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박영웅 기자] "기적을 노래하라"
2009년 시작한 엠넷 '슈퍼스타K'의 이 대표 문구는 가수를 꿈꾸는 이들에겐 희망이었다. 보통사람이 스타가 되는 시대, 누군가는 진실된 목소리 하나로 스타덤에 올랐고 꿈을 위한 도전은 감동의 인생 역전 드라마를 일궈냈다. 이후 '슈퍼스타K'는 전세계 오디션 붐을 타고 대표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성장했고, 가요계에 많은 스타를 배출했다.
올해로 8번째 시즌을 맞이한 '슈퍼스타K'는 전국민 오디션이란 타이틀이 민망할 정도로 추락했다. 무려 7명의 심사위원 제도를 도입하고 점수 산정 시스템을 재정비하는 등 반등의 기회를 노렸지만 시청률 1%를 겉돌다가 막을 내렸다. 지난 2010년 허각과 존박이 우승 자리를 놓고 각축을 벌이던 때에 비하면 매우 초라한 성적이다.
처음부터 예정된 결과였고, 마지막까지 반전도 논란도 없었다. 초반부터 '지리산 소울' '지리산 소년'으로 화제가 된 김영근에 모든 관심이 집중됐고, 결승전 마저 그랬다. '어차피 우승은 김영근'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은 정도였다. 김영근과 비견될만한 경쟁자는 등장하지 않았고 방송은 결국 뻔한 결과로 마무리됐다. 프로그램의 가장 큰 매력인 긴장감이 한 없이 떨어지니 자연스레 화제성도 시청률도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방송 포맷이다. 꿈을 향해 달려가는 참가자들의 간절한 사연은 인생역전 스토리의 좋은 소재가 되고, 마지막 희망을 달성했을 땐 두 배의 감동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가수를 꿈꾸는 많은 이들이 오디션에 매달렸다. 거대한 팬덤없이 노래 한 번 알리기 힘든 요즘 세상에서 잘 키운 음악 예능은 무명 가수를 단 번에 스타로 만들었고, '슈퍼스타K' '위대한 탄생' 'K팝스타' 등 무명 스타들의 오디션은 물론 '투유 프로젝트 슈가맨' '불후의 명곡' '너의 목소리가 들려' 등 형식만 다를 뿐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쏟아졌다.
물론 실력있는 뮤지션들이 대중에 알려지는 건 크게 반길 일이다. 환풍기 수리공에서 노래 잘 하는 국민가수로 단숨에 떠오른 허각의 경우가 그랬고, '쇼미더머니'를 통해 장르씬에서만 실력을 인정받던 래퍼들이 차례로 대중에 소개됐다. 더 크게 보자면, 음악 예능이다. 자이언티의 '양화대교'는 '무한도전'에 삽입되면서 다시 음원차트 1위에 올랐고, 복면을 쓰고 진솔한 노래를 들려준 연예인들은 주말 검색어를 독차지한다. 더욱 거세진 음악 예능의 힘은 올해도 유효하다.
대중 매체의 막강한 영향력이 하루 이틀 얘기는 아니지만, 가요계의 방송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우려의 목소리도 커진다. 많은 가수들이 기회를 얻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견해도 있지만 음악보다 방송으로 존재감을 어필해야 한다는 점은 씁쓸하다. 더 이상 음악만 잘해서는 생존할 수 없는 환경에서 방송을 타고 이슈가 돼야 그나마 노래를 알릴 수 있는 게 현실. 게다가 방송 출연도 기획사의 규모가 커야 가능한 일이니 그들간의 격차는 더욱 벌어지는 게 사실이다. 이렇게 방송의 힘이 막강해진 만큼, 그들의 책임있는 태도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결국 문제는 새로운 뮤지션을 발굴할 창구가 없다는 점이다. '쇼미더머니' 방송 초기,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비난하던 많은 래퍼들이 이제는 앞다퉈 출연을 원하고 있고, 화제가 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면 논란도 서슴치 않는게 요즘 가요계 현실이다. 예능 프로그램에 한 번 노출되는 것이 음악무대 보다 효과적인 홍보 창구가 된 세상이다. 뮤직비디오, 유튜브, 리얼리티, 오디션 등 음악은 이제 더 이상 음악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들리는 것과 보이는 것, 또 다른 자극적인 어떤 것들에 점령당하고 있다.
본질적으로 전문성 없이 재능있는 뮤지션을 알리는 것 자체에 한계가 있다. 음악의 다양성과 실력파 뮤지션의 발굴. 이제 방송을 계기로 자리잡은 대중의 관심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 방송사는 단순히 시청률 좇기가 아닌 양질의 진정성을 전달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매해 반복되는 음악 예능과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열풍. 어쩌면 '다양성'의 탈을 쓴 '획일성'의 또 다른 그림자일지 모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방송사는 물론 오디션 심사위원들의 한 마디에도 책임이 요구된다. 대중은 노출된 만큼 영향을 받기 나름이다. '세상에 없는 목소리'라는 둥 무책임한 극찬은 대중을 흔들리게 한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계산된 이슈에 음원공개까지, 황금시간대에 홍보시간을 배정받고 음원 출시되는 과정은 내년에도 반복될 것이다. 어쩌면 스타를 만들고 히트곡을 만드는 건 대중이 아니다. TV가 짜놓은 플레이리스트 안에서 히트곡은 나온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전세계적인 트렌드였고 여전히 대중음악계의 걱정거리다. '흙수저'의 인생역전 스토리가 진정성을 얻기 위해서는 무대가 끝나고 난 뒤의 스토리가 더욱 중요하다. '슈퍼스타K'가 서인국, 허각, 존박, 울랄라세션 이후 스타를 찾지 못한 건 프로그램의 방향성 문제도 있지만 그 과정에서 참가자들의 실력에 대한 믿음도 깨졌기 때문이다.
'슈퍼스타K'가 국민적인 신드롬을 일으켰던 이유는 의외성에 있다. 일반인에게도 꿈을 이룰 기회가 열리고 많은 이들이 공감, 더 나아가서는 통쾌함 마저 느꼈다. 단순히 스타등용문의 기회가 아닌, 진짜 열린 무대가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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