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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왜곡 논란에 '덕혜옹주'가 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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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43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순항 중인 대한제국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삶을 그린 영화 '덕혜옹주'(허진호 감독, 호필름 제작). 손예진의 '미친 연기력'을 중심으로 호평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때아닌 역사왜곡 논란을 맞았다. 이에 대해 '덕혜옹주' 제작진은 역사적 모티브로 제작된 '덕혜옹주'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하며 팩트를 기반한 픽션임을 강조했다.

▶ 고종황제의 죽음과 망명 계획

1918년 국내외에서의 독립기운이 활발해지자 독립운동가 이회영은 오세창, 한용운, 이상재 등과 고종의 망명을 계획한다. 고종의 승낙을 얻은 뒤 중국 망명을 도모하지만 1919년 1월 고종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계획은 실패하게 된다. 고종의 공식적인 사인은 뇌일혈이지만, 사망 당일 궁정 나인을 통해 올린 식혜를 마신 직후 복통을 일으켜 사망했다는 의혹은 이후 3·1 운동의 촉발제가 되기도 했다.

'덕혜옹주'에서 그려진 고종(백윤식)은 어린 김장한(이효제)에게 망명 계획을 고백하는 장면 등을 통해 잃어버린 나라를 되찾고자 하는 간절한 의지를 표현한다.

▶ 덕혜옹주의 보온병

만 13세에 일본으로 강제 유학을 갈 수 밖에 없었던 덕혜옹주.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며 그 누구도 믿지 못한 그녀가 보온병을 들고 다니며 그 안에 담긴 물만 마셨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덕혜옹주가 그렇게 행동했던 이유는 바로 아버지인 고종이 일제에 의해 독살 당했다고 믿었기 때문. 이방자 여사가 남긴 자서전에 의하면, 덕혜옹주가 강제 유학으로 도쿄에 도착하여 마중을 나갔을 때 인사를 건네어도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도쿄역에 도착하신 옹주를 마중 나갔을 때에는…(중략) 한국어로 말을 걸어보아도 그 수줍은 미소는 돌아오지 않았다'('흘러가는 대로' 이방자). 이는 덕혜옹주가 일본에서 생활을 시작하기 전부터 이미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덕혜옹주'에서는 일본에 끌려 가는 어린 덕혜옹주(김소현)에게 어머니 양귀인(박주미)이 직접 보온병을 전해주는 장면으로 적국에 끌려가는 딸의 안위를 걱정하는 어머니의 절절한 심정으로 표현되어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 왕족의 상해 망명작전

'덕혜옹주' 속 영친왕(박수영) 망명작전은 실제 역사 속 의친왕 망명 작전에 대한 기록을 참고로 하여 만들어졌다. 항일 의지가 굳건했던 것으로 알려진 의친왕 이강은 고종의 다섯째 아들로, 유학 시절부터 독립운동가들을 만나 독립운동자금을 보태기도 했다. 그는 1919년 11월 9일 신의주를 거쳐 상해 임시정부로 탈출을 시도하는데, 이는 항일 독립운동 단체인 대동단의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그러나 의친왕은 끝내 망명하지 못하고 만주 안동현역에서 일제의 경찰들에게 발각되어 붙잡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과정에서 일제는 조선과 상해뿐만 아니라 일본, 만주, 시베리아까지 긴급 수배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 사건으로 대한제국 구 황족의 한반도 내 여행의 자유가 박탈되고, 의친왕은 공 작위도 박탈되게 된다. 서울신문 김을한 기자의 저서에서 영친왕 망명에 관한 내용이 언급되기도 했다.

1927년 상해임시정부가 영친왕 내외를 유럽 여행을 빙자하여 일본에서 탈출시키고 상해로 망명시키려 시도했으나 밀고자가 있어 계획에 실패했다고 한다. 그러나 영화에서 재구성된 내용은 좀 더 많은 사료와 공식자료로 기록이 남아있는 의친왕 망명 작전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할 수 있다.

영화 속에서 영친왕이 아내 이방자(토다 나호) 때문에 망명을 포기하여 많은 관객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던 장면은, 대한제국의 옛 신하들이 '일본의 패망이 가까워 졌으니 고국으로 돌아가자' 설득하는 과정에서 일본인인 이방자를 데려갈 수 없다고 하자 영친왕이 실제로 귀국을 거절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그려졌다.

▶ 소 다케유키와 덕혜옹주의 정략 결혼

일제의 계략으로 일본의 백작 소 다케유키와 정략 결혼 하게 된 덕혜옹주. 그동안 괴팍한 성격으로 덕혜옹주를 핍박했다고 알려져 왔지만, 남아있는 기록에 의하면 소 다케유키는 덕혜옹주와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 노력했던 인물로 보인다. 덕혜옹주에 대한 소 다케유키의 마음은 그가 덕혜옹주를 그리며 썼던 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덕혜옹주' 속 배우 김재욱이 연기한 소 다케유키는 이러한 사료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캐릭터다. 특히, 일본어에 능통한 김재욱은 소 다케유키의 복잡한 심정을 절절하게 잘 표현해냈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 실존 인물 김장한·이우 왕자

'덕혜옹주'에는 주인공 덕혜옹주(손예진) 외에도 실존인물을 바탕으로 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이 바로 박해일이 연기한 김장한과 고수가 연기한 이우 왕자다. 김장한 캐릭터는 고종이 덕혜옹주의 정혼자로 맺어주려 했던 김장한과 후일 덕혜옹주를 귀국시키는 것에 공을 세운 그의 형 김을한, 마지막으로 일본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항일을 위해 만주로 망명, 독립군 총사령관을 지낸 이청천 장군을 합친 인물이다. 박해일은 강직하고 단단한, 그러면서도 부드러운 리더십을 갖춘 김장한을 특유의 자연스러움으로 연기해내 관객들의 극찬을 받고 있다.

이우 왕자는 의친왕의 차남으로, 실제로 일본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일본군에 들어가 군 기밀을 독립군에 전달하는 등 독립 운동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덕혜옹주' 속 이우 왕자 역시 일본에 있는 독립군 세력을 이끌어가는 강인한 카리스마를 선보인다. 특히 고수는 실제 이우 왕자와 닮은 외모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으며, 허진호 감독이 직접 "이우 왕자와 닮았다는 것을 강조해 고수를 캐스팅했다"며 비하인드 스토리를 밝히기도 했다.

한편, '덕혜옹주'는 일본에 끌려가 평생 조국으로 돌아오고자 했던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녀, 역사가 잊고 나라가 감췄던 덕혜옹주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손예진을 중심으로 박해일, 라미란, 정상훈, 박수영, 김소현, 박주미, 안내상, 김재욱, 백윤식, 고수, 김대명 등이 가세했고 '위험한 관계' '호우시절' '오감도' '봄날은 간다' 허진호 감독의 4년 만에 컴백작이다.

soulhn1220@sportschosun.com 사진=영화 '덕혜옹주' 스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