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만장했던 프로 생활을 마감하고 은퇴를 선언한 이병규는 "17년을 LG에서 뛰면서 우승 한 번 해보지 못해 팬들께 매우 죄송하다. 동료들에게도 가장 미안한 부분"이라고 했다.
이병규는 단국대를 졸업하고 1997년 LG 트윈스에 입단해 올해까지 프로에서 20년을 뛰었다. 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활약했던 2007~2009년, 3년을 제외하면 17년간 LG 유니폼을 입었다. 그러나 한 번도 우승 트로피를 들어보지 못했다. LG가 1994년 페넌트레이스와 한국시리즈 우승을 동시에 거머쥔 뒤 올해까지 22년간 무관에 그쳤으니, LG 팬들 못지 않게 이병규도 아쉬움이 진하게 남을 수밖에 없었다.
이병규는 "2002년 한국시리즈에서 졌을 때, 2013년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짓는 날, 그리고 올해 10월 8일이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했다. 이병규는 한국시리즈를 3차례 경험했으나, 모두 준우승에 그쳤다. 1997년에는 해태 타이거즈에 패했고, 1998년에는 현대 유니콘스에 우승을 내줬다.
우승에 '한'이 맺힌 선수는 한둘이 아니다. 좌완 불펜으로 당대를 호령했던 류택현도 20시즌을 활약하면서 한국시리즈 우승 현장에는 한번도 자리하지 못했다. 한국시리즈 출전은 2002년 딱 한 번뿐이다. OB 베어스 시절이던 1995년에는 부상과 부진 때문에 한국시리즈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홈런왕 이만수도 16년 동안 한 번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맛보지 못했다. 준우승만 5번을 했다. 1985년 전후기 통합 우승을 삼성 라이온즈의 첫 'V'라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으나, 은퇴 후 이만수의 마음 속에는 언제나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프로 초창기 강력한 전력을 자랑했던 삼성의 이만수를 비롯해 김성래 장효조 김시진 또한 한 번도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팀을 잘 만나야 한다는 말이 있다. 1980~1990년대 '왕조'로 불리던 해태, 2000년 전후 최강팀이었던 현대, 2000년대 후반 SK 와이번스, 2010년대 초반 삼성에서 뛴 선수들이 아무래도 우승 경험이 많다. 한국시리즈 최다 우승 경험자는 김정수다. 해태에서 1986~1989년, 1991년, 1993년, 1996~1997년 등 총 8차례 한국시리즈 정상을 밟았다. 한대화 배영수 박한이 진갑용 등 4명은 7번 우승을 차지했다. 한대화는 해태에서 6번 우승했고, 1994년에는 LG에서 태평양 돌핀스를 꺾고 우승 반지를 끼었다. 배영수 박한이 진갑용은 삼성 소속으로 2002년, 2005~2006년, 2011~2014년 함께 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진갑용은 OB 베어스에서 데뷔해 삼성으로 옮긴 뒤 7번 우승했다. 프로 20년을 마치고 지난해 은퇴한 박진만과 LG, 현대, 삼성을 거치며 2루수로 이름을 높인 박종호도 총 6차례 우승을 맛봤다.
KBO에 따르면, 1982년 프로야구 출범 후 35년 동안 1군에서 15시즌 이상 활약한 선수는 총 96명이다. 투수가 38명, 타자가 58명. 이 가운데 출전을 기준으로 한국시리즈 우승 현장에 한 번도 서보지 못한 선수는 28명이다. 투수 11명, 타자 17명. 현역 최고령인 KIA 최영필은 19시즌을 뛰면서 "우승컵에 한 번도 손을 대지 못했다"고 했다. 권용관 김민재 조인성 최동수 역시 19시즌을 무관에 그쳤다. 반면 5번 이상 우승 반지를 낀 선수는 12명이다. 빼어난 실력과 강팀 소속이라는 선택된 자들만이 숱한 우승의 영광을 맛볼 수 있었다.
KBO리그 현역 선수 가운데 우승을 가장 갈망하는 선수는 누구일까. 현역 15시즌을 넘긴 베테랑 중에서는 이범호 조인성 박용택 김주찬 박정진은 우승을 갈망하고 있다. 전무후무한 타격 7관왕 출신의 이대호 역시 KBO리그에서는 우승 경험이 없다. 2001년 한화에 입단한 김태균도 마찬가지다.
메이저리그에서는 배리 본즈가 무관의 제왕으로 유명하다. 1986년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서 데뷔한 본즈는 2007년을 끝으로 은퇴할 때까지 월드시리즈에는 딱 한 번 뛰었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소속이던 2002년 애너하임 에인절스와의 월드시리즈에서 7차전까지 모두 뛰면서 4홈런과 6타점을 올렸지만, 팀은 3승4패로 준우승에 머물렀다. 본즈는 우승의 기쁨을 한 번도 누리지 못한 채 약물 파동으로 불명예 은퇴하고 말았다.
메이저리그 최다 시즌(27시즌) 기록을 갖고 있는 놀란 라이언도 정작 월드시리즈 반지가 없다. 1969년 볼티모어 오리올스 시절 뉴욕 메츠와의 월드시리즈에 구원투수로 한 차례 등판했을 뿐, 이후 1993년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을 때까지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라이언은 또한 통산 324승, 5714탈삼진을 올리면서도 사이영상은 한 번도 받지 못했다. 투수쪽 무관의 제왕, 대명사였다. 약물 파동에서 깨끗했던 홈런왕 켄 그리피 주니어는 22시즌 동안 한 번도 우승하지 못한 것에 대해 부친 시니어한테 아쉬움을 표현했다고 한다.
내년 시즌을 끝으로 유니폼을 벗겠다고 한 이승엽은 2002년 삼성의 첫 한국시리즈 우승 때 "나 때문이라도 우승을 하고 싶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KBO리그 역사상 최고 타자로 평가받는 양준혁도 3차례 한국시리즈 우승 가운데 2002년을 가장 눈물겨운 순간으로 남는다고 했다.
실력은 몸값으로 표현되고, 명예는 우승과 함께 기억된다. 몸값은 감출 수 있어도, 공평하게 기회가 주어지는 우승은 기록으로 남는다. 이병규가 말한 우승은 누가 뭐래도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수들의 궁극적 목표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