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군단의 시즌이 끝났다. 그래도 웃으며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는 이유는 희망을 봤기 때문이다.
KIA 타이거즈는 11일 LG와의 와일드카드 결정전 2차전에서 0대1로 지면서 준플레이오프 진출이 좌절됐다. 마지막까지 치열했고 또 뜨거웠다. 팀 타선이 1안타 빈타에 허덕이면서도 8회까지 실점하지 않은 이유는 선수들의 집중력 때문이었다. 절대 점수를 주지 않겠다는 마음 하나로 몸을 날렸다.
1,2차전을 모두 다 뛴 선수 중 포수 한승택과 외야수 김호령, 노수광은 이번이 첫 포스트시즌이었다. 말로만 듣던 큰 경기, 하이라이트 무대에 선 그들은 호수비 퍼레이드를 펼쳤다. 노수광의 과감한 슬라이딩 캐치와 한승택의 번트 뜬공 처리, 끝내기 타점이 된 9회말 김용의의 희생 플라이 타구를 달려가 잡고 중계 플레이까지 시도한 김호령. 졌지만 정말 잘 싸웠다. 아낌 없이 불태운 열정이 소득이다. 의미있는 도전을 마친 한승택 김호령 노수광과 12일 전화 인터뷰를 했다.
◇ 한승택 "나는 이제 시작하는 포수"
김기태 감독은 2연전 내내 포수 한승택을 밀어붙였다. 올 시즌 1군 출전 27경기가 전부인 22살의 어린 포수. 하지만 그의 볼배합은 과감했다. 수비는 대담했다. 불안감 대신 안정감이 들었다.
한승택은 "포스트시즌이라 처음엔 긴장감이 다른데 야구는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수들 모두 조심스럽게 플레이 했다. 가을 야구 재미있었다. 아쉽긴 하지만 최선을 다했다"며 웃었다.
보여준 것보다 보여줄 것이 많은 선수다.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는 한승택은 "포수는 경험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2차전 9회말에도 내가 볼 배합을 다르게 했으면 끝내기가 아니라 병살이 나왔을 수도 있다. 나는 이제 시작하는 포수다. 경험을 쌓는 것이 먼저인 것 같다"고 다부진 각오를 밝혔다.
올 시즌은 잔부상이 한승택을 괴롭혔다. 재활과 2군 출전을 반복하면서 아프지 않아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한승택은 "부상 때문에 힘들었다. 내 마음대로 안되더라. 운동 선수는 쉬면 감각이 떨어진다. 내년에는 무조건 부상을 조심해서 많은 경기에 나가고싶다"고 했다.
◇ 김호령 "긴장되면서 재밌고, 또 너무 좋았어요"
2차 드래프트에서 가장 마지막에 지명된 선수. 그 선수 김호령은 이제 KIA의 정중앙 외야를 지키는 주전 외야수다. 타고난 타구 판단 능력과 스피드. 다른 외야수들도 탐내는 재능을 가지고 당당히 경쟁에서 이겼다.
김호령은 몇 번이나 2차전 패배가 아쉽다고 했다. "이겼으면 정말 좋았을 것 같다. 포스트시즌이어도 경기 전까지는 특별히 다를 게 없었는데, 막상 경기가 시작되니까 떨리면서도 재미있었다. 팬들의 응원도, 경기장 분위기도 모든 것이 달랐다"는 가을야구 첫 경험담이 따라왔다.
"긴장이 되면서도 너무 재밌고 또 너무 좋았다"는 김호령은 LG의 끝내기 승리가 확정된 9회말 혼신을 다한 수비를 보여줬다. 그는 "솔직히 타구가 외야에 뜨는 순간 '졌다' 싶었다. 그런데 야구는 모른다. 혹시 어떻게 될지도 모르니까 간절한 마음에 무조건 잡자는 생각 뿐이었다"고 말했다.
정상급 수비력이지만 공격에는 물음표가 있다. 시즌 중반까지 3할 타율을 유지했지만 후반기에 뚝 떨어졌다. 시즌 최종 타율 0.264. 124개의 안타에 104개의 삼진. 타격에 대한 고민은 그가 앞으로 계속 연구해야 할 부분이다. 김호령은 "삼진이 너무 많았던 것이 아쉽다. 타격을 더 잘하고 싶다. 출루도 많이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감 있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느낌이 좋아요. 왠지 점점 더 좋아질 것 같은,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좋은 예감이 자꾸 들어요."
◇ 노수광 "왜 이겨야 하는지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지난 8월 2루 도루를 하다 손가락 부상을 입었던 노수광은 시즌 막판 극적으로 팀에 합류했다. 자신도 "시즌 아웃이 될 줄 알았었다"고 할 정도로 수술한 부위 통증이 생각보다 오래 지속됐다. 하지만 막상 돌아와보니 아픔은 싹 잊었다. 김주찬, 김호령이 좌익수와 중견수로 자리를 꿰찼기 때문에 KIA는 우익수 경쟁이 치열하다. 올 시즌 승자는 노수광이다.
노수광은 "내가 재수가 좋았다. 경기를 많이 뛴 것만으로도 의미있는 한 해다. 선배님들이랑 1군에서 같이 뛰고 또 경쟁도 하면서 좋았다. 아직 모르는 게 많다. 더 많이 배우고싶다"고 했다. 오래 묵히지 않는 성격이지만 포스트시즌은 또 달랐다. 벅찬 기분을 느꼈다. "늘 했던 야구인데 다른 느낌이었다"는 노수광은 "태어나서 정말 처음 느껴보는 경험이었다. 1차전에서 이기고 나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좋더라. 선후배들이랑 함께 엄청나게 기뻐했다. 그때 '내가 큰 경기를 뛰고 있구나'하는 실감이 처음 들었다. 이래서 이겨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돌아봤다.
아쉬운 순간도 있었다. 노수광은 "내가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안타를 더 치지 못한 게 아쉽다. 형들은 못쳐도 나는 쳤어야 했다. 무조건 1루에 나갔어야 했다"고 자책했다. 2차전에서 박용택의 안타때 늦은 타구 처리로 주자를 2루까지 보낸 것도 마음에 걸리는 장면이다. "정말 죽고 싶었다. 큰 일 났다. '나는 역적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임창용 선배님이 위기를 막아주셔서 안도했다. (8회 양석환 타구)호수비는 왠지 그 각도로 타구가 올 것만 같았다. 비슷하게 오면 무조건 잡아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다행히 아웃이 되면서 앞선 실수도 잊을 수 있었다"며 웃었다.
노수광은 "시즌이 끝났다는 게 실감이 안난다. 조금 쉬다가 또 경기를 할 것 같다. 경기를 더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짐도 잊지 않았다. "올해 많은 것을 경험했으니 내년에도 잘하고 싶어요. 그리고 타격이 더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2차전에서 류제국 선배, 임정우의 공을 쳐봤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이런 투수들의 공을 치려면 연습을 더 많이 해야할 것 같아요. 최고의 투수들이 던지는 공으로 안타를 치게끔 노력할겁니다."
144경기 그리고 2경기가 끝났다. 며칠간의 짧은 휴가를 받은 KIA 선수들은 헛헛한 마음을 안고 집으로 향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쉬운 패배. 하지만 "왜 이겨야하는지 알게 됐다"고 했다. 그걸로 충분하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