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닷컴 이지현 기자] 영국의 극작가 셰익스피어의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은 역사상 가장 강렬한, 운명적 연애비극이다. 앙숙 관계인 명문가의 아들, 딸이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고 비밀 결혼까지 감행하지만 서로의 죽음을 목격하고 동반자살에 이르는 슬픈 연애사다.
최근 안방극장을 애절한 로맨스로 물들이고 있는 사극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로미오와 줄리엣'의 슬픈 운명을 빼닮았다. 부모 세대의 악연과 시대적 비극을 안은 채 운명적으로 만난 이들이 과거를 극복하고 사랑의 힘으로 악연을 끊어내는 해피엔딩을 맞이할 수 있을까. '사극판 로미오와 줄리엣' 커플들의 얽히고설킨 사연과 결말이 궁금하다.
▶'구르미 그린 달빛' 박보검♥김유정
KBS2 '구르미 그린 달빛'의 모티브는 조선시대 최초의 민란인 '홍경래의 난'이다. 차별과 지배층의 수탈로 일어나 난으로 5개월 만에 평정당한 사건. 드라마는 이런 '홍경래의 난'이 일어난 지 10년이 지난 해다.
극중 왕세자 이영(박보검)의 아버지인 왕(김승수)은 너무 어린 시절 왕이 된 탓에 대비의 수렴청정과 외척의 등쌀로 결단력이 부족한 세도정치 시대의 유약한 군주다. 세도정치에 대항하기 위해 나름대로 애를 썼으나 홍경래의 난을 진압했던 김헌(천호진) 일파에게 모든 권력을 이양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왕은 '홍경래' 이름만 나와도 벌벌 떨며 불안증세를 보인다. 막강한 김헌 일파들을 감당하기 힘든 왕은 아들인 이영에게 남은 권력을 넘겨주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는 상황.
부모도, 집도 없는 홍라온(김유정)은 기억나지 않는 옛날부터 남장을 하며 살아왔다. 우여곡절 끝에 남장을 한 채 내관이 된 홍라온은 왕세자 이영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다. 남자인 줄 알았던 홍라온이 여자인 것을 알게 된 이영과의 사랑이 한참 물이오른 그때, 자신이 홍경래의 딸임을 알게 되면서 비극이 찾아왔다. 홍경래의 뒤를 잇는 비밀 조직 백운회가 한양 곳곳에 자보를 뿌려 '제2의' 홍경래의 난을 일으키겠다고 경고하는 상황.
KBS 2TV 월화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 13회에선 이영이 '홍경래의 딸'이 연인 홍라온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자신이 역적의 딸임을 알게 된 홍라온은 말없이 궁을 떠났다. 급기야 왕(김승수)은 역당의 무리를 색출하라 명했다. 믿을 수 없는 진실을 알게 된 이영과 홍라온 커플은 짧은 이별 후 재회한 두 사람은 애틋한 포옹과 함께 다시 한번 마음을 확인했다. 앞으로 단 네 번의 에피소드가 남은 가운데, 이영과 홍라온의 사랑만으로는 해결 되지 못하는 복잡한 상황이 둘을 더욱 위협하고 있다. '보미오, 유리엣'으로 이들을 칭했던 안방 팬들의 가슴이 타들어간다.
▶'달의 연인' 남주혁♥서현
13황자 백아(남주혁)의 아버지는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조민기). 우희(서현)은 후백제 견훤 넷째 아들의 살아남은 유일한 핏줄이자 마지막 공주다. 두 사람의 신분은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금지된 사랑이다.
하지만 이런 두 사람은 신분을 숨긴 채 운명같은 사랑에 빠졌다. 가족과 나라를 잃은 우희는 고려 황제에 대한 복수심 하나로 황궁 교방의 가무 전담 기녀로 숨어 들었다. 이런 우희 곁에서 백아는 음악 반주를 하며 공감대를 만들고 사랑을 키웠다. 우희는 백아에게 점점 마음이 열리고 있음에도 백성의 고통을 외면하지 못하고 복수를 감행한다.
지난 3일 방송된 SBS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12회에서는 합평회에 참석한 우희가 고려 태조 왕건을 살해하려고 하는 모습이 그려져 긴장감을 높였다. 칼춤을 추던 우희는 황자복을 입고 있는 백아를 보며 잠시 눈빛이 흔들렸지만 태조에게 고정된 시선을 돌리지 않고 칼날을 겨눴다. 그 순간 우희의 눈빛을 읽은 백아는 우희를 막기 위해 무대로 뛰어 들었고, 태조를 향해 뻗은 우희의 칼을 대신 맞았다. 백아는 역적으로 몰릴 뻔한 우희를 빼돌렸고, 두 사람은 정윤 왕무(김산호)를 송학으로 데려오기 위해 함께 길을 떠났다. 밤을 지새우며 서로를 향한 애틋한 마음을 담은 키스를 나눴지만 동시에 이별을 직감했다
극 중 백아가 우희를 칭하는 별명 아닌 별명은 '종자기'다. 이는 고사성어 '백아절현'에서 따온 것으로, 중국 춘추시대 거문고로 유명했던 백아가 절친한 친구 사이였던 종자기가 병으로 죽자 거문고의 줄을 끊어버린 후 다시는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이뤄질 수 없는 백아와 우희의 비극적 사랑을 짐작케하는 복선으로도 해석되고 있어 두 사람의 운명이 궁금증을 높이고 있다.
▶'옥중화' 고수♥진세연
윤태원(고수)은 문정황후의 동생이자 당대 최고의 권세가인 윤원형과 한양 최고의 기방 소소루의 기녀 홍매 사이에서 태어났다. 최고의 권력자가 아버지지만 서자의 아픔을 안고 있다. 옥녀(진세연)은 전옥서에서 태어나고 자란 천재소녀다. 옥녀의 꿈은 자신의 과거와, 전옥서에서 자신을 낳고 죽었다는 어머니에 대해 알고 싶은 것.
윤태원이 전옥서 죄수로 들어와 옥녀와 처음 만났다. 죄수들을 향한 마음의 문을 받은 옥녀의 문을 처음 연 것이 윤태원. 오랜시간 서로를 마음에 품고 사랑을 키웠다.
하지만 옥녀가 자신의 출생과 어머니의 죽음을 알게 된 후 두 사람은 비극적인 운명을 마주했다. 옥녀의 어머니 가비가 남긴 유품 뒤꽂이는 왕에게 승은을 입었던 나인들만 지닐 수 있던 것. 결국 옥녀는 아버지가 중종, 옹녀의 신분이다. 문정왕후와 최상궁이 선대왕을 암살하기 위해 음식에 독을 타는 현장을 우연히 목격한 옥녀의 어머니는 죽음의 위협을 받았다. 그 사이 우연히 중종의 눈에 띄어 승은을 입게 되고 윤원형의 압박이 점점 거세지자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명헌(박주영) 종사관과 도주를 시작했다. 이명헌이 목숨을 걸고 윤원형의 추노꾼과 싸우는 사이 전옥서까지 피신해 들어간 어머니는 옥녀를 낳고 죽고 말았다.
옥녀는 이 사실을 알게된 뒤 윤태원을 멀리하며 "제 어머니를 죽인 사람이 윤원형 대감입니다. 나으리를 생각하면 윤원형 대감이 떠오르는 걸 어쩔 수 없습니다"고 토로했다.
부모세대의 악연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고통스러운 두 사람. 하지만 서로를 향한 마음은 멈출 수가 없었다. 윤태원은 정난정(박주미)이 보낸 자객에 피습당한 옥녀가 사경을 헤맬 때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간호하고, 옥녀 때문에 아버지 윤원형과 의절도 선언했다.
이에 2일 방송된 MBC 주말극 '옥중화' 41회에서 옥녀는 "그간 어리석었다. 내 마음이 편하자고 나으리께 못된 말을 했다"라며 윤태원을 붙잡았다. 엇갈리기를 반복했던 두 사람은 사랑의 힘으로 악연을 극복했다. 하지만 아직 두 사람에게 남은 장애가 있다. 옥녀가 '옹주'의 신분이 복권된다면, 신분의 장벽까지 맞이하게 되는 것. 옥녀와 윤태원의 안타까운 사랑의 끝이 해피엔딩을 맞이하게 될지 관심이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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