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김지운(52) 감독과 무려 4작품을 함께한 배우 송강호. 페르소나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는 송강호에 대해 김지운 감독은 어떤 생각, 어떤 마음을 품고 있을까.
1920년대 말, 일제의 주요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상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오려는 의열단과 이를 쫓는 일본 경찰 사이의 숨 막히는 암투와 회유, 교란 작전을 그린 스파이 첩보물 '밀정'(김지운 감독, 영화사 그림·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작).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에 나라를 잃은 인물들의 감정, 사람들 간의 복합적인 관계를 흥미진진하고 밀도 있게 다룬 콜드 누아르다.
특히 이번 '밀정'에서는 김지운 감독의 데뷔작인 '조용한 가족'(98) '반칙왕'(00)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 08)으로 호흡을 맞춘 배우 송강호가 조선인 일본 경찰 이정출 역을 맡아 재회해 관심을 받고 있다. 송강호는 특유의 절제된 감정과 섬세한 표현력으로 복잡하고 입체적인 이정출의 심리 상태를 극대화했고, 관객이 캐릭터의 내면을,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따라갈 수 있도록 흡입력 있는 연기를 선보여 '밀정'의 맛을 200%로 끌어 올렸다.
송강호를 향해 '한계가 없는 배우'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았던 김지운 감독. 데뷔부터 지금까지 송강호와 합을 맞춰왔고 함께한 시간만큼 쌓아온 두 사람의 특급 케미스트리가 '밀정'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송강호는 도장 깨기 하는 무림의 고수처럼 매번 인생작을 만드는 배우예요. 이번 '밀정'도 송강호의 최고의 연기를 봤다는 평이 쏟아지더라고요(웃음). 그의 연기력은 무한대인가 봐요. 솔직하게 저도 '밀정'을 하면서 '송강호만 믿고 가자'며 의지했어요. 하하. 너무 감사하게도 네 번째 함께할 수 있었는데 이번 작품은 유독 오랜만에 배우 송강호를 경험한 것 같아 기뻐요. '놈놈놈' 때는 캐릭터 자체가 워낙 만화 같아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많이 못 나눴거든요. '놈놈놈'에서는 거친 액션이나 움직임이 잘 보여야 했는데 그때 전 마치 국가대표 감독이 된 기분이었어요. 송강호뿐만 아니라 정우성, 이병헌 등 모든 배우를 운동 선수로 봤던 것 같아요. 더 빨리, 더 높게 보여달라고만 했어요. 더 깊은 내면, 더 다양한 감성을 꺼내달라 이야기하지 못했죠. 그래서 이번 '밀정'은 더 뜻깊어요. '반칙왕' 이후 영화에 대해 가장 많이 이야기를 나눴고 그 시대에 대해, 이정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공유했거든요."
김지운 감독에 따르면 송강호는 콩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경지에 올랐다고. 많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감독 대 배우, 혹은 인간 대 인간 관계가 됐단다. 이만하면 김지운 감독에게 송강호는 운명이자 필연아닐까. 물론 송강호 외에도 '달콤한 인생'(05) '놈놈놈' '악마를 보았다'(10)로 세 차례 인연을 맺은 '월드스타' 이병헌도 마찬가지다. 그 역시 '밀정'에서 의열단장 정채산 역으로 특별출연하는데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김지운 감독의 불음에 한 달음 달려와 준 특급 의리를 과시했다.
"가끔 그런 순간들이 있어요. 제가 컷을 외치고 모니터가 아닌 실제 송강호를 볼 때, 연기를 마치고 모니터하러 오던 송강호가 제 표정만 보고 다시 돌아가는 그런 순간이요. 굳이 '다시 한 번'을 외치지 않아도 제 표정만 보고 다시 돌아가 연기를 하는 송강호를 보면 이게 호흡인가 싶어요. 이병헌도 그렇죠. 송강호나 이병헌 모두 제겐 너무 운명 같고 행운인 사람들이죠. 저도 몰랐는데 송강호와 제가 8년마다 작품을 하더라고요. 8년을 주기로 만났는데 그때마다 만족스러웠죠. 송강호와 이병헌도 그렇네요? 우린 8로 엮인 사이인가 봐요. 하하. '밀정' 이후 8년 뒤 다시 함께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송강호, 이병헌은 모르는 저 혼자만의 생각이지만요(웃음)."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스포츠조선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