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추적 비가 내리던 28일 상주시민운동장에서 만난 수원과 상주는 같은 '끝'이란 단어를 두고 시각이 달랐다.
상주는 '유종의 미'를, 수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를 외쳤다. 상주는 이날 경기에서 16명 말년 병장의 고별식을 치렀다. 핵심 전력이었던 김성환 박기동 박준태 임상협이 마지막 선발 출전했고, 이승기가 벤치 대기했다.
조진호 상주 감독은 "전역 대상자 모두 유종의 미를 남기고 싶다며 출전 의지가 강했고 준비도 많이 했다. 경고누적, 부상·체력 문제를 감안해 출전 멤버를 추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 감독은 "오늘 경기 상당히 껄끄러울 것이다. 우리는 전역자의 투혼이 있고, 수원은 더 치고 올라가려고 한다"고 경계했다. 그도 그럴것이 수원은 비록 10위지만 상위 스플릿 도약의 꿈을 버리지 않고 있다. 33라운드까지 상위그룹에 진입해 과거 명가의 체면은 살려야겠다며 "아직 끝난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서로 다른 간절함으로 만난 두팀에게 승리의 여신은 어느 편도 아니었다. 상주와 수원은 2016년 현대오일뱅크 K리그 클래식 28라운드에서 1대1로 비겼다.
▶'유종의 미' vs '도약의 꿈' 너무 똑같았나
'간절함'의 크기가 비슷했을까. 상주와 수원은 경기 초반부터 거세게 충돌,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였다. 전반에만 수원이 12개, 상주가 6개의 슈팅을 시도하며 한눈 팔 틈을 주지 않았다. 수원이 먼저 웃었다. 서정원 수원 감독의 기대대로였다. 서 감독은 경기 전 "조나탄이 작년 챌린지에서 뛸 때 상주전에서는 꼭 골을 넣더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1개월 전 상주와의 21라운드서 수원 입단 신고포를 쏘아올리며 1대0 승리를 이끌었던 조나탄은 이날도 한몫을 했다. 전반 38분 문전 빈공간을 파고 든 산토스가 오른발 터닝슛으로 골망을 먼저 흔들었다. 이 골을 절묘하게 도와준 이가 바로 조나탄이었다. 아크 왼쪽에 있던 조나탄은 논스톱 침투패스로 산토스에게 연결, 상주 수비망을 허물었다. 공교롭게도 21라운드 조나탄의 골을 도운 이는 산토스였다.
조나탄의 명품 패스 한방에 수원의 간절함이 다소 풀리는 듯했다. 하지만 상주에는 투철한 필승의지로 고별전에 나선 군인정신이 있었다. 투톱으로 공격을 이끈 말년 병장 박기동-박준태가 '유종의 미' 무대의 선봉에 섰다. 40분 아크 정면에서 조영철의 패스를 받은 박기동이 뒤로 슬쩍 흘려주며 수비를 속였다. 그러자 바로 뒤에 있던 박준태가 볼 터치에 이은 오른발 터닝슛으로 '멍군'을 불렀다. 박기동에 치우치느라 박준태를 미처 대비하지 못한 수원 수비라인이 허물어지며 내준 실점이었다. "홍 철을 제외하고 경험없는 수비라인…"이라던 서 감독의 우려가 현실화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더 치열하게 몰아붙였지만…
후반은 더 치열했다. 부딪히고 쓰러지고…. 그렇지 않아도 우천경기가 그라운드 상황이 열악한데 경합 과정에서 위태로운 장면이 속출했다. 수원의 중심 염기훈은 발목 부상으로 실려나가기까지 했다. 양쪽 벤치는 승리욕을 강하게 불태웠다. 공격자원 교체카드를 동원해 한치 양보없는 일진일퇴의 공방을 벌였다. 상주는 김성준 박수창 박희성을, 수원은 권창훈 김종민 조동건으로 맞불을 놓았다. 하지만 '간절함'에 이어 교체전술까지 너무 비슷했던 모양이다. 양팀은 치열하기만 할 뿐 좀처럼 결정타를 만들지 못했고 미끄러운 운동장까지 심술을 부렸다.
경기를 마친 뒤 전역신고식을 치른 상주의 16명 용사들.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지만 후회없는 마지막 '군대축구'였다. 상주=최만식 기자 cms@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