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삼성 라이온즈)이 욕심을 냈다. "최대한 빨리 한일 통산 600홈런을 치고 싶다"고 했다. 의외다. '국민 타자'가 대놓고 '야심'을 드러냈다.
7일 대구 kt 위즈전이 끝난 뒤였다. 이날 5번 지명 타자로 선발 출전한 그는 5타수 3안타를 기록하며 개인 통산 2000안타의 금자탑을 세웠다. 양준혁(전 삼성), 전준호(전 우리), 장성호(전 kt), 이병규(LG·9번), 홍성흔(두산), 박용택(LG), 정성훈(LG)에 이어 역대 8번째로 대기록을 달성했다. 무엇보다 최고령, 최소 시즌 2000안타다. 그는 40세 20일의 나이로 종전 전준호(39세 6개월 27일)의 기록을 넘어섰다. 14시즌 만에 2000안타 고지에 오르면서 양준혁, 이병규, 박용택(이상 15시즌)의 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경기 후 그는 "한국에서 14년, 일본에서 8년 등 22년 간 꾸준히 노력한 결과인 것 같다. 기쁘게 생각한다"고 했다. 아울러 "오늘 행운의 안타 2개를 반등의 기점으로 삼아 한일 통산 600홈런도 최대한 빨리 달성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언뜻 보기엔 또 다른 대기록에 대한 야심이 담겨있는 소감. 하지만 정반대다. '빨리'라는 단어로 말하고 싶은 속뜻은 달랐다.
"팀 부담을 덜어주고 싶다"는 의미였다. 자신에게 쏠린 관심과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얘기다. 삼성은 아직 가을 야구를 포기한 것이 아니다. 이날 현재 5위 KIA 타이거즈에 5.5경기 차 뒤져있지만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선수들은 '쉽지 않다'는데 동의할 뿐, 결코 허투루 경기를 치르지 않는다. 긴 연승을 타면 기적의 역전극이 완성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승엽은 모든 포커스가 자신에게 맞춰진 작금의 상황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삼성 라이온즈 야구가 아닌 600홈런 달성 여부에만 관심이 쏠려있기 때문이다. 그는 후배들과 팀 미래를 위해서 이제는 자신이 '조연'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그렇게 행동한지도 꽤 됐다. 하지만 600홈런으로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지난달 20일을 끝으로 침묵이 계속되면서 동료들과 팀이 부담을 가질까 염려스럽다. 그래서일까. 그는 일찌감치 한일 통산 600홈런 의미를 축소시켰다. "이건 온전히 나 혼자만의 기록이다. KBO리그 공식 기록이 아니다. 별 다른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물론 이승엽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이가 많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 값진 기록이 쏟아져야 리그 흥행에 도움이 되고 장기적으로는 프로야구도 발전하기 때문이다. 야구 팬이라면 이승엽이 600번째 홈런을 치는 순간 현장에 있길 원한다. 한국 야구가 낳은 최고의 스타가 만들어낸 감동을 직접 느끼고 싶어 한다. KBO가 공식 기록으로 인정하지 않을 뿐, 팬들은 한일 통산 600홈런을 가장 가치 있는 기록 중 하나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다.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지 않았다면 벌써 700홈런을 넘겼을 '슈퍼스타'다.
어쨌든 이번에도 남다른 이승엽의 인성만 재차 확인하게 된다. 왜 그가 '최대한 빨리 홈런을 치고 싶다'고 말한 것인지. 본심을 알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삼성 관계자는 "그런데 그 홈런도 팀이 크게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치고 싶지 않아 한다. 요즘도 꼭 장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면 오직 컨택트 위주의 스윙만 한다"며 "이승엽의 역사적인 홈런을 돌아보면 대부분이 경기 초반 나왔다. 그는 홈런 개수보다 자신의 홈런으로 인한 팀 승리를 먼저 생각한다"고 했다.
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