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백지은 기자] 이제는 누군가의 아역이 아닌, 어엿한 배우 김유정이다.
김유정은 지난달 18일 종영한 KBS2 월화극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홍라온 역을 맡아 열연했다. 홍라온은 복잡한 캐릭터다. 역적의 딸이라는 신분 때문에 여자 아이이지만 사내 아이로 자라야 했고, 처음으로 사랑하게 된 이영(박보검)과도 이별을 결심해야 했다. 캐릭터가 사내 아이에서 여인으로 성장했던 만큼 김유정은 1인 2역이나 다름없는 연기를 펼쳐야 했다. 초반에는 홍삼놈으로서 능청스러운 사내 아이가 됐고, 후반에는 이영을 바라보는 한 명의 여인으로서 절절한 감정선을 그려냈다. 그리고 김유정은 첫 메인 주연임에도 자신의 롤을 훌륭히 소화해냈다. 연출을 맡은 김성윤PD조차 "초반에 (박)보검이 헤맸을 때 (김)유정이 홍삼놈 캐릭터를 잘 잡아줘서 (박)보검이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고 칭찬했을 정도다.
"대본 상으로 삼놈이를 접했을 때 다른 남장 여자 캐릭터는 남자인 척 흉내를 내는데 삼놈이는 흉내내는 게 아니라 진짜 소년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진짜 사내 아이의 행동이나 느낌을 생각했죠. 감독님과 많이 얘기하면서 캐릭터를 잡았던 것 같아요. 다른 분들이 칭찬 많이 해주셨는데 저는 스스로한테 항상 100% 만족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계속 못한 것만 생각한 것 같아요. 열심히 해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려야 할 것 같아요."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는 유난히 명장면이 많이 탄생했다. 이영과 홍라온의 팔찌 이별신, 홍라온의 5분 독무신 등 시청자의 뇌리에 깊이 박힌 장면들과 대사들이 많았다. 김유정 또한 극의 모든 장면에 강한 애착을 갖고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신은 이영과 홍라온이 같이 노을을 바라보면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라고. 이영이 자신이 꿈꾸는 조선, 즉 여인이 여인으로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겠다며 첫 번째 백성으로 홍라온을 지목했던 신이다.
"영과 라온의 관계는 정인의 관계도 있고 벗으로서의 관계도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정을 나누기도 했고 백성과 군주의 관계이기도 했어요. 그래서 많은 의미가 담긴 장면이었죠. 라온이는 오랫동안 사내아이로 살아왔잖아요. 그런데 영이 '여인이 여인답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의 첫번째 백성은 너'라고 했을 때 라온이의 마음이 꽉 차지 않았을까 싶어요. 또 우리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한 영의 성장을 간접적으로 잘 표현해 준 대사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사실 '구르미 그린 달빛'에 김유정이 캐스팅 됐을 때 업계 반응은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사극 요정'이라 불릴 정도로 사극에서 유달리 존재감을 발휘했던 김유정의 전력과 그의 연기력에 대한 기대를 보이기도 했지만 아직 연애 한번 해보지 못한 18세 어린 소녀가 캐릭터의 복잡미묘한 사랑을 잘 소화해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그러나 김유정은 기대 이상의 감성 연기로 시청자의 애간장을 녹였다. 밝고 사랑스러운 캐릭터의 이면에 감춰둔 아픔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한편 박보검과의 가슴 떨리고 애틋한 '단짠 로맨스'까지 성공시킨 것이다.
"스스로 만족하진 못하지만 그런 상황에 놓이면 어느 정도 따라가게 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멜로 연기가 어렵다기보다 너무 재밌게 촬영했어요. 오히려 초반에 티격태격하고 소리지르고 싸우는 장면이 어려웠어요. 초반 촬영이다 보니 아직 서로 살짝 익숙하지 않고 풀어지기 전이다 보니 그런 연기할 때 어렵긴 하더라고요. 아무래도 같이 구덩이에도 빠지고 더운데 고생하고 하다 보니 서로 잘 풀리면서 믿고 의지하며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도움도 많이 받았고요."
김유정은 드라마에서 마음을 통한 이영, 키다리 아저씨 김윤성(진영), 사형 김병연(곽동연)까지 세 남자의 사랑과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이들 4인방의 케미에 힘입어 드라마의 인기는 치솟았다.
"세 분 다 연기 열정이 많이 보였어요. 끊임없이 노력하고 고민하는 모습 보면서 저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어요. (박)보검 오빠는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해주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살면서 당연시 되거나 그냥 지나치는 것들이 있을 수 있는데 보검 오빠는 그걸 하나하나 다 알아요.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따뜻하게 만들어줘요. 진영 오빠는 저희 중 맏형이었어요. 그래서 의지가 많이 됐어요.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제 속마음을 끌어내주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얘기 할 때도 편하고 즐겁게 얘기할 수 있게 해줬고요. (곽)동연이 형은 말 안해도 힘이 되는 존재였어요. 따뜻하고 진짜 형 같은 존재, 믿을 수 있고 기댈 수 있는 존재, 옆에 있으면 그냥 힘이 나는 그런 존재였어요. 오빠라고 할 때도 있고 형이라고 할 때도 있는데 우리 둘 사이에는 형이란 말이 더 따뜻하고 가깝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구르미 그린 달빛'은 8월 22일 첫 방송된 이후 꾸준히 인기를 끌었다. 8.3%(닐스코리아, 전국기준)로 시작했던 작품은 방송 3회 만에 시청률이 2배 가깝게 뛰어올랐고, 방송 7회에서는 시청률 20% 대를 돌파하기까지 했다. 이후 올림픽 중계와 프로야구 경기 중계 등의 여파로 시청률이 소폭 변동되긴 했지만 꾸준히 월화극 1위 자리를 지켜냈다. 마지막회 시청률은 22.9%. 18회 평균 시청률은 18.29%다. 최근 지상파 드라마 시장 시청자 파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놀라운 성적이다. 이에 '구르미 그린 달빛'은 20% 시청률 공약을 지키고자 광화문에서 주인공 4인방의 팬사인회를 열기도 했다. 이 현장에는 수만 명이 몰려들어 작품과 배우들의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
"팬사인회 때 너무 놀랐어요. 이분들이 다 우리 드라마를 보신 건가 하고 신기했죠. 처음으로 드라마 팬분들과 같이 시간을 보냈는데 마지막으로 좋은 추억을 쌓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너무 많은 분들이 와주셨는데 얼굴도 잘 안보이고 200분 밖에 사인 못 해드려서 아쉬워요."
첫 주연작으로 대박을 냈으니 신날 법도 한데 김유정은 의연했다. 혹자는 인생작, 혹은 인생캐릭터라고 얘기하기도 하지만 아직 배우로서 보낼 날이 더 많은 만큼 차근 차근 다음을 준비하겠다는 생각이다.
"체력은 자신 있었는데 너무 덥고 힘든 촬영이 반복되니까 지칠 수밖에 없었어요. 시작하기 전에도 저에 대한 의심이 생기고 불안하고 걱정도 되고 흔들린 적도 많았는데 감독님을 비롯해 주변 분들이 항상 칭찬해주시고 용기를 주셨어요. 자신감 생기는 말을 많이 해주셔서 힘내서 했던 기억이 나요.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이 배운 계기가 된 작품인 것 같아요. 더 좋은 연기자로 거듭날 수 있는 발판이 되어준 것 같고요. '구르미 그린 달빛'을 통해서 성인 연기자 도전에 성공했다고 해주시는데 한 드라마를 끝까지 끌고 가는 게 처음이긴 했지만 실제 저처럼 소녀에서 여인으로 자라는 성장 과정의 경계선에 있는 모습이 보여져서 그런 것 같아요. 저처럼 과도기에 있는 캐릭터를 연기했기 때문에 앞으로 제가 클 수 있게 도와준 작품이기도 하고 제가 더 긍정적이고 밝은 기운을 가질 수 있게 도와주기도 했어요. 좋은 시너지를 받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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