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말하자면 이런 형국이랄까. '전통의 명가' 삼성화재, 일단 슬로우 스타트를 끊었다. 하지만 무시무시한 반전의 칼을 숨기고 있다. 한국 남자배구에 있어 삼성화재는 설명이 필요 없는 최고의 팀이다. 챔피언결정전 8회 우승.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하지만 위기 없는 번영은 없다. 지난 시즌부터 살짝 이상 징후가 감지됐다. 정규리그를 3위로 마감했다. 2005년 V리그 출범 후 최초로 챔피언결정전에 초대받지 못했다. 이것만 해도 큰 사건이다. 그래서 이번 시즌이 더욱 중요해진 삼성화재다.
15일 막이 오른 2016~2017시즌 NH농협 V리그. 삼성화재는 자존심 회복을 위해 야심차게 출사표를 던졌다. 하지만 시즌 초반, 먹구름은 쉽사리 걷히지 않고 있다. 삼성화재는 16일 대한항공과의 리그 홈 개막전에서 세트스코어 1대3으로 패했다. 이어 21일 현대캐피탈전에서도 2대3으로 고배를 마셨다. 2연패. 분명 위기다. 시즌 초반이라 해도 신경 쓰이는 결과다.
하지만 희망은 사령탑의 눈빛에서 발견된다. 임도헌 감독은 차분했다. "'몰빵 배구'라는 세간의 비판을 알고 있다"고 운을 뗀 그는 "하지만 새로운 팀을 만드는 과정이다. 우리 선수 구성으로 최상의 경기력을 끌어낼 조합과 전술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무언가 좀 설명하기 힘든 듬직한 신뢰감이 목소리에 녹아있다.
명가 재건을 위한 첫 걸음. 왕도는 없다. 임 감독은 "선수들마다 각기 장단점이 다르다. 선수단에 많은 변화도 있었다"며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리기 위해 천천히 퍼즐을 맞추는 시기"라고 했다.
삼성화재는 시즌 개막 전 OK저축은행의 센터 김규민을 트레이드로 영입했다. KB손해보험 소속 리베로 부용찬도 데려왔다. 베테랑 센터 하경민과 레프트 김나운까지 손에 넣었다. 트라이아웃을 통해 영입한 타이스도 적응 중이다. 임 감독은 "분명 초반 2연패는 실망스러운 결과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반성부터 했다. 하지만 도약을 위한 과정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변화의 폭이 컸다. 호흡을 맞출 시간이 더 필요하다. 경기 감각도 아직 완전히 올리오지 않은 상태다." 희망도 이야기 했다. "비록 승리하진 못했지만 시간이 가면서 선수들의 경기력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서로 간 신뢰가 다소 부족했던 부분이 있었는데 이제 동료들을 믿기 시작했다."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도 있다. 임 감독이 기대하는 긍정 요소들이 있다. 우선 김규민의 회복을 꼽을 수 있다. 김규민은 만성적인 무릎 건염으로 고생해왔다. 임 감독은 "김규민의 상태는 현재 70% 정도다. 지속적인 건염에 시달리며 심리적으로도 위축이 됐다"면서도 "하지만 선수의 의지가 강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조만간 전성기의 기량을 펼쳐 줄 것"이라고 했다.
하경민의 복귀도 호재다. 하경민은 시즌 개막을 앞두고 발목 부상을 했다. 다음주 복귀 예정이다. 임 감독은 "하경민은 노련하다. 블로킹 높이도 좋다. 나이가 있어 풀타임은 어려울 수 있지만 판을 보는 눈이 좋아 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여기에 공익근무 중인 '토종 주포' 박철우도 11월 26일 전역한다. 임 감독은 "박철우가 합류하면 공격 루트가 다양해 진다. 그간 공백으로 경기 감각은 우려되지만 능력있는 선수인 만큼 잘 적응할 것"이라고 믿음을 보였다.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