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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②] 김지운 감독 "'밀정'은 국뽕영화 아닌 눈뽕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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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인 워너브라더스가 처음으로 한국영화 투자·제작에 나선 액션 영화 '밀정'(김지운 감독, 영화사 그림·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작). 한국형 스파이 첩보물로 불리는 '밀정'에 대해 김지운(52) 감독이 조심스럽지만 소신 있는 견해를 밝혔다.

할리우드 진출작인 '라스트 스탠드'(13) 이후 3년만, 국내 작품으로는 '악마를 보았다'(10)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김지운 감독의 신작 '밀정'. 1920년대 말, 일제의 주요시설을 파괴하기 위해 상해에서 경성으로 폭탄을 들여오려는 의열단과 이를 쫓는 일본 경찰 사이의 숨 막히는 암투와 회유, 교란 작전을 그린 스파이 첩보물이다.

"'라스트 스탠드'를 끝내고 미국에서 두 번째 작품을 준비 중일 때 제안받은 작품이 '밀정'이었어요. 당시 미국에서 중·저예산 영화를 기획 중이었는데 캐스팅이 난항에 빠졌거든요. 미국에서 저예산 영화는 톱스타가 출연하지 않으면 투자를 받을 수 없는데 저 역시 톱스타에게 러브콜을 보냈고 다들 스케줄이 안 맞아서 힘들었어요. SF '인랑'을 돌입하기엔 너무 대작이라 천천히 준비하고 싶었고요. 의도치 않게 시간이 붕 떴는데 그때 '밀정'이 왔죠. 예전부터 스파이물을 좋아했는데 때마침 구미에 딱 맞는 작품이었던 거죠. 초고 단계에서는 상업적인 부분이 너무 없었는데 오락적인 요소와 인물들을 늘리면서 지금 시대에 맞는 상업영화로 만들었어요."

일제강점기라는 시대에 나라를 잃은 인물들의 감정, 사람들 간의 복합적인 관계를 흥미진진하고 밀도 있게 다룬 작품으로 언론과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혹자는 '김지운이 돌아왔다'라는 평을 내놓을 정도.

국내뿐만이 아니다. 제7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제41회 토론토국제영화제, 제49회 시체스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1회 런던아시아영화제 등에 공식 초청됐고 내년 2월 열리는 제89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에도 한국영화 대표로 출품될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특히 '밀정'은 지난 3일(현지시각) 열린 베니스영화제 공식 스크리닝 및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이후 외신들로부터 '1온스의 군더더기도 없는 완벽한 작품'(버라이어티) '놀라운 폭의 전문가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시퀀스들을 비롯해 호화로운 시대구현, 의상 디자인과 송강호 등이 '밀정'을 즐길 수 있게 도와줄 것'(스크린데일리) '열차 시퀀스는 진가가 돋보이는 장대한 장면'(할리우드 리포터) '훌륭한 필름메이킹의 예'(시네뷰) 등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베니스영화제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 쉴 틈 없이 곧바로 '밀정' 홍보를 시작한 김지운 감독. 무박에 가까운 영화제 일정으로 몸은 지쳤지만 마음은 뜨거운 관심에 힘을 얻고 있다고.

"베니스영화제는 처음이에요. 칸국제영화제, 베를린영화제는 경험이 있는데 베니스영화제는 저도 새로웠죠. 다른 영화제와 달리 베니스영화제는 모든 초청 배우, 감독이 공항에서 내리면 보트를 타고 영화제가 열리는 리도 섬으로 들어가잖아요. 보트를 타고 바다를 가로질러 가는 낭만을 꿈꿨는데 막상 도착하니 늦은 밤이더라고요(웃음). 깜깜해서 이게 바다인지 바닥인지 모르겠더라고요. 다행히 돌아올 때는 낮이었는데 너무 피곤해서 낭만을 즐길 수가 없더라고요. 베니스영화제에서 '밀정'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가장 인상적인 평은 '어디 하나 뺄 배우가 없다' '김지운의 가장 짜릿한 순간'이었어요. '밀정'을 얼마나 이해해줄지 궁금했는데 아무래도 1차 세계대전, 2차 세계대전을 겪어서인지 불굴의 레지스탕스 코드를 잘 이해해주더라고요."

베니스영화제에서 좋은 추억을 쌓고 돌아온 김지운 감독. 한 가지 안타까웠던 점은 '밀정' 스크리닝이 베니스영화제 측에서 새로 지은 가건물에서 상영됐다는 것. 가건물 특성상 외부 소음이 상영 중에 고스란히 들어왔다고. 기왓장 지붕 위를 추격하는 오프닝에서는 헬기 소리가, 뭉클한 감정이 최고조에 다다른 엔딩 파티 장면에서는 일렉트로닉 음악이 배경음악처럼 들렸다는 웃픈 스토리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찬사를 얻어내고 금의환향한 '밀정', 김지운 감독이다.

이렇듯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보이는 '밀정'. 그런데 한편으로 '밀정'은 스파이물이라는 지점에서 지난해 여름 개봉, 1270만 관객을 동원한 '암살'(최동훈 감독)과 비교되고 있기도 하다. 실제로 영화를 보면 첩보를 다룬다는 지점만 비슷할 뿐 영화의 전체적인 톤이나 구성, 메시지는 확연히 다르지만 표면적으로는 여러모로 닮은 구석이 있다.

"저도 주변에서 ''밀정'이 '암살'과 비슷하지 않으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고 많은 분이 비교하고 있고요. 그런데 영화를 보시면 확실하게 아실 거예요. '암살'과 정반대의 지점에 있는 영화라는 걸요. 관객이 '밀정'과 '암살'에 대해 우열을 가리는 게 아니라 차이의 재미를 느끼고 돌아갔으면 좋겠어요. '암살'은 '밀정' 보다 확실히 엔터테이너적인 요소가 돋보이는 영화고 '밀정'은 인물의 관계, 미장센, 스토리가 강점이 작품이죠. 배우들의 묵직하고 진중한 감성, 앙상블도 '암살'과 분위기가 달라요. '밀정' 고유의 즐거움과 재미가 있어요. 재미가 곧 의미가 되고 의미가 곧 재미가 됐으면 좋겠어요(웃음)."

김지운 감독은 '밀정'을 향한 또 다른 시선인 '국뽕(과도한 애국주의)'에 대해서도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털어놨다. 한국전쟁, 역사를 다룬 영화에는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필연적으로 민족주의에 대한 찬양을 주입하는데 '밀정' 역시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다 보니 이런 시선을 피할 수 없었다.

"'밀정'을 만들면서 가장 경계했던 부분이었어요(웃음). 신파로 빠지지 않길 원했고 계몽적인 애국심 고취를 강요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배경이 배경인지라 일찍부터 '밀정'을 두고 '국뽕'이라며 편견을 가지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런 오해로 '밀정'을 지나치는 분이 계실까 봐 계속해서 설명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밀정'은 국뽕이 아니다고요. 물론 애국을 강요하고 싶었다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는 이야기에요. 그래서 콜드 누아르라는 말을 한 것도 있고요. '밀정'은 전작들처럼 차갑게 시작했고 물론 예상치 못하게 뜨겁게 끝났지만 그건 인간으로서 느끼는 감정이지 결코 애국을 주입하려는 건 아니었죠. 어떤 관객이 '밀정'에 대해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밀정'은 국뽕 영화가 아니라 눈뽕 영화다. 이 말이 정확한 거 같아요. 배우들의 연기, 미술, 미장센 등 보는 재미가 있는, 눈을 사로잡는 영화죠. 하하."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영화 '밀정'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