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dium App

Experience a richer experience on our mobile app!

몸값 100억원 시대, 연봉 역사로 본 거품의 심각성

by

KBO리그는 매년 천정부지로 치솟는 선수 몸값 때문에 '거품' 논란이 인다. 그러나 누구도 이 부분에 대해 명쾌하게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모기업의 지원금(홍보 명목)에 의존하는 형태로 구단을 운영하고 있어 원하는 FA(자유계약선수)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의지에 따라 투자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2~3개팀간 경쟁이 붙으면 해당 FA는 앉아서 즐거운 고민에 빠진다. 과거 활약상과 미래의 기대치를 계량화해 몸값을 산정하는 체계화된 시스템이 없는 국내 사정상, FA 협상 주도권은 선수가 쥐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부르는 게 값이다.

이번 FA 시장에서는 최형우가 사상 처음으로 100억원을 돌파했다. 24일 KIA 타이거즈와 4년 총액 100억원에 계약했다. 지난해 말 박석민이 NC 다이노스와 4년 96억원에 계약하면서 올해 100억원 탄생은 예상된 바다. 최형우 이외에 김광현 양현종 차우찬 황재균, 국내 복귀도 염두에 두고 있는 이대호 등도 100억원이 언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프로야구 선수들의 몸값 폭등은 FA 제도가 도입된 2000년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프로 출범 첫 해인 1982년 선수 평균 연봉은 1215만원이었다. 올해 평균 연봉은 10.4배가 오른 1억2656만원이었다. 구단별 상위 27명, 즉 1군에 나설 수 있는 선수들만 따지면 2억1620만원에 이른다. 지난해 1억9325만원에서 11.9%가 올랐다. 1군서 주전으로 뛰면 연봉 2억원은 기본이다. 프로 원년에는 2군 제도가 없었으니, 1군 기준으로 보면 34년새 17.8배가 오른 셈이다. 최근 들어서는 양극화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최초의 억대 연봉 선수는 1985년 장명부로 1억484만원을 받았다. 1986년 삼성 라이온즈 김일융(1억1250만원), 1987년 삼성 김기태(1억2000만원)가 억대 연봉 계보를 이었다. 당시 이들은 재일교포 출신이라는 프리미엄이 붙은 케이스다. 실질적으로 국내 선수가 1억원을 돌파한 것은 1993년 선동열이 최초다.

그러나 요즘 연봉 1억원은 뉴스거리도 안된다. FA 시행 첫 해인 2000년 이강철과 김동수가 3년 총액 8억원에 계약하며 사람들의 입을 쩍 벌어지게 만들었다. 2001년에는 홍현우가 해태 타이거즈에서 LG 트윈스로 옮기면서 4년간 18억원에 계약했다. 이미 이때부터 연봉 개념은 무의해지기 시작했다. 총액을 계약기간으로 나눈 평균 연봉으로 몸값 순위를 산정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2004년 정수근이 롯데 자이언츠와 6년 40억5000만원에 계약하며 40억원을 돌파했다. 2005년에는 삼성 심정수가 4년 60억원에 계약하며 '거품' 논란에 불을 지폈고, 2012년 이택근(50억원), 2013년 김주찬(50억원), 2014년 강민호(75억원) 정근우(70억원) 이용규(67억원) 장원삼(60억원) 등이 경쟁하듯 몸값을 한껏 올려놓았다.

선수들이 바라는 몸값은 상대적인 것이다. 스스로 비슷한 수준의 선수들과 비교한다. 2015년 최 정(86억원)과 윤성환(80억원)이 80억원을 무너뜨렸고, 미국서 돌아온 윤석민은 KIA와 4년 90억원에 도장을 찍었다. 지난해 FA 시장은 박석민 정우람(84억원) 김태균(84억원) 등의 주도로 역대 최고액인 766억원의 돈잔치가 벌어졌다. FA 시장 규모가 첫 해 24억2500만원에서 31.6배나 커졌다.

계약금을 제외하고 올해 최고 연봉 선수는 한화 김태균으로 16억원. FA 첫 해인 2000년 최고 연봉 선수는 현대 정민태로 3억1000만원이었다. 최고 연봉이 16년 사이에 5.16배 증가했다. 그렇다면 KBO리그 전체 매출 규모도 그만큼 증가했을까. 2000년 총관중은 250만7549명, 관중 총수입은 112억3484만5500원이었다. 올해 이 수치는 각각 833만9577명, 870억8993만3286원이다. 관중 수입은 7.75배가 증가했다. 그러나 FA들의 몸값 폭등과 비교하면 이 수치는 무의미해진다.

메이저리그도 1976년 도입한 FA 제도로 인해 선수 몸값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했다.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먼저 연봉 100만달러를 돌파한 선수는 1980년 놀란 라이언이다. 그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3년 350만달러의 계약하며 FA 제도의 혜택을 입었다. 이를 시작으로 1988년 아지 스미스가 200만달러를 넘어섰고, 바비 보니야가 1992년 610만달러를 기록하며 400만~600만달러를 단번에 돌파했다. 1995년에는 세실 필더가 923만달러로 최고 연봉자에 오르더니, 1997년 앨버트 벨이 처음으로 연봉 1000만달러를 받았다.

FA 몸값 폭등이 극에 달한 것은 2001년이다.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텍사스 레인저스로 이적하면서 10년간 2억5200만달러에 계약, 연봉 2000만달러 시대를 열었다. 지난해와 올해에는 연봉 3000만달러 선수까지 나타났다. 잭 그레인키, 미구엘 카브레라, 데이빗 프라이스, 클레이튼 커쇼, 맥스 슈어저 등이 연평균 3000만달러 이상을 받는다. 올해 메이저리그에서 연봉 1000만달러 이상은 127명이었다.

메이저리그 평균 연봉 역시 FA 제도와 함께 급상승했다. 1979년 10만달러를 돌파한 뒤 1982년 20만달러, 1984년 30만달러, 1986년 40만달러, 1990년 50만달러, 1992년 100만달러를 넘어섰다. 2001년 200만달러를 넘겼고, 2010년 300만달러에 이어 올해는 425만달러까지 치솟았다. 총액 1억달러 이상의 계약은 1999년 케빈 브라운 이후 현재까지 66건에 이른다. 최대 규모는 마이애미 말린스의 지안카를로 스탠튼이 2014년 11월에 맺은 13년간 총액 3억2500만달러 계약이다.

메이저리그도 치솟는 선수 몸값으로 구단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와는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다. 야구단 자체가 하나의 사업체인 까닭으로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무리한 계약을 시도하지 않는다. LA 다저스는 관중수입, 중계권료 등으로 커쇼의 연봉 3300만달러를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 올해 캔자스시티 로열스에 1000만달러 연봉자가 1명 뿐인 것도 열악한 살림살이 때문이다. 경제전문잡지 포브스에 따르면 2015년 메이저리그에서 영업이익(operating income) 흑자를 기록한 구단은 27개였다.

반면, KBO리그 10개 구단 중 모기업 지원금을 제외하고 자체 영업을 통해 흑자를 기록한 구단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다. 야구단을 실질적인 독립 사업체, 즉 자체 수입에 따라 지출 계획을 세우는 경영 방식을 도입하지 않는 한 거품 현상은 잠재우기 어렵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