씁쓸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갈 만도 했다.
울리 슈틸리케 A대표팀 감독이 '위기탈출용'으로 내놓은 11월 A매치 2연전 명단을 본 최강희 전북 감독(57)의 심경이었다.
이날 슈틸리케 감독의 부름을 받은 25명 중 전북 선수들은 무려 6명(김신욱 권순태 이재성 김보경 최철순 김창수)이나 됐다. 이들은 모두 전북의 베스트 멤버다. 다급함이 묻어났다. 슈틸리케 감독은 "전북 선수들이 그라운드 위에서 실력을 증명했기에 많이 선발했다. 승점 삭감이 아니었으면 이미 우승을 확정했을텐데 시즌을 치르면서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라며 "팀에 분위기 전환과 안정감을 줄 수 있다. 그래서 많이 뽑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최 감독은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많이 뽑아주셔서 감사하다. 그런데 대한축구협회는 우즈베키스탄전을 마치고 4일 뒤 전북이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결승 1차전을 치르는지 모르고 있는 것 같다."
한국 축구와 전북의 상황은 비슷하면서도 분위기는 딴판이다. 슈틸리케호는 우울하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본선 진출에 경고음이 커졌다. 다음달 15일 우즈벡전이 터닝포인트가 될 지, 추락의 연속이 될 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그런데 전북은 구름 위를 걷고 있다. 다음달 19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알 아인(아랍에미리트)과 ACL 결승 1차전을 치른다. 최 감독은 원정 2차전에서 조금이라도 변수를 줄이기 위해 안방에서 열리는 1차전 승리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표팀 감독의 소집 요청을 거부할 수 없는 최 감독으로서는 난감하기만 하다. "파비오 코치가 명단을 보고 '11월 아르헨티나와 월드컵 남미 예선을 갖는 브라질도 대표팀을 구성할 때 리그 1위와 2위 팀의 상황을 배려해 1명씩 뽑는다고 하더라'며 펄쩍 뛰더라. 그래서 내가 '우즈벡전이 잘못되면 한국 축구가 잘못될 수 있다'고 얘기해줬다. 그러나 설득하면서도 씁쓸했다."
누구보다 슈틸리케 감독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최 감독이었다. 2011년 12월부터 2013년 6월까지 A대표팀을 지휘할 당시의 상황을 떠올렸다. 최 감독은 "한국 축구란 대의를 위해 이해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그러나 한 포지션에 두 명을 데려가는 건 좀 섭섭하긴 하다"고 전했다.
최 감독이 걱정하는 건 세 가지다. 대표팀에 차출된 선수들의 부상과 산만한 훈련 분위기, 그리고 뛰지 못할 선수들이다. 최 감독은 "10월 A매치 때도 후유증이 만만치 않았다. 이란에 다녀온 선수들이 시차적응이 안돼 경기력이 떨어지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제서야 경기력을 회복하고 있다. K리그가 끝난 뒤에는 ACL 결승을 위해 분위기를 바짝 끌어올려야 한다. 그러나 6명이나 빠지면 훈련 분위기는 또 다시 산만해질 것"이라며 우려를 금치 못했다. 또 "이 중 한 명이라도 A매치 때 부상을 하게 되면 전력에 큰 손실을 초래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협회와 구단의 소통 부재가 큰 아쉬움으로 지적된다. 대표 선수 발탁은 슈틸리케 감독의 고유권한이다. 그러나 전북이 처한 상황을 어느정도 배려해줄 수 있는 여지는 있었다.
A대표팀의 중요성은 설명이 필요 없다. 당연히 리그 각 팀들은 십시일반의 심정으로 차출에 응해야 한다. 하지만 슈틸리케호 위기탈출의 희생양이 특정구단에 집중돼서는 안된다. 우즈벡전 올인의 후유증을 전북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면? 그저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 불가피한 결과인 뿐인걸까.
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