96억원)을 받고 NC 다이노스로 가면서 잔류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눈물을 쏟았다. 타지역 출신 최형우와 차우찬은 라이온즈 내에서 느낀 소외감을 언급하고 떠났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긴장과 알력, 갈등이 없을 순 없다. 모든 팀에는 친하고 덜 친한 선수들의 무리가 존재한다. 문제는 어떤 형식으로 이 부분이 분출되느냐와 또 어떻게 봉합하느냐다.
삼성은 지난해까지 5년 연속 정규리그 1위(4년 연속 통합우승)였다. 올해 사상 최악인 9위로 떨어지면서 온갖 얘기가 나오고 있다. 이 과정에서 주축선수 A의 트레이드 요구설, FA 이적 과정에서 팀 내 출신지역별 내부갈등이 언급됐다. 지난해 말 윤성환 안지만(계약해지 요청) 임창용(방출)의 해외원정도박 스캔들도 '이너 서클'의 부작용 중 하나였다.
실체를 밝히기 어려운 '팀내 소외감'이지만 팀스포츠인 야구에서 이 부분이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다. 연고지 출신과 비연고지 출신이 걷돌았다는 지적에도 삼성은 왕조를 구축했다. 좋은 팀성적이 성벽 역할을 했고, 여러 집단을 용광로처럼 품었던 류중일 감독의 존재감도 대단했다. 2017년 전력이 약화된 삼성과 새 사령탑 김한수 감독에겐 극복해야할 과제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