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암벌은 과연 '중국 축구 굴기'의 출발점이 될까.
중국 축구계의 온 신경이 서울에 집중되고 있다. 오는 9월 1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질 한국과의 2018년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B조 첫 경기에 명운을 건 모습이다. 중국 팬들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최소 1만5000명, 최대 3만명의 관중이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채울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오고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성지인 상암벌에서 '중국 축구의 역습'이 시작되려 하고 있다.
▶'짜요' 구호, 상암벌 뒤덮나?
"팬들이 중국전에 많이 찾아주시길 바란다. 응원이 필요하다."
울리 슈틸리케 A대표팀 감독은 지난 22일 중국전 소집 명단 발표 자리에서 재차 팬들에게 읍소했다. 7월 초 올림픽팀 소집 당시 "이러다가 서울월드컵경기장이 중국 팬들로 뒤덮일 수도 있다"며 위기감을 나타내던 때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러시아로 가는 길의 첫 걸음, 안방에서 만원관중의 성원 속에 승리를 얻고자 하는 열망이 깔려 있다.
현실은 정반대다. 슈틸리케 감독의 바람과 달리 중국전을 바라보는 팬심은 고요하다. 축구협회는 지난달 말부터 중국전 입장권 판매를 시작했지만 '매진'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29일 오후 6시 현재 중국전 입장권 판매처 확인 결과 1만석 이상이 여전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축구협회는 경기장 남측(S석) 1, 2층에 해당하는 1만5000석을 중국축구협회에 판매해놓은 상태다. 국내 거주 중인 중국인과 여행사 등 대행업체를 이용한 중국 단체 응원단 숫자는 최대 3만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서울월드컵경기장의 좌석 수는 6만6704석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슈틸리케호는 중국 팬들의 '짜요(加油·중국 응원 구호)' 구호 속에서 중국전을 치러야 할 판이다.
▶전세기-요리사-돈잔치, 본선 못잖은 지원
중국 대표팀의 한국 원정 준비는 마치 '월드컵 본선 출전'을 방불케 한다. 29일 전세기편으로 인천공항에 도착한 중국 선수단은 곧바로 서울 시내 5성급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중국 일간지 첸바오(晨報)는 '중국축구협회가 선수들의 취향을 반영해 전속 요리사를 동행시키는 한편, 호텔 스위트룸을 선수들이 24시간 이용할 수 있는 스낵바로 이용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또 '호텔 주변에는 경비인력을 배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한국전을 앞둔 대표팀을 향한 지원은 중국 축구 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한국전에 걸린 당근은 '지원' 뿐만이 아니다. 중국축구협회가 한국전에 건 승리수당은 300만위안(약 5억원)이다. 홍콩 일간지 밍바오(明報)는 중국 언론을 인용해 '중국축구협회는 최종예선 10경기 중 원정으로 치러지는 5경기 모두 전세기를 지원할 계획이며, 매 경기 300만위안(약 5억원)의 승리수당을 걸었다'고 보도했다. 또 '대표팀은 본선에 오르면 중국축구협회로부터 6000만위안(약 100억원)의 보너스를 받게 되며, 스폰서들도 3000만위안(약 50억원)을 내놓기로 했다'고 소개했다. 중국축구협회가 지난 2차예선 당시 내건 승리수당은 50만위안(약 8400만원)이었다.
▶그들은 왜 한국전에 목을 매나
중국은 지난해 3월 '월드컵 본선 진출-월드컵 개최-월드컵 우승'이라는 목표를 발표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주재한 제10차 중앙 전면심화개혁영도소조 회의에서 '중국 축구 개혁 종합방안'을 심의해 내린 결론이다.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첫 관문 돌파를 러시아월드컵으로 잡았다.
중국은 한국전을 치른 뒤 이란과 2차전을 갖는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에서 중국은 78위인 반면, 한국은 48위, 이란은 39위다. 축구공은 둥글지만 그간의 실력을 평가해 반영한 랭킹의 무게감은 무시 못한다. 중국 입장에선 조 수위가 예상되는 한국, 이란과의 두 경기가 사실상 최종예선 판도를 가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차예선에선 홍콩과 무승부에 그치는 등 기대 이하의 성적에 허덕이다 간신히 최종예선행 티켓을 잡은 중국에겐 어려운 도전이다. 중국축구협회의 막대한 지원 속에는 국가적 관심이 집중될 최종예선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압박감이 읽혀진다.
중국 축구계는 상암벌에서 '공한증(恐韓症)'을 지우고자 하고 있다. 경제를 넘어 축구로 세계 중심에 서고자 하는 중국의 꿈은 과연 상암벌에서 신호탄을 쏘게 될까. 마치 중국 원정 같은 홈경기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대한민국 축구팬들의 상암벌 결집 뿐이다.
박상경 기자 p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