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백지은 기자] 18세 배우의 연기 내공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김유정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입증했다. KBS2 월화극 '구르미 그린 달빛'을 통해서다. '구르미 그린 달빛'은 위장 내시 홍라온(김유정)과 츤데레 왕세자 이영(박보검)의 궁중 로맨스를 그린 작품. 스토리와 로맨스를 이끌어가는 중심축이 이영 캐릭터인 만큼, 박보검에게 온갖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에도 김유정은 차곡차곡 자신의 캐릭터를 쌓아나갔다. 여자의 몸이지만 남자로 살아가야 했던 홍삼놈이 이영을 만나고, 그의 여자 홍라온으로 정체성을 확립하기까지의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그리고 드디어 그 포텐이 터졌다.
3일 방송된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는 이영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홍라온의 모습이 그려졌다. 홍라온은 앞서 엄마(김여진)와 정약용(안내상)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역적 홍경래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역적의 피를 타고난 그가 왕세자인 이영과 맺어질 수는 없는 일. 자신이 들려줬던 이야기 속 주인공 인어아씨처럼 사라져야 이영을 지킬 수 있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홍라온은 큰 충격을 받았지만 홀로 이영과의 이별을 준비했다. 이영이 잠 못 이룰 때 들려주던 이야기를 책으로 정리해 놓겠다고 하고, "언제든 듣고 싶을 때 너를 부르면 된다"는 이영에게 백허그를 하며 진심을 감췄다. 마주보고 누워 사랑을 고백하는 이영에게 미소지어 보이다 그가 잠든 순간 눈물의 입맞춤을하기도 했다. 김유정의 이러한 감정 연기는 시청자의 감수성을 제대로 저격했다.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힌 채 박보검을 바라보는 눈빛은 애처로움 그 자체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떠나야만 하는 캐릭터의 마음을 눈빛에 전부 담아냈다. 여기에 "어느 날 제가 역적의 딸이란 사실을 알게 되신다 해도 저를 만난 걸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지금 이 순간을 한번쯤은 그리워해주시겠습니까"라는 내레이션으로 먹먹함을 전했다.
김유정의 연기에 시청자들도 놀란 분위기다. 멜로 연기는 배우 간의 케미가 중요하다. 즉 어느 한 쪽만 하드캐리를 한다고 해서 그 감정선이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양쪽이 같이 감정을 주고 받아야 시청자도 온전히 극과 캐릭터에 몰입할 수 있다. 그런데 김유정은 역대급 연기를 펼치고 있는 박보검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아무것도 모른채 해맑게 사랑을 얘기하는 박보검과 가슴 아픈 사정을 숨기고 아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 김유정의 연기가 시너지를 내며 슬픔을 극대화했다는 평이다. 아역 시절부터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고작 18세 어린 나이에 박보검의 연기에 응할 수 있는 내공을 갖췄다는 점에서 기분좋은 쇼크를 주고 있다.
과연 김유정은 어떤 결말을 맺게될까. 자신이 얘기했던 인어 아씨 이야기처럼 물거품으로 사라질까, 아니면 이영의 이야기처럼 해피엔딩을 맺을까.
종영까지 단 4회 만을 앞둔 상황에서 포텐을 터트린 김유정의 결말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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