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21일, '골프 여제' 박인비(28·KB금융그룹)는 골프 인생의 정점을 찍었다. 116년 만의 올림픽에서 부활한 여자 골프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올림픽 골프 코스 18번 홀 그린 위에 마련된 시상대의 맨 꼭대기에서 들었던 애국가는 그 어느 노래보다 달콤했다. "그 동안은 '박인비'를 위해 경기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라를 대표해 경기를 했다. 정말 감동적이었다. 18번 홀에서 들은 애국가는 어떤 노래보다 최고였다." '침묵의 암살자'란 별명답게 평소 들뜬 감정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는 박인비도 이 순간 만큼은 마음 속으로 품고 있던 감정을 모두 폭발시켰다.
박인비의 리우올림픽은 그렇게 마침표를 찍은 듯 보였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절정의 순간은 따로 있었다. 23일 영원한 후원자 할아버지와의 포옹은 또 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한국 선수단보다 하루 일찍 귀국한 박인비는 이날 인천공항 입국장을 나오자마자 수많은 취재진에 휩싸였다. 이 모습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던 백발의 노인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처럼 눈가가 촉촉해 졌다. 바로 박인비의 할아버지 박병준씨(84)였다. 손녀 박인비는 인터뷰를 마치고 곧바로 할아버지를 찾았다. 그리고 할아버지 품에 와락 안기며 눈을 감았다. 할아버지는 참고 있던 눈물을 주룩 흘렸다. 박인비는 "할아버지 왜 우세요"라고 말하며 할아버지의 등을 쓰다듬었다. 그러더니 자신이 걸고 있던 금메달을 할아버지의 목에 걸어드렸다. 또 다시 이어진 포옹, 이 장면을 옆에서 지켜보던 박인비의 아버지 박건규씨와 어머니 김성자씨도 함께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할아버지의 한 마디는 더 진한 여운을 남겼다. "(나의) 손녀였던 인비가 이제는 대한민국의 딸이 됐다." 이 말 속에는 환희와 아픔이 함께 묻어 있었다. 2008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최연소 US오픈 우승 이후 긴 슬럼프, 세계랭킹 1위 등극에도 외모 때문에 타이틀 스폰서가 없었던 아픈 과거 등 손녀가 힘들었던 지난 날을 딛고 세계 최고의 골프 선수이자 한국 골프 팬들이 사랑하는 선수가 됐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었다.
박인비의 꿈은 '생각대로' 이뤄졌다. 2013년 US오픈 우승의 재현이 그리던 그림이었다. 저스틴 로즈(영국)는 리우올림픽에서 박인비보다 먼저 금메달을 따내며 재현의 발판을 마련했다. 박인비는 "나는 로즈와 2013년 US오픈에서 동반 우승한 기억이 있다. 이번에도 '그 모습이 재현됐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남자부 시상식을 할 때 나는 연습라운드를 했는데 내 귀에는 애국가가 들리더라.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어떤 기분일까'란 생각을 하면서 준비했다"고 전했다.
모든 걸 이뤘다. 4대 메이저대회도 석권했고, LPGA 명예의 전당에도 입회했다. 올림픽 금메달도 따냈다. '골든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박인비에게 과연 남은 목표가 있을까. 일단 그녀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다. 박인비는 "지난 한 달 반 동안 연습만 하다보니 휴가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못 쓴 휴가를 한 번 써보고 싶다"며 수줍게 웃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훈련 위주로 많이 해서 재활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컨디션 회복에 중점을 둘 것이다. 경과를 봐서 복귀 시기를 결정할 것"이라고 했다.
올림픽 2연패에 대한 욕심은 없을까. 2020년 도쿄올림픽 출전에 대해서는 "장담은 못하겠다. 4년 뒤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 지 잘 모르겠다"며 조심스런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도 "그 때까지 현역으로 활동한다면 올림픽 2연패는 좋은 목표가 될 것 같다"며 여지를 남겼다.
욕심은 끝이 없다. 박인비는 또 다른 우승을 바라보고 있다. 다음달 15일부터 펼쳐질 LPGA 메이저 대회인 에비앙챔피언십이다. 박인비는 "에비앙챔피언십은 마음 속으로 나가고 싶은 대회다. 출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전했다.
인천공항=김진회 기자 manu35@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