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엔터스타일팀 이한나 기자] 방송인 이혜영이 두번째 전시 'Muse of the Wind' 에 대한 팬들의 열렬한 호응에 힘입어 직접 작품에 대해 묻고 답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 2일부터 30일까지 통의동 진화랑에서 열리고 있는 그녀의 이번 개인전은 '바람'을 주제로 한다. '바람'이란 이혜영의 그림에 대한 열정을 보다 확장시키려는 역동적인 바람(Wind)이자 어느 범주에도 없었던 아티스트로 거듭나기 위한 바람(Hope)을 알리는 무대로서 의미를 갖는다.
오픈한지 20일. 첫 전시에 이어 두번째 전시 역시 성황리에 전개되고 있다. 진화랑을 찾은 수많은 관객들이 그녀의 작품을 통해 이혜영이란 사람에게서 새로움을 읽었다. 이혜영은 전시에 대한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관객들과 소통하는 시간, '작가와의 만남'을 열었다. 그리고 지난 21일 진화랑에서 그녀를 만났다.
"바람은 사전 정의 그대로의 바람일 수도 있지만 '바라다'의 바람이기도 해요. 그림을 그리고 전시를 연 저의 바람, 또 전시에 와주시는 분들의 바람, 이 세상 모든 바람이 함께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주제를 정했어요."
▶ 1. 바람의 기억, 그리고 이혜영
이번 전시는 공간을 세 파트로 나누어 전개했다. 먼저 1. 메모리즈 인 더 윈드 (Memories in the Wind)에서는 5년 전 처음 그림을 시작했을 때 이혜영의 가슴 속에 일었던 '바람'을 담았다. 그 바람은 그림을 그리는 행위로 표현됐다.
이혜영의 작품에서 그녀의 인생을 빼놓을 수는 없다. 그 자신의 인생관, 상처, 사랑, 희망 등을 작품으로 모두 풀어내었다. 방송인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그녀가 작품에만 몰두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가족은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지난 2013년은 그녀에게 커다란 시련이 겹치는 시기였다. 아버지와 아끼던 반려견 도로시의 죽음이 며칠 사이로 이어졌기 때문. 이혜영은 그 아픔마저 그림으로 승화시켰다. 이번 전시를 함께 준비한 큐레이터 신민 씨는 이걸 두고 '초기 몇 년간의 그림은 살풀이에 가까웠을 정도'라는 표현을 썼다. 이혜영은 그림으로 내면의 상처를 토해내고 작품 속에 그 감정을 여실히 실었던 시기를 설명하며 그 때의 자신과 당당히 마주했다.
첫 개인전의 타이틀의 주제이기도 했던 작품 '상처와 고통의 시간들이 내게 준 선물'. 두 번의 상실을 통해 느낀 감정들을 그림을 그리다 보니까 그녀만의 색깔을 창조하게 되었다고 전한 그녀는 아픔도 예술로 창조될 수 있게 해준 지난 슬픈 시간들에게 고마움을 느꼈다고 한다.
"이 작품을 통해서 처음으로 내가 아닌 다른 것들도 한 번 그림을 그려보자 라고 마음을 먹었던 것 같아요. 지난 아픔들이 나에게 붓을 쥐게 해줬고, 그렇기 때문에 가슴 아픈 상황 속에서도 열정을 피워냈죠. '지금은 파닥파닥거리는 아주 작은 나비의 날개를 달고 있지만(웃음) 언젠가는 큰 날개를 단 멋진 화가가 되어야지!' 라는 희망을 담은 그림이에요."
"처음에는 어떻게 그려야 하는지도 몰랐어요. 캔버스를 어디서 사야 하는지 조차 몰랐고 어머니가 쓰시던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죠. 어려서부터 유화에 대한 동경이 있었고,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도 가지고 있었는데 이렇게 화가가 될 줄 몰랐어요. 초기에는 정말 순수하게 그렸던 것 같아요. 그림을 안 그리면 미칠 것 같았던 적도 있었고요. 그림일기 같이 무작정 그리기 시작했고 제 얘기를 담기 시작했어요.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걸 다 캔버스에 시도해봤어요. 그러다 보니 그림을 그리는게 재미있어지더라고요."
배워본 적이 없는 그림이기에 오히려 붓을 잡을 때 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독착성이 뿜어져 나온다. 그녀의 붓질에는 확고한 생각이 담겨있었다. 스스로 느끼는 감정, 떠오르는 생각들을 오롯이 담아내는 데에 몰입한 결과다.
"이 작품 역시 초창기 작품이에요. 이 때는 그리는 기법을 잘 알지 못하니까 혼자 막 해본 거예요. 하다보니 설원같이 느껴지면서 차가워 보이지만 또 그래서 아름다워 보이더라구요. 마티에르(matiere:종이 및 캔버스 등 바탕 재질, 붓놀림, 그림의 재료 등이 만들어 내는 기법상 화면의 재질감)같은 느낌이 나서 너무 기분 좋았어요. '오해' 라는 제목을 붙였는데 올빼미로 표현한 이유는 그의 눈빛 때문인데요. 사람들마다 자신만의 눈빛이 있잖아요. 그저 원래 가진 눈빛이 올빼미처럼 사나워보이는 사람도 있을텐데 사람 자체를 오해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서요. 그건 그냥 그 사람의 눈빛일 뿐인데 말이에요. 오히려 올빼미는 '나는 당신한테 관심이 많다. 오해하지 말아달라' 라는 마음을 갖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려봤어요."
이 날 작품을 소개 하던 이혜영에게서는 작가의 모습 뿐만 아니라 인상적이었던 것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여느 학부모처럼 제 품으로 안은 딸의 얘기를 할 때였다.
'닭대가리 엄마' 라는 작품을 설명을 하는 데 어느 날 이혜영이 자신도 모르게 딸에게 공부를 강요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었더란다. '공부가 그리 중한가. 그 것보다 더 큰 가치가 있지 않나.'라는 생각에 이혜영은 딸에게 그 이후 공부 대신 봉사활동을 권했다고. 물론 현재 딸 서현이는 그 누구보다도 봉사활동을 열심히 한 학생으로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까지 잘 하는 예쁜 딸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일련의 아픔들을 지나온 그녀에게서 엄마의 더 깊고 넓어진 마음이 느껴졌다.
▶ 2. 바람의 뮤즈, 그리고 희망의 부부리
확실히 2. 뮤즈 오브 더 윈드(Muse of the Wind)에서는 한결 가벼워지고 밝아진 그녀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이혜영의 자연에 대한 동경과 향수, 그리고 그녀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생명체들을 주제로 꾸몄다. 먼저 떠나보낸 도로시가 이혜영의 과거, 아픔을 떠올리게 하는 메타포(metaphor: 비유, 전이) 라면 현재 그녀가 키우고 있는 똥꼬발랄 괴짜견 부부리는 희망의 상징이다. 부부리는 전시가 열리는 진화랑의 입구에서부터 바람의 뮤즈들과 함께 등장해 시선을 사로잡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부부리는 나비가 되어 꽃밭 위의 주인공처럼 날아다니기도 하고, 입체 조형물로도 구현되어 진화랑 정원에 설치되어 있는 쿠사마 야요이의 호박 조각 옆으로도 날아간다. 이혜영은 이번 전시에서 작품들을 선보일 뿐만 아니라 아티스트로서의 성장도 함께 보여주었다. 설치미술에 도전하는가 하면 조형물 2점도 함께 준비했다. 이번 전시에서 이혜영은 상상 속에 있는 다채로운 작품을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사람들과의 컬래버레이션을 주저하지 않았다. 조형물 작품은 신동호 신인 조각가와 협업하였으며, 갤러리 외부 설치작품 및 내부 연출, 도록 디자인 그리고 영상 제작은 5명으로 구성된 펀더맨탈(FUNDAMENTAL) 크리에이티브 그룹과 함께 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신경 많이 쓴 게 바로 설치작품이에요. 주제가 바람의 뮤즈이다 보니 '바람'을 표현할 수 있는 설치를 해보고 싶었어요, 사실 설치 작가라는 말만 들어도 어마어마하고 대단한 것 같이 느껴졌었어요.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번에는 '까짓 거 뭐 한 번 해볼까?' 했죠. 이번 전시를 열고 있는 진화랑 건물이 참 아름다운 건물인데 그 위에 그물을 한 번 씌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바람은 그물로 잡을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바람개비를 통해서 바람에 대한 이미지를 주고 싶었어요."
실제로 새하얀 그물이 드리워진 붉은 벽돌 건물의 진화랑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햇빛이 비치면 그물에 달린 수 백, 수 천 개의 바람개비가 그림자로 드리워지며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이혜영은 처음 시도해보니 '역시 도전을 멈추지 말아야겠다'라는 확신을 가졌단다. 다음 전시 때는 더 큰 설치와 조형물도 만들고자 한다고. '뭐 어때? 하면 되는거지!' 라는 생각이 들게 끔 해주었던 오히려 고마운 작업이었다는 소회를 밝혔다. 함께 배치된 작은 스툴 역시 그녀의 아이디어. 뜨개질로 그물과 함께 하나의 작품처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3. 바람의 속삭임, 그리고 여유
마지막 3.위스퍼 오브 더 윈드(Whisper of the Wind)에서는 비교적 최근에 그린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었다. '바람의 뮤즈들이 속삭이는 정원' 이라는 부제처럼 작품에서도 여유가 드러난다. 요즘 느끼는 그녀의 마음이 담겨있다. 하지만 밝아보이는 그림에도 그 반대의 감정을 조금씩 담고 있다. 옷걸이 위에 알록달록한 8개의 스카프를 그리고 제목을 '…9개였는데'라고 붙인 데에서도 그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고 싶어 그린 '피날레' 역시 벌이 꽃 위에 앉으려는 순간 다가오는 사람에 놀라 침을 쏘아버리고 죽음을 맞는 장면을 담았다. 굉장히 화려하고 아름다운 순간이지만 마지막이라는 아이러니가 인상적이다.
▶작가와의 만남을 마무리 하며…
그림을 처음 시작하던 시절 제 삶의 고통을 창작의 고통으로 승화시켰던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이혜영은 어느 새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제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하며 인생의 제 2 막을 다시 연 그는 사람들의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는 데에 망설임이 없었다. 거침없이 솔직했고 당당했다. 지난 시간동안 자기 자신과 처절하게 마주했기 때문이었으리라.
한 동안 동굴 속에서 자신에게 집중했던 그녀는 다시금 사람들과 함께 하는 소통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됐다.
그림은 이혜영에게 힐링 그 자체였다. 작품에 대한 대화를 나누면서도 그녀가 던지는 메시지는 간결했다. '그러니까 도전해보라! 당신도 할 수 있다!' 라는 것.
"사실 제 그림을 보면 비슷한 게 없어요. 이렇게도 그렸다가 저렇게도 그렸다가 하죠. 계속 변화해 왔어요. 그렇다보니 저 자신도 제가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아마 죽을 때까지 할 것 같아요. 이제 제게 꾸는 꿈, 목표는 정말 유명한 화가가 되는 거예요. 다른 의미에서가 아니라 그 걸로 정말 좋은 일을 하고 싶어서요."
좋은 일을 하고 싶다고 얘기하는 그녀의 눈이 반짝인다.
"또 하나의 소망이 있다면 제가 죽은 뒤에 작품들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설치가 돼서 '우리나라에도 저런 화가가 있었지' 라고 느낄 수 있는. 대중들이 좋아하는 작품을 했던 그런 화가로 기억되고 싶어요."
앞으로도 그녀의 작품 활동은 계속될 것이다. 그녀는 이제 아티스트 이혜영이다. hale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