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는 민족성이 강한 스포츠다. 그라운드는 냉혹한 전장이다. 총성만 없을 뿐이다.
2013년 6월 18일 대한민국은 분노했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최종전, 상대는 이란이었다. 이란은 4년 전 한국 축구에 발목이 잡혀 2010년 남아공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박지성(은퇴)이 후반 36분 동점골을 터트리며 이란은 울고, 북한이 웃었다.
영원한 것이 없듯 브라질월드컵 최종예선 최종전은 눈물이었다. 이란이 울산에서 열린 최종전에서 1대0으로 승리했다. 이란이 조 1위, 한국은 우즈베키스탄에 골득실 차에서 한 골 앞서 간신히 8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패전은 아팠지만 승복 안 할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이란의 도 넘은 추태는 팬들을 광분케 했다. 카를로스 케이로스 감독은 적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한국 벤치를 향해 '주먹감자'를 날렸다. 이란 선수들도 그라운드를 돌며 한국 팬들을 우롱했다. 그라운드에는 물병에 날아들며 순식간에 '난장판'이 됐다. 악몽의 밤이었고, 이란과는 '악연'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운명이 짓궂다. 2010년 남아공, 2014년 브라질 대회에 이어 2018년 러시아월드컵 최종예선에서도 이란과 만난다. 원정이 먼저다. 한국은 11일 오후 11시45분(한국시각) 테헤란 아자디스타디움에서 최종예선 4차전을 치른다. 내년 8월 31일에는 이란이 한국을 찾는다. 최종예선 9차전이다.
슈틸리케호가 7일 출국했다. 한국 축구는 이란과의 A매치 역대전적에서 9승7무12패로 열세다. 원정에서는 더 치욕적이다. 단 1승도 챙기지 못했다. 6차례 원정길에 올라 2무4패를 기록했다. 울리 슈틸리케 감독도 2014년 11월 지휘봉을 잡은 후 첫 원정길에서 이란과 맞닥뜨렸다. 하지만 0대1로 패하며 악몽을 떨쳐내지 못했다.
온 국민이 설욕을 꿈꾸고 있다. 하지만 출발부터 뒷말이 무성하다. 슈틸리케 감독의 출사표는 두 귀를 의심케했다. "이란 원정에 대해 말하기 앞서 지금까지 많은 우려, 질책, 비판이 있었다. 카타르전에도 선수들이 30여분간 수적 열세에서 최선을 다 해 승리를 거뒀지만 비판과 질책이 있었다. 이런 상황이면 이란에 가지 말아야 할 것 같다."
감독은 전장의 사령관이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진중해야 한다. 그러나 슈틸리케 감독은 '역전승'에 도취된 나머지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었다. "이란에 가지 말아야 할 것 같다." 섭섭함을 극단적으로 토로했다고 하지만 엇나간 현실 인식은 우려스럽다.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 축구와 만난 지 꼭 2년이 흘렀다. 지난해에는 탄탄대로를 걸었다. '흙수저 선수'들을 기용하는 과감한 실험에 팬들은 열광했다. 전폭적인 지지도 받았다. 하지만 더 높은 벽이 기다리고 있기에 마냥 웃을 수도, 안주할 수도 없었다. 지난해의 경우 일정상 불가피했지만 한국보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높은 팀과 충돌한 적이 없었다.
"팬들이 '갓(GOD)틸리케'라는 별명을 붙여줬다. 축구인으로 40년을 살아왔다. 아마 2연패만 당해도 이런 평가는 180도 달라질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다." 지난해 11월 슈틸리케 감독이 한 말이다. '냉정한 인식'에 주가도 하늘을 찔렀다.
그렇게 2016년이 열렸다. 6월 슈틸리케호는 현주소를 점검하기 위해 유럽 원정길에 올랐다. 하지만 스페인에 1대6으로 대패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지난달 러시아행의 마지막 관문인 최종예선이 시작됐다. 중국과의 1차전에서 3-0으로 리드하다 순식간에 두 골을 내주며 3대2로 간신히 승리했다. 시리아와의 2차전은 참담했다. 시리아는 8월 FIFA 랭킹이 105위로 48위인 한국보다 57계단이나 아래였다. 내전으로 홈에서도 경기를 치를 수 없는 악조건이었다. 그러나 슈틸리케호는 시리아를 넘지 못했다. 득점없이 비기며 승점 1점을 챙기는 데 그쳤다.
6일 수원에서 열린 카타르와의 3차전도 찜찜했다. 카타르의 9월 FIFA 랭킹은 85위로 한국(47위)보다 38계단이나 밑이었다. 최종예선에서도 2전 전패했고, 사령탑도 교체됐다. 객관적으로 봐도 낙승이 전망됐다. 그러나 홈이점은 없었다. 선제골을 터트렸지만 역전을 허용했고, 재역전에 성공했지만 홍정호(장쑤 쑤닝)가 퇴장당하며 수적 열세에 놓였다. 3대2로 승리했지만 우려스러운 승점 3점이었다. 만약 카타르의 홈이었다면 하는 불안한 기운이 휘감았다.
하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찬사와 격려를 바란 듯했다. 같은 말이라고 해도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지구촌 어떤 감독이라도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비난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월드컵 4강 신화를 선물한 후 한국 축구와 이별했다. 그 또한 '오대영'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슈틸리케 감독보다 더 험난한 길을 걸었다. 하지만 그는 현명하게 위기를 넘겼다. 한국 코치들에게 "한국말을 모르는 외국인 감독이어서 다행"이라며 웃어 넘겼다.
슈틸리케 감독은 여론의 추이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이야기가 주위에서 종종 들린다. 댓글까지 샅샅이 훑어본단다. 굳이 왜 지지를 안 보내느냐고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다. 최종예선은 이제 막 첫 단추를 뀄을 뿐이다. 앞으로 가야할 일이 더 많이 남았다. 비판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비판의 대척점에는 반전도 있다. 감독이든, 선수든 모든 것을 그라운드에서 이야기하면 된다.
"카타르를 이겼다고 들뜨지 말아야 한다." 이란전을 앞둔 이청용(크리스탈팰리스)의 이야기다. 이 말이 슈틸리케 감독의 입에서 나왔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있다.
관심이 없다면 우려도, 질책도, 비판도 없다. 슈틸리케 감독이 여론에 지나치게 흔들리지 않았으면 한다. 스포츠 2팀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