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이었다.
2013년 6월. 한국과의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최종전을 위해 울산을 찾은 이란 대표팀은 벼랑 끝에 서 있었다. 당시 한국이 승점 14로 1위, 이란은 승점 13으로 2위였다. 한국이 이란과 비겨도 3위 우즈베키스탄(승점 11)의 경기 결과와 상관없이 본선에 오를 수 있었던 반면, 이란은 한국전에 패하고 우즈벡이 이기면 조 3위로 플레이오프로 곤두박질할 수도 있었다.
카를로스 케이로스 이란 감독이 꺼내든 첫 카드는 심리전이었다. 당시 A대표팀을 이끌던 최강희 감독의 '입담'이 먹잇거리였다. "최 감독이 이란에서 푸대접을 받았다고 했는데 우린 최선을 다했다. 최 감독은 이란 축구를 모욕했다." 최 감독이 '이란 대신 우즈벡과 본선에 오르고 싶다'고 말한 부분을 두고도 "최 감독에게 우즈벡 유니폼을 선물하겠다. 우즈벡 유니폼을 입을 용기가 있기를 바란다. 최 감독은 한국 축구의 수치이며 이란 팬들에게도 사과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케이로스 감독은 한국을 1대0으로 이기고 본선 직행이 확정되자 한국 벤치를 향한 '주먹감자 세리머니'로 '도발의 끝'을 보여줬다.
케이로스 감독은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국은 홍명보 전 감독(현 항저우)을 거쳐 울리 슈틸리케 감독에게 지휘봉이 넘어갔다. 두 지도자는 지난 2014년 11월 테헤란에서 처음 만났다. 브라질에 다녀온 케이로스 감독은 '딴사람'이 되어 있었다. "(주먹감자 세리머니) 당시엔 최종예선이었기 때문에 감정적이었다.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케이로스 감독의 갑작스런 저자세에 한국 축구계가 당황한 듯 웃지 못할 상황이었다. 부적절한 처신으로 공격받았던 과거를 회피하면서도 잔뜩 벼르고 온 한국을 맥빠지게 하는 '고도의 심리전'이라는 평도 있었다.
시계가 돌아 다시 최종예선이다. 두 팀은 또 다시 대척점에 서 있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3경기를 치른 현재 한국과 이란 모두 똑같은 승점 7(2승1무)을 기록 중이다. 이란이 골득실(이란 +3, 한국 +2)에서 1골 앞선 1위다.
이란의 도발은 현재진행형이다. 최종예선 첫판 맞상대였던 카타르가 제물이 됐다. 경기 막판까지 이란의 공세를 잘 막아냈던 카타르는 후반 추가시간 골키퍼 실책으로 레자 구차네자드에게 결승포를 얻어맞았다. 흥분한 이란 코칭스태프들과 선수들이 카타르 벤치를 향해 약을 올렸고, 결국 두 팀이 충돌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케이로스 감독도 카타르 공격수 세바스티안 소리아와 언쟁을 벌이며 동참했다. 결국 카타르는 한 골을 더 내주고 0대2로 패했다. 같은 승점을 기록 중인 A조 라이벌 한국과의 맞대결에서도 같은 장면이 나오지 말란 법은 없다.
슈틸리케호는 8일(한국시각) 테헤란에 도착해 최종 담금질에 돌입했다. 이번 이란전은 승점 획득뿐만 아니라 반 세기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이란 원정 무승에 마침표를 찍어야 하는 또 다른 사명도 있다. 3년 전 한국을 자극하며 실리를 챙겼던 케이로스 감독의 머릿속이 또 다시 바쁘게 움직일 것 같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