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백지은 기자] 뻔하지만 뻔하지 않았다.
KBS2 월화극 '구르미 그린 달빛'이 18일 종영했다. '구르미 그린 달빛'은 사실 클리셰가 꽤 많은 작품이었다. 남장 여자 캐릭터, 왕족과 평민의 사랑, 올곧은 성품을 가졌지만 대의를 이루기 위해 망나니 짓을 하는 왕족, 왕권과 외척의 대립 등의 설정은 모두 어디선가 많이 봤던 그림이었다. 뻔한 로맨틱 코미디가 될 듯했지만 '구르미 그린 달빛'은 멋지게 반전에 성공했다. 뻔하디 뻔한 설정인데도 뻔하지 않은 그림을 내놓은 것이다.
우선 캐릭터가 좋았다. 박보검의 이영 캐릭터 매력은 더이상 논하기도 입 아플 정도다. 카리스마와 배려심, 박력과 자상함을 동시에 갖춘 캐릭터는 만인의 사랑을 받았다. 김유정의 홍라온 캐릭터 역시 강아지처럼 귀엽고 사랑스러운 매력을 발산하다가도 러브라인에 도달하면 순식간에 절절한 순애보를 펼치며 시청자를 울리고 웃겼다. 곽동연의 김병연 캐릭터는 정체성을 고민하는 묵직한 해결사로, 진영의 김윤성 캐릭터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매력을 발산했다. 서로 다른 매력의 캐릭터들이 완벽한 합을 이루며 극의 재미를 높였고, 출구를 막아버렸다.
배우들의 연기 또한 탁월했다. 박보검이 전작 캐릭터의 액기스를 농축시킨 듯한 연기로 극을 이끌어가는 가운데 김유정은 '사극요정' 답게 탄탄한 감정 연기로, 곽동연은 러브라인보다 절절한 브로맨스로 케미를 높였다. 진영 채수빈 등 주,조연을 가리지 않고 연기 구멍 없이 배우들이 온전히 제 역할을 해준 덕분에 시청자들도 편안하게 드라마에 빠져들 수 있었다.
물론 '구르미 그린 달빛'도 오점은 있다. 서양식 정원이 등장하거나 왕세자가 왕의 복식을 입는 등 역사 고증 오류가 속속 발견됐고, 때로는 진행이 너무 빠르다는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이는 정통 사극이 아닌 퓨전 사극이라는 장르 특성상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는 수준의 오류였고, 오히려 빠른 전개를 환호하는 이들이 많았다. 소위 말하는 '고구마 전개'가 없다는 것에 높은 점수를 준 것이다. '구르미 그린 달빛'은 일반적인 드라마와는 전개 속도 자체가 달랐다. 남녀주인공이 마음을 확인하느라 허송세월 보내지도 않았고, 남색인지 아닌지를 고민하지도 않았다. 이영의 로맨스는 무조건 박력있는 직진이었다. 흐름 자체도 그랬다. 예를 들면 일반적인 드라마에서 동궁전 습격 사건을 그렸다면 이영이 칼을 맞고 쓰러지는 신에서 한 회가 끝났을 것이다. 그러면 시청자들은 이영의 생사 여부를 놓고 다음회까지 애간장을 태울테니 말이다. 하지만 '구르미 그린 달빛'은 그러지 않았다. 이영이 회복하는 모습까지 화끈하게 보여주는 사이다 전개로 많은 시청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그런 가운데에도 명대사, 명장면은 쏟아졌다. 특히 엔딩은 매회 역대급 여운을 남기기로 유명했다. 남녀주인공의 만남과 이별, 주요 사건의 발생과 결말 등이 모두 엔딩에 담기면서 큰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준 것이다. 또 지리멸렬하게 설명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임팩트 있는 짧은 대사 한마디로 상황을 정리하는 능력 또한 탁월했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작품을 집필하는 김민정 작가의 화통함에 '갓민정'이라는 칭호까지 붙여주기도 했다.
'구르미 그린 달빛'은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됐다. 이영은 영의정 일파를 척결하고 성군이 됐다. 홍라온은 중전 살해 사건의 전말을 밝힌 공을 인정받아 방면됐다. 조하연(채수빈)은 세자빈 자리를 포기하고 멀리 떠나 새로운 삶을 준비했으며, 이 덕분에 홍라온은 이영과 사랑을 계속 키워나갈 수 있게 됐다. 시청자들이 가장 바라던 결말로 마무리된 셈이다. 덕분에 시청률 또한 22.9%(닐슨코리아, 전국기준)의 높은 기록을 세우며 유종의 미를 거두게 됐다.
'구르미 그린 달빛' 후속으로는 '우리집에 사는 남자'가 방송된다. '우리집에 사는 남자'는 유현숙 작가의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삼은 작품으로 '공주의 남자', '조선총잡이' 등을 연출한 김정민PD와 김은정 작가가 의기투합했다. 수애 김영광 조보아 김지훈 등이 출연하며 24일 오후 10시 첫 방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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