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샤인' 손흥민(24·토트넘)스러운 해법이었다.
생각해보면 위기 때 마다 그랬다. 손흥민은 언제나 '골'로 자신을 둘러싼 위기에서 탈출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손흥민은 10일 밤(한국시각) 영국 스토크온트렌트 베트365 스타디움에서 열린 스토크시티와의 2016~2017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4라운드 원정경기에서 선발 출전해 2골-1도움을 기록했다. 손흥민의 맹활약을 앞세운 토트넘은 4대0 대승을 거뒀다. 영국 언론은 손흥민의 활약에 엄지를 치켜올렸다. 영국 축구 통계 전문 사이트 '후스코어드닷컴'은 경기 후 손흥민에게 9.3점을 부여했다. 양 팀 통틀어 최고 평점이었다. 9점을 넘긴 선수도 손흥민이 유일했다. 영국 방송 스카이스포츠 역시 손흥민에게 평점 9점을 주며 맨오브더매치로 선정했다.
골잡이 답게 골로 위기를 넘긴 손흥민. 그 어느때보다 값진 멀티골이었지만, 그 보다 더 빛난 두가지가 있다.
▶골보다 빛났다 :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분명 위기였다. 어수선한 시즌 초반이었다. 볼프스부르크 이적설로 흔들렸다. 실제로 협상도 진행했다. 그 사이 팀내 입지는 급격히 약해졌다. 와일드카드로 나선 2016년 리우올림픽 이후 팀에 복귀했지만 한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교체명단에 이름을 올린 리버풀과의 3라운드에서는 '신예' 조슈아 오누마에게 밀리는 수모까지 겪었다. 유럽챔피언스리그를 병행하는 토트넘이 막판 손흥민의 잔류를 택했지만, 분명 손흥민을 향한 시선이 곱지 못했다. 토트넘은 이적시장 막판 조지-케빈 은쿠두, 무사 시소코를 거액에 영입했다. 모두 손흥민과 같은 2선 공격수였다.
손흥민에게 4라운드는 기회였다. 손흥민은 토트넘과 대한축구협회의 계약 문제로 중국과의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1차전만을 마친 후 팀에 합류했다. 경쟁자들이 월드컵 예선에 나서는 동안 차분히 준비할 시간이 있었다. 에릭 라멜라는 남미에 다녀왔고, 시소코의 경우 팀 적응의 시간도 필요했다. 14일 AS모나코와의 2016~2016시즌 유럽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1차전을 앞둔 토트넘 입장에서는 로테이션을 염두에 둬야했다.
운명의 스토크시티전, 예상대로 마우리시오 포체티노 감독은 손흥민 카드를 꺼냈다. 손흥민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크리스티안 에릭센, 델레 알리와 함께 2선에 위치한 손흥민은 최고의 활약으로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단순히 스쿼드 플레이어가 아니라 주전으로 활약할 수 있는, 언제든지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라는 것을 확인시켜줬다. 초반 해리 케인, 알리, 라멜라 등이 부진한 가운데 폭발시킨 골인만큼 더욱 임팩트가 강했다. 포체티노 감독도 화답했다. 그는 경기 후 구단 홈페이지를 통해 "손흥민의 활약에 행복하다. 그는 골이 필요했다. 손흥민은 우리를 도울 수 있는 선수이기 때문에 우리팀에서 매우 중요한 선수"라며 "우리는 손흥민이 필요한 많은 경기를 앞두고 있다. 손흥민은 팀에 중요한 선수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손흥민은 주전경쟁에서 반전의 발판을 만들어 냈다. 그것도 스스로의 힘으로 말이다.
▶골보다 빛났다 : 손흥민 답게 넣었다.
손흥민의 장점은 역시 스피드다. 공간이 많을때 그 가치가 가장 빛난다. 빠른 스피드로 공간에 침투한 뒤 지체없이 슈팅을 날리는 것이 손흥민의 트레이드마크다. 하지만 지난 시즌 이런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케인의 활동폭이 너무 넓다보니 손흥민이 뛰어들 공간이 나오지 않았다. 2선에서 에릭센과 알리가 짧은 패스로 경기를 풀어가다보니 침투보다는 좁은 공간에서 볼을 받아 만들어야 했다. 세밀함과 오프더볼(볼을 잡지 않았을때의 움직임)이 좋지 않은 손흥민 입장에서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부진도 부진이었지만, 그 답지 않은 플레이를 한 것이 지난 시즌 가장 아쉬운 점이었다.
하지만 스토크시티전은 달랐다. 우리가 알던 손흥민, 그대로였다. 손흥민은 이날 오른쪽 날개로 나섰지만 거의 왼쪽에 머물렀다. 손흥민이 좋아하는 자리다. 손흥민은 왼쪽에서 가운데로 이동하며 슈팅하는 것을 즐긴다. 에릭센이 자유롭게 움직이며 왼쪽에서 공간이 여러차례 만들어졌다. 손흥민은 공간이 생기면 지체없이 달려들어갔다. 공간침투는 결국 골로 이어졌다. 손흥민은 전반 41분 역습 상황에서 에릭센의 크로스를 왼발 발리슈팅으로 골을 만들어냈다. 지난 시즌까지 손흥민은 이런 찬스에서 페널티박스 밖에서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과감한 침투와 빈공간을 찾는 적극적인 움직임으로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다.
두번째 골은 더욱 손흥민 스러웠다. 역습에서 손흥민은 질풍같은 대시로 왼쪽 공간을 찾아들어갔고, 에릭센의 패스를 받아 지체없는 오른발 감아차기로 득점에 성공했다. 분데스리가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그 골이었다. 손흥민은 후반 25분 케인의 골까지 도우며 대미를 장식했다. 이후에도 손흥민은 역습 마다 선봉에 나섰다. 수동적이지 않고 더 적극적으로 움직이며 공간을 만들어냈다. 손흥민이 공간을 만들자 토트넘의 공격 속도가 살아났다. 손흥민도 자신이 가장 잘하는 플레이를 할 수 있었다. 단순한 골이 아닌, 손흥민 답게 만든 골이었던만큼 향후 활약을 더욱 기대케 했다.
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