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꾸지는 않았어요."
프로야구에서 한 선수가 은퇴하기 전까지 2000개의 안타를 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쉽게 설명해 20년 동안 꾸준히 매 시즌 100개씩의 안타를 때려야 하는 것이다. 실력과 몸 관리는 기본이요, 선수로서 운도 따라야 이룰 수 있는 대기록. LG 트윈스 정성훈은 28일 잠실 kt 위즈전에서 안타를 때려내며 프로야구 역대 7번째 개인 2000안타 대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정성훈은 평소 무뚝뚝하다. 인터뷰도 잘 하지 않는다. 그래서 정성훈이 어떤 선수인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는 팬들이 많다. 그래서 준비했다. 정성훈의 야구 인생 이야기다.
▶엄마 손에 이끌려 한 야구
정성훈은 2000안타를 기록한 직후 흥분되는 마음을 주체하기 힘들어 보였다. 평소 세리머니도 잘 하지 않는 등 감정 내색을 안하는 정성훈임에도 불구하고 그도 사람인지라 기다렸던 대기록 달성에 심장이 쿵쾅쿵쾅할 수밖에 없었다.
정성훈이 기록 달성 후 가장 먼저 생각한 사람은 바로 '엄마'. 그의 표현을 정확히 빌려 어머니라고 하지 않았다. 엄마였다. 정성훈은 "초등학교(광주 송정초) 시절 공부를 열심히 안했다. 4학년 때, 희망이 없어보이셨는지 엄마가 야구라도 시키시고 싶었던 것 같다. 야구부에 들어가라고 해 야구를 했다. 그 때는 야구를 크게 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그냥, 엄마가 시키니 야구를 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내가 2000안타를 때린 선수가 됐다.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게 이끌어준 분이 기록 달성 순간 가장 먼저 떠올랐다.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타이틀 홀더 아닌 2000안타 기록자 있나요?
정성훈은 99년 광주일고를 졸업하고 해태 타이거즈(KIA)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신인 첫 해 107안타를 때려내며 화려한 신고식을 했다. 이후 해태-KIA-현대-우리-LG 유니폼을 갈아입으며 2000안타 기록을 달성하게 됐다. 1995경기 출전, 7885타석, 6597타수 만에 2000안타를 채웠다. 프로 18년을 뛰며 단 세 시즌만을 제외하고 모두 100개 이상의 세자릿수 안타를 때려내며 꾸준함을 과시했다.
그런데, 확실한 임팩트는 없었다. 독특한 타격폼, 그리고 팬들을 즐겁게 하는 기행(?) 등으로는 주목을 받았지만 야구로 '와' 하는 탄성을 자아내게 한 적은 많지 않다. 정성훈 스스로도 이를 인정한다. 그는 "타이틀 한 번 따본 적 없이 2000안타를 친 선수는 나밖에 없지 않나"라며 웃었다. 2000안타를 때려낸 양준혁 전준호 장성호 이병규(9번) 홍성흔 박용택은 프로야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스타들. 타이틀 획득을 밥먹듯이 한 선수들이다. 그런데 정성훈은 진짜 타이틀 홀더가 된 적이 없다. 그래서 더 무섭다. 영화 '짝패'의 명대사가 생각난다.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강한 거다.'
▶나는 부끄럽다
정성훈은 28일 kt전을 앞두고 홍보팀 직원들에게 부탁을 했다. 2000안타를 때려도, 팀이 지면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었다.
자신이 대단히 잘나서, 허세를 부리는 게 아니었다. 정성훈은 '상남자 포스'를 풍기는 외모와는 달리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걸 부끄러워하고 수줍어 한다. 정성훈은 "나는 스타 선수가 아니다. 그저 묵묵히, 열심히 야구하는 선수일 뿐이다. 늘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부끄럽다"고 말했다. 오죽했으면 2000안타 기록을 원정 경기에서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을까. 원정지에서 기록 달성을 하면 주목을 덜 받을 것 같다는 이유였다.
정성훈은 "스타도 아닌 내가, 열심히 하다보니 이런 대기록 달성의 순간이 왔다. 나도 신기하다"며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겉으로는 차가워 보이지만, 속내를 드러낼 때는 따뜻한 남자가 바로 정성훈이다.
▶우타자 최다안타 기록이 작은 목표
정성훈은 LG에서 두 번의 FA 계약을 맺으며 8년째 뛰고있다. 올시즌을 잘 마치면 생애 세 번째 FA 기회를 얻는다. 한국 나이로 37세. 이제 선수로서 황혼기에 접어든다.
얼마나 더 선수 생활을 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솔직한 마음이 궁금했다. 정성훈은 "잘 될 때는 오래 더 야구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안맞으면 '이제 끝인가'라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몸관리도 잘하고 있고, 아직 선수로서 경쟁력도 있다고 자신한다. 앞으로 3~4년 정도는 충분히 더 뛸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0안타 대기록을 세웠다. 프로 선수라면 또 다른 목표가 있어야 앞으로의 동력이 생긴다. 정성훈은 "사실 개인 목표를 갖고 야구를 한 적이 없었다. 2000안타도 '이 기록을 꼭 세워야겠다'고 마음 먹지 않았었다. 그냥 열심히 하다 보니, 2000안타 기록이 가까워지니 '내가 이 기록을 달성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다음 목표에 대해 밝혔다. 정성훈은 "다른 건 몰라도, 3~4년 더 뛰면 우타자 최다 안타 기록은 당분간 내가 갖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고 말했다. 그는 "김태균(한화) 같은 선수들이 분명히 깰 수 있는 기록이겠지만, 그래도 새 목표를 위해 열심히 운동하고 싶다"고 말했다.
2000안타 기록자 가운데 우타자는 홍성흔과 정성훈 뿐이다. 현재 홍성흔은 2046안타를 기록중이다.
김 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