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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에 대기업들 전전긍긍…53곳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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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들이 일명 '최순실 게이트'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인 최순실씨가 지난달 31일 검찰에 출석함에 따라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에 기부금을 낸 기업으로 수사의 불똥이 튈 수있다는 우려에서다. 최순실씨가 설립과 운영에 깊숙이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기업들에서 기부한 돈은 지금까지 알려진 것만 800억원 가량이다. 대부분 전국경제인연합회를 통해 모금됐다.

지난해 10월 미르재단 설립에 나선 전경련은 출연금을 300억원에서 500억원으로 갑자기 늘렸다. 재단 설립 사흘 전에 출연금이 적다는 청와대의 통보를 받아 이뤄진 결정이다. 대기업의 기부금이 외압에 의해 이뤄진 일이라고 하더라도 정경유착 등의 댓가성 '상납'으로 비춰질 경우 책임을 면키 어렵기 때문이다. 댓가성 기부일 가능성이 높다는 의혹이 제기된 점도 부담스럽다.

1일 재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지난 7월 추진됐던 이동통신사와 케이블TV의 1조원대 빅딜인 'SK텔레콤-CJ헬로비전 인수·합병(M&A)' 불발에 최순실씨가 개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최순실씨의 지시로 정현식 전 K스포츠재단 사무총장이 SK텔레콤을 자회사로 둔 SK그룹에 80억원을 요구했지만 무산됐고, M&A가 이뤄지지 않은 만큼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SK텔레콤과 CJ헬로비전의 M&A는 정치권과 학계에서 1년 념게 찬반논쟁을 벌였던 사안이다. 업계는 찬반논쟁들을 종합해 볼 때 양사의 M&A가 조건부 인수 쪽으로 가닥이 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지난 7월 공정거래위원회는 양사의 M&A를 불허했다. 재계는 SK텔레콤의 M&A 불발이 K스포츠재단에 기부금을 내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눈길을 끄는 점은 또 있다. 최순실씨가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미르·K스포츠재단에 거액의 출연금을 낸 기업 4곳 중 1곳은 대규모 적자 등으로 경영악화를 겪고 있었다는 점이다. 재벌닷컴과 경제개혁연대에 따르면 미르·K스포츠재단에 자금을 출연한 기업은 모두 53개사로 집계됐으며, 이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23개사가 10억원 이상의 출연금을 냈다.

기업별 출연금 액수를 보면 현대자동차가 68억800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SK하이닉스 68억원, 삼성전자 60억원, 삼성생명 55억원, 삼성화재 54억원, 포스코 49억원, LG화학 49억원 등의 순으로 조사됐다. 현대모비스, 호텔롯데, 기아자동차, SK종합화학, SK텔레콤, KT, LG디스플레이, 롯데케미칼, 삼성물산, 한화, GS칼텍스, 에스원, 제일기획, 한화생명, 대한항공, E1 등은 10억∼30억원대의 돈을 출연했다.

특히 롯데그룹은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을 통해 미르에 28억원, 롯데면세점을 통해 K스포츠에 17억원 등 총 45억원을 출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에도 K스포츠 측이 직접 추가 출연을 요청해 5월 초 그룹 차원에서 70억원을 더 지원했지만 수 일 후 돌려받았다. 해당 시점은 검찰이 가족간 경영권 다툼을 벌이고 있는 롯데그룹에 대해 전방위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본격 수사에 착수하기 직전이다. 재단 측이 기업의 약점을 잡고 출연금 명목으로 돈을 받으려 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다.

기부금을 낸 이들 53곳의 경영실적을 보면 지난해 적자로 법인세 비용도 없는 기업이 12개사로 전체의 22.6%를 차지했다. 대한항공의 경우 지난해 별도기준 4770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2년 연속 법인세를 한 푼도 내지 못한 상황에서 미르·K스포츠재단에 모두 10억원을 출연했다. 두산중공업도 지난해 4500억원대의 적자에도 미르·K스포츠재단에 4억원을 냈으며 대주주인 두산 역시 7억원의 출연금을 건넸다.

지난해 수 백억대의 적자를 기록한 CJ E&M과 GS건설도 각각 8억원과 7억8000만원을 내놨고, 2년째 적자를 낸 아시아나항공과 GS글로벌도 각각 3억원과 2억5000만원을 출연했다. 이밖에 금호타이어(4억원), LS니꼬동제련(2억4000만원), GS이앤알(2억3000만원) LG전자(1억8000만원), LS엠트론(6200만원) 등도 지난해 적자를 기록했음에도 출연금을 내놨다.

한편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거액 출연으로 이들 대기업이 쓴 기부금 규모는 지난해 급증했다. 실제로 53곳 중 기부금 내역을 공개한 45개사의 감사보고서상 기부금 합계는 지난해 1조695억원으로 전년보다 1542억원(16.8%)이나 늘었다. 이들 53개사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이 774억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지난해 기부금 순증가액의 절반가량이 이들 재단으로 흘러들어간 것으로 해석된다.

일부 대기업은 감사보고서나 사업보고서상 기부금 지출내역이 없는 것으로 알려져 향후 미르·K스포츠재단에 낸 출연금의 자금 출처와 회계처리에 대한 논란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조사 결과 감사보고서 등 공시자료에 기부금 내역이 없는 곳은 한화(15억원), GS건설(7억8000만원), CJ(5억원), LG전자(1억8000만원), LG이노텍(1억원), LS전선(1억원), LG하우시스(8000만원), LS니꼬동제련(2억3900만원) 등이다.

뿐만 아니라 대다수 기업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고액의 출연금을 낸 사안이 이사회 결의사항 등에 기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져 자금 집행 과정에 대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최순실 게이트'를 수사 중인 검찰은 미르·K스포츠재단에 출연금을 낸 대기업 관계자들을 불러 사실상 '강요'에 의한 것인지 조사할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달 30일 소진세 롯데그룹 대외협력단장(사장)과 이석환 롯데그룹 대외협력단 CSR팀장(상무)을, 31일에는 SK그룹 대관 담당 박영춘 전무를 연이어 소환조사한 바 있다. 장종호 기자 bellh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