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년 육성의 중요성이 갈수록 강조되고 있는 현재, '전통의 명가' 포항 스틸러스의 '화수분 축구'는 K리그의 롤모델 그 자체다.
일찌감치 유스 육성에 공을 들인 포항은 예산 삭감의 파도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았다. 매 시즌 '메이드 인 포항' 선수들이 등장하며 명가 지위를 이어왔다. 외국인선수 없이 이뤄낸 2013년 사상 첫 더블(리그+FA컵 우승)은 포항식 화수분 축구의 정점이었다. 국내외에서 종횡무진 활약중인 이동국(전북) 황진성(성남) 이명주(알 아인) 신진호(상주) 김승대(연변) 황희찬(잘츠부르크) 등은 포항 유스의 힘을 보여주는 걸작들이다. 포항은 지금도 신화용 신광훈 손준호 등 유스 출신들이 이끌어 가고 있다. 과연 포항 유스 육성의 비밀은 무엇일까. 프로스포츠 발전을 위해 스포츠조선과 한국프로스포츠협회가 공동으로 펼치는 대국민 특별캠페인 '이웃집에 프로가 산다'를 통해 비밀을 살펴봤다.
8일 늦더위가 한창인 포항제철중. 이날 초대된 재능기부 손님은 포항 유스 출신인 이광혁과 김로만과 2013년 우선지명으로 포항 유니폼을 입은 박선주였다. 특히 이광혁과 김로만은 포항제철중 출신이다. 이들은 포항제철고를 거쳐 포항에 입단했다. 학교 구석구석을 살펴본 이광혁과 김로만은 오랜만의 방문에 감회에 젖은 듯 했다. 여기저기 바뀐 풍경에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며 연신 웃음을 잃지 않았다.
이광혁이 막 연습을 마친 포항제철중 축구부 후배들을 향해 말문을 열었다. "요새 제철중 성적이 어때?" "썩 좋지 않은데요." 말끝이 흐릿해지는 대답에 살짝 실망한 눈치다. "내가 3학년때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었는데…." 이광혁의 어깨가 살짝 들썩인다.
포항 선수들의 등장에 반대편에서 볼을 차던 학생들이 바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배움터에 나선 오늘의 주인공, 포항제철중 스포츠클럽'네버루즈'다. 포항시 대회는 물론 전국스포츠클럽대회 우승까지 거머쥔 강팀이다. 2016년 학교스포츠클럽 리그가 한창이라 학생들도 기대가 큰 듯 했다. 3학년생 박종식은 "선수들이 가르쳐 주는 것 하나도 놓치지 않을거다. 대회에서 써먹고 싶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네버루즈를 인솔하고 온 유병회 선생님은 학생들 앞에서 "(이광혁 김로만은) 내가 가르친 제자들"이라며 뿌듯함을 감추지 못한다. 유 선생님은 황희찬 문창진도 졸업 후 학교를 다녀갔다며 "여기에 오면 다 국가대표가 된다"고 격려했다.
각자 소개를 마쳤다. 이제 본격적인 훈련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특별한 것은 없었다. 패싱게임과 기본기 훈련이 전부였다. 왜 그럴까. 이광혁에게 물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본기다. 프로가 된 지금도 기본기 훈련에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어린 나이에 얼마나 기본기를 다질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포항 유스 육성의 비결도 이 기본을 놓치지 않은 훈련 때문이다. 정말 어렸을때 지겹게 했다." 그렇다. 모든 성대함의 출발은 기본기였다.
아마추어 선수들인만큼 볼뺏기 훈련에서 볼이 3~4차례 이어가지 못했다. 힘겨워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함께 섞여 패싱게임을 하던 박선주가 나서 학생들을 독려했다. "더 열심히, 더 빠르게, 집중력 잃지 말고!"
힘들었던 기본 훈련 후 연습경기가 이어졌다. 선수들의 표정이 환해진다.
네버루즈가 한쪽에서 청백전을 하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 또 다른 스포츠클럽 '슈팅스타'가 나타났다. 슈팅스타는 여학생들로 이루어진 축구 클럽이다. 이광혁이 이들을 전담했다. 여학생들은 축구보다 '오빠'에게 관심이 많았다. 졸졸 쫓아다니며 질문세례를 퍼부었지만 이광혁은 프로답게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실력이 한참 떨어지는 여학생들이 조금이라도 재밌게 축구를 즐길 수 있도록 미니게임, 승부차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훈련을 진행했다.
마무리는 드리블 후 슈팅으로 연결하는 훈련이었다. 역시 여기서도 기본이 강조됐다. 박선주는 "골대 위치를 보고, 골키퍼의 위치를 보고 정확히 발등을 갖다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선주가 골대를 찢을듯한 강슛으로 시범을 보이자 '우와!'하는 탄성이 비명처럼 흘러나온다. 학생들은 박선주가 가르쳐준 것을 그대로 따라해보려고 열심이었다. 골대 앞에서는 골키퍼를 모아놓고 '김로만의 Q&A 시간'이 한창이었다. "키가 작은데 골키퍼 잘할려면 어떻게 해요?", "세컨드볼은 어떻게 대비해요?", "공중볼 처리를 못하겠어요." 학생들은 실전에서 궁금했던 것들을 쉴 새 없이 물었다. 김로만은 직접 시범을 보이며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려는 열의를 보였다. 몇몇 학생들의 실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일취월장했다. 슈퍼세이브가 나오자 김로만은 학생 머리를 쓰다듬으며 기쁨을 표했다. 고준영(13)은 "가르쳐 준대로 자신있게 했더니 진짜 되더라. 자신감이 생겼다"고 웃었다.
1시간30분간의 짧은 훈련이었지만 그새 정이 많이든 듯 했다. 학생들은 "다음경기 때 스틸야드로 가겠다"고 약속했다. 한 명이 쭈뼛쭈뼛 사인을 받자 우루루 몰려 즉석에서 미니 사인회가 열렸다. 유 선생님은 "선배들이 후배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니까 교사로서 뿌듯하다. 학교에 대한 자긍심이 많이 생겼을 것"이라며 흐뭇해 했다. 선수들도 즐거운 표정이었다. 박선주는 "아이들을 직접 가르쳐보니까 어렸을때 선생님들이 강조했던 것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그때 더 잘할걸 그랬다"고 했다. 김로만도 "오랜만에 모교에 와서 후배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니까 즐거웠다"고 말했다. 단체사진 속 선수들과 학생들의 표정은 밝았다. 프로와 이웃집 학생이 축구공으로 하나가 되는 훈훈한 마무리 속에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남았다.
포항=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