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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①] 김지운 감독 "한국말로 소통하니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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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3년 전, 맨땅에 헤딩하듯 할리우드에 진출한 김지운(52) 감독이 오랜만에 국내 영화로 돌아왔다. 아주 차갑고 아주 뜨거운 콜드 누아르 '밀정'(김지운 감독, 영화사 그림·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작)으로 말이다. 그는 치열했던 할리우드에서, 그리고 다시 돌아온 충무로에서 어떤 변화를 느꼈을까?

1998년 코믹잔혹극 '조용한 가족'을 통해 충무로로 화려하게 등단한 김지운 감독. 매 작품 새로운 장르와 소재, 개성적인 캐릭터로 자신만의 연출 영역을 구축했다. 소시민의 페이소스를 코미디에 녹여낸 '반칙왕'(00), 한국 호러 영화의 기준이 된 '장화, 홍련'(03), 한국 최초 누아르 '달콤한 인생'(05), '김치 웨스턴'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하 '놈놈놈', 08), 절대 악에 대한 복수극 '악마를 보았다'(10) 등 뻔한 장르를 비틀고 독특한, 신선한 감각으로 버무려 '김지운 스타일'을 만들어 낸 것.

두터운 팬층을 확보, 충무로 스타 감독으로 명성을 떨친 김지운 감독은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할리우드로 진출, 서부극인 '라스트 스탠드'(13)를 꺼내 들었다. 김지운 감독의 할리우드 입성도 관심을 받았지만 무엇보다 할리우드 톱스타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캘리포니아 주지사 임기를 끝낸 후 선택한 첫 복귀작으로 전 세계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하지만 운이 나빴던 것일까? 뚜껑을 연 '라스트 스탠드'는 국내는 물론 할리우드에서 혹평을 받으며 고배를 마셨다. 신인의 자세로 돌아간 김지운 감독이 거대한 할리우드 시스템에 이리저리 시달리며 우여곡절 만든 '라스트 스탠드'이지만 아쉽게도 누적 관객수 6만6698명, 흥행참패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그리고 김지운 감독은 '라스트 스탠드' 이후 3년간 절치부심해 '밀정'이란 대작을 보란 듯이 꺼내 들었다.

"사실 영화를 처음 만들 때부터 흥행에 대한 야심은 버렸어요. 다들 그렇게 안 보는데 의외로 흥행에 대한 부분은 소박하고 단순하게 생각하는 편이죠(웃음). '이번에는 이런 장르를, 이런 이야기를 해봤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시도했다가 반응이 좋지 않으면 '이번에는 아닌가 보다'라고 마음을 다독이죠. 떠나간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이미 돌아선 마음은 제가 아무리 애를 써도 되돌릴 수 없다는걸 잘 알죠. 실패할 때 스스로 교훈을 곱씹고 다음을 기약하는 편이에요. 사소한 것까지 일희일비하는 건 자기 에너지만 소모할 뿐, 아무런 도움이 안 돼요. 영화판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죠. '라스트 스탠드'가 객관적으로 실패했지만 크게 낙담하지 않아요. 분명 그 실패 속에서도 배운 점은 있으니까요. 늘 최악의 상태를 생각하는 스타일이라 충격도 덜했어요. '밀정'은 '라스트 스탠드' 때보다 평이 좋은데 그래도 안심할 수 없죠. 흥행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하하."

김지운 감독의 '밀정'은 '악마를 보았다'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다. 전작에서 꾸준히 호흡을 맞춘 배우들, 스태프들과도 오랜만에 뭉쳐 합을 맞춘 시간이었다는 김지운 감독. 일단 내 나라, 내 사람들과 함께 한다는 것만으로도 뜻깊고 행복했다고. '시간은 곧 돈이다'며 숨통을 조인 할리우드 시스템을 벗어나 충무로에서 모처럼 여유와 자유를 느낀 김지운 감독이다.

"정말 고국에 돌아오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어요. 배우에게, 스태프에게 한국말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다는 게 이렇게 감사한 일인 줄 과거에는 미처 몰랐죠. 하하. 미국에서 영화를 찍을 때는 영어로 소통했고 디테일한 디렉션을 주고 싶을 때만 통역을 거쳤거든요. 그런데 통역이 뜻을 제대로 전달한 것인지 눈치 보기에 바빴어요. 또 한창 예술혼이 피어올라 몰입해서 찍으려고 하면 식사 시간, 퇴근 시간이라며 칼같이 끊고 가버리는 것도 난감했죠(웃음). 어떻게 온 예술혼인데…, 하하. '밀정'으로 다시 오니까 여긴 제멋대로 콩떡같이 설명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배우들, 스태프들이 있더라고요. 네 번째 호흡을 맞추는 송강호는 말할 것도 없고요(웃음). 그런데 6년 사이에 국내 영화계도 많이 바뀌었더라고요. 일단 근로기준법이 정착돼 12시간을 정확히 지켜야 했죠. 근로법은 할리우드에서 이미 적응해 저도 지키려고 노력했고요. 오히려 이번 '밀정'에서는 배우들이 더 찍겠다며 식사 시간까지 미루는 거예요. 전 배고픈데…. 적당히 하라며 짜증 내기도 했죠. 하하."

김지운 감독은 '라스트 스탠드'를 통해 얻은 가장 큰 교훈으로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촬영 진행을 꼽았다. 김지운 감독뿐만이 아니라 많은 감독이 영화를 촬영하는 과정에서 여러 요인으로 인해 계획했던 촬영일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이는 부분이 있는데 김지운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연장으로 인한 손실을 줄이는 노하우를 배웠다는 것. 전작에서 1~2회차 연장됐던 부분이 '밀정'에서는 전혀 없었다고. 초반 계획했던 103회차, 군더더기 없이 딱 맞춰 끝냈다며 어깨를 으쓱였다.

"창피한 이야기이지만 전작에서는 '될 때까지, 끝까지 해보자'라며 욕심을 부렸거든요. 무리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만 어쨌든 그런 희생으로 오는 성공이 주는 쾌감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할리우드에서는 감독에게 시간 압박을 많이 줘요. 그래서 한국에서처럼 '어떻게 찍을까?' '어떻게 보여줄까?' 이런 고민을 촬영 현장에서 할 수가 없죠. 그래서 필요한 건 미리 생각하고 빨리 잡아내야 하는 능력이 필요했고 많이 숙달됐죠. '밀정'을 촬영하면서 송강호나 스태프들에게 '효율적이고 합리적으로 변했다'며 칭찬받기도 했어요(웃음)."

스스로 변화를 느꼈다는 김지운 감독은 '밀정'이 자신의 영화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날 중반기라 평했다. 이전의 김지운과 앞으로의 김지운을 보여줄 작품이라는 것. 실패도 성공도 확신할 수 없지만 어찌 됐건 오랜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적당히 안정적으로 연착륙했다고 웃었다.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 스포츠조선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