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묘했다.
시리아 골키퍼 이브라힘 알메흐의 이야기다. 슈틸리케호는 6일(한국시각) 말레이시아 세렘반 파로이스타디움에서 시리아와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2차전을벌였다.
전력 차가 컸다. 한국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48위다. 시리아는 105위다. 이변이 없는 한 수월하게 승점 3점을 챙길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변수가 있었다. 더운 날씨와 떡잔디였다. 많은 활동량을 바탕으로 패스 축구를 하는 한국 입장에서 부정적 요소였다.
또 하나 슈틸리케호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중동 특유의 침대축구다. 물론 염두에는 뒀다. 중동팀들이 강팀과의 경기에서 시간을 지연시키기 위해 그라운드에 드러눕는 것은 흔한 일이다.
하지만 이날 시리아가 보여준 그림은 다소 색달랐다. 원맨쇼였다. 주인공은 골키퍼 알메흐였다. 알메흐의 쇼는 경기 초반부터 시작됐다. 알메흐는 전반 6분 구자철의 슈팅을 막자마자 드러누웠다. 3분여 시간을 끌었다. 사실 별다른 충돌이 없었다. 하지만 알메흐는 쥐가 난듯 오른쪽 다리를 부여잡고 통증을 호소했다.
시작에 불과했다. 알메흐는 공을 잡을 때면 고의적으로 공을 빨리 처리하지 않고 수초 동안 잡고 있었다. 6초룰이 적용돼야 할 상황들이 많았지만 모두 그냥 넘어갔다.
0-0으로 시작된 후반. 알메흐가 침대 축구 2막을 열었다. 전반 초반에도 그라운드에 누워 시간을 벌었던 알메흐. 후반에도 같은 패턴을 선보였다. 후반 3분 아무런 이유 없이 또 쓰러졌다. 오른쪽 햄스트링에 얼음찜질까지 받았다.
이상했다. 분명 알메흐는 지속적으로 통증을 호소했다. 하지만 시리아 벤치는 느긋했다. 오히려 미소까지 지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알메흐의 행동들. 마치 짜여진 각본을 의심하게 했다.
알메흐는 정말 아팠던 것일까? 평시 상황에서 절뚝이던 그는 위기상황에선 날렵한 골키퍼였다. 번개처럼 신속하게 움직였다. 후반 9분 문전에서 이청용의 슈팅을 막는 장면에서는 전설적인 골키퍼 야신이 부럽지 않을만큼 온 몸을 날리는 선방을 보여줬다. 그리고 역시 이어진 침대축구. 알메흐는 슈팅을 막은 뒤 내친김에 손가락 통증을 호소하며 장갑까지 벗어 던진채 뒹굴었다. 후반 막판 추가시간까지 알메흐는 경합 과정마다 어김 없이 드러누웠다. 그야말로 일관성는 침대축구였다.
시리아 벤치도 액션을 취했다. 후보 골키퍼들이 일어서서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보여주기 식 액션인듯 건성으로 몸을 풀었다. 결국 골키퍼 교체는 없었다. 알메흐는 종료휘슬이 울릴 때까지 골문을 지켰다.
이날 보여준 알메흐와 시리아 벤치의 기이한 모습. '올 뉴(all new) 침대축구'로 기록될만 한 미스터리한 장면의 연속이었다.
임정택 기자 lim1st@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