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배선영·조지영 기자] 지난여름 배우 박정민(29)은 그 누구보다 뜨거운 여름을 보내야만 했다. 연기에 대한 고뇌도 많았고 앞으로의 행보에 대해서도 생각이 많았던 시기였다. 게다가 생각지 못한 기회였던 tvN 금토드라마 '안투라지'(서재원·권소라 극본, 장영우 연출)까지 발등에 떨어졌으니 어찌 뜨겁지 않게 보낼 수 있었겠나. 그때 박정민은 조용했지만 꽤 욱신거린 성장통, 슬럼프를 겪어야만 했다.
박정민의 시작은 창대한 축에 속했다. 어렸을 때 일찌감치 배우의 꿈을 키웠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잠시 꿈을 접고 2005년 고려대학교 인문학부로 입학했다. 하지만 하고 싶은 건 하고야 마는 직성 때문에 1년 만에 쿨한 자퇴서를 제출, 보란 듯이 이듬해 연기 명문 한국예술종합학교 영화과·연기과에 진학했다. 학교에 다니면서 단편영화 '세상의 끝'(07, 남궁선 감독) '연애담'(09, 김도연 감독) '그룹스터디'(10, 최정식 감독)에 출연, '괴물 신예'로 시동을 걸었고 마침내 독립영화 '파수꾼'(10, 윤성현 감독)으로 질주했다.
6년이 지난 해묵은 작품이지만 지금도 박정민을 떠올릴 때 단연 1순위로 언급되는 작품이 바로 '파수꾼'이다. 기태(이제훈)의 둘도 없는 친구였지만 훗날 갈등의 불씨가 된 베키, 백희준으로 스크린에 강렬한 한 방을 날린 그는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한 '불꽃 신인'이었다. 아직도 베키 박정민의 마초미(美)를 잊지 못한 여성팬들이 상당하다는, '믿거나 말거나' 풍문이다.
이렇듯 '파수꾼'으로 본격적인 연기 행보를 펼쳐온 박정민. '댄싱퀸'(12, 이석훈 감독) '전설의 주먹'(13, 강우석 감독) '감기'(13, 김성수 감독) '피끓는 청춘'(14, 이연우 감독) '신촌좀비만화'(14, 류승완·한지승·김태용 감독) '오피스'(15, 홍원찬 감독) 그리고 올해 상복을 안겨준 '동주'(16, 이준익 감독) 등으로 스크린을 사로잡았다. 물론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MBC 드라마 '심야병원'(11) '신들의 만찬'(12) '골든타임'(12) SBS 드라마 '너희들은 포위됐다'(14) tvN '일리있는 사랑'(14) '응답하라 1988'(15) 등 흥행작에서 신스틸러로 활약, 쉼 없이 달렸다.
"대중에게 조금씩 얼굴을 알린 최근에서야 좋은 작품에 많이 참여할 수 있었어요. 그 전엔 일이 없어 쉬기 부지기수였죠(웃음). 청년취업난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르는데 한동안 저도 그 대열에 속했다가 이제 겨우 탈출한 셈이죠. 그저 매일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일이 많아서 힘든 적은 단언컨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정말이에요. 하하. 오히려 바쁘게 살아갈 수 있어 감사했죠. 그런데 체력적으로 지쳐있어 힘든 적은 없었는데 연기에 대한 슬럼프 때문에 힘들었어요. 처음부터 제가 연기를 잘해서 이 길을 선택했다기보다는 진짜 하고 싶어서 하게 된 케이스인데 이게 잘한 일인지 늘 의문이었거든요. 아마 모든 배우가 한 번쯤 거쳐 가는 슬럼프가 아닐까요?"
자존감을 높여주는 셀프 칭찬보다 따끔한 자기반성의 시간을 더욱 즐긴다는 박정민. 아직도 모니터 속 자신의 연기를 보는 게 낯뜨거울 정도로 부끄럽고 부족해 보인다는 그는 무서우리만큼 냉정하고 잔인할 만큼 혹독하다. 시작인 '파수꾼'도 그러했고 극찬을 한몸에 받은 '동주'도 그랬다. 그리고 첫 주연작이자 첫 사전제작 드라마인 '안투라지'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배우들은 모르겠지만 전 '안투라지'가 더 많이 부담으로 다가와요. 전 세계 인기작이잖아요. 이렇게 쿨하고 주목받는 캐릭터를 처음 해보니까요. 이왕 도전한 거 멋있게 리메이크해보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될까 봐 너무 걱정돼요. 또 그간 강렬한 캐릭터를 많이 해와서 '안투라지' 이호진처럼 연약하고 유약한 캐릭터에 대한 감이 잘 안 잡혔어요. 톤 잡는데 애를 먹었죠. 또 워낙 대스타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주인공들도 한류스타인 데다 카메오까지 대단한 분들이 대거 출연하니까 주눅 들더라고요. 솔직하게 첫 촬영 때엔 조금 헤맸어요. 하하."
꾸밈없는 박정민은 당시의 소회를 있는 그대로 쏟아냈다. 많이 힘들었고 혼란스러웠으며 어려웠다고. 평소에도 '연기가 제일 어려워요'라고 말하는 타입이지만 이번엔 차원이 달랐던 어려움이었다고. 그래도 불행 중 다행으로 극에 치달은 멘붕은 함께한 동료 서강준, 이광수, 이동휘, 그리고 인생 선배 조진웅 덕분에 극복할 수 있었다.
"'안투라지'에서 가장 크게 얻은 건 아무래도 사람들인 것 같아요. (서)강준이나, (이)광수 형, (이)동휘 형, 또 사랑하는 (조)진웅 선배까지요. 누구 하나 틀어짐 없이 완전 친해졌어요. 케미스트리가 굳이 필요 없을 정도로 영혼이 통하는 친구들이 됐어요. 이런저런 이야기 하지 않아도 눈빛만 봐도 통하는 그런 사람들 있잖아요. 제가 캐릭터로 고민하고 있을 때 이들 덕분에 잘 극복했어요. 근데 신기한 게 다들 '안투라지' 촬영 당시 힘들어 했어요(웃음). 저뿐만 아니라 다들 고민이 많은 시기였죠."
힘들었던 여름, 독수리('안투라지') 오형제였기에 버텨낸 박정민. 흥행 여부를 떠나 '안투라지'가 자신의 인생작 중 하나가 됐다는 그는 인복 하나는 온 우주를 통틀어 최고라고 자신했다.
"촬영 들어가거나 준비할 때 저희끼리 모여서 많은 이야기를 나눠요. 뭐 뻔한 이야기, 평범한 이야기, 혹은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인데 그중에 다들 조금씩 고민이 묻어있어요. 사내 녀석들이라 애틋하게 등 토닥이며 힘내라고 말하지 않지만 다들 알고 있고 마음으로 위로해주죠. 그냥 동료애로 극복한 거 같아요(웃음). 그리고 제일 중요했던 별자리 운세요. 각자 둘러앉아 별자리 운세를 펼쳐놓고 '맞아!' 이러면서 희로애락을 함께 나눴죠. 하하."
<[출장토크③]로 이어집니다>
sypova@sportschosun.com·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뉴미디어팀 이새 기자 06sejong@sportschosun.com, 영화 '파수꾼' '전설의 주먹' '무서운 이야기3' '동주'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