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힘내세요!"
한국 남자축구 올림픽대표팀이 돌아온 17일 오전. 고개를 푹 숙이고 돌아온 어린 태극전사들을 향해 팬들이 응원을 보냈다. 시종일관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선수들은 그제야 흐릿한 미소를 띄웠다.
결전지 리우로 가기 전, 23세 이하 어린 태극전사들은 '골짜기 세대'라는 단어에 익숙해져야만 했다. 4년 전 런던에서 사상 최초로 올림픽 동메달을 목에 건 형들과 비교해도, '황금세대'라 불리는 2020년 도쿄올림픽 예비후보들에 빗대도 무언가 2%쯤 부족해 보였다. 신태용 감독과 18명의 선수들은 이를 단호히 거부했지만, 그들의 외침은 메아리에 그쳤다. 그래서 더욱 이를 악물고 뛰었다. 말이 아닌 실력으로 보여줘야 했다.
첫 관문을 성공적으로 통과했다. 신 감독과 아이들은 2016년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 챔피언십 겸 리우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올림픽 진출권을 거머쥐었다. 8회 연속 올림픽 진출이라는 금자탑도 쌓았다. 하지만 '골짜기 세대'라는 시선은 쉽사리 바뀌지 않았다. 골 결정력 부족, 수비 불안 등 여기저기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신 감독과 어린 태극전사들은 리우에서의 반격을 노리며 구슬땀을 흘렸다. 매일매일 올림픽 메달을 상상하며 힘겨운 지옥 훈련도 참아냈다.
노력의 결실은 달콤했다. 어린 태극전사들은 피지와의 2016년 리우올림픽 남자 축구 조별리그 첫 번째 경기에서 8대0 대승을 거뒀다. 역대 한 경기 최다 득점 및 최다골 차 승리였다. 류승우는 올림픽 참가 사상 최초로 해트트릭을 완성하며 '류트트릭'이란 기분 좋은 별명도 얻었다. 기세는 계속됐다. 세계 최강으로 꼽히는 독일과 3대3 무승부를 거뒀고, 디펜딩챔피언 멕시코를 1대0으로 꺾으며 8강에 진출했다. 1948년 올림픽 무대에 첫 발을 내딛은 이후 처음으로 조별리그 1위를 차지하는 영광도 누렸다.
꽃길만 이어질 것 같았다. 대진운도 나쁘지 않았다. 한국은 8강에서 온두라스와 맞붙었다. 포르투갈, 브라질 등 다른 팀과 비교하면 비교적 무난한 상대로 평가됐던 상대. 그러나 예상과 달리 한국은 온두라스를 상대로 골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두드리고 또 두드렸지만, 온두라스의 골문은 끝내 열리지 않았다. 0대1 패배. 선수들은 낯선 패배가 믿기지 않는 듯 그라운드에 쓰러져 펑펑 울었다. 힘겨웠던 노력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며 눈물의 농도는 진해졌다. 브라질에서의 한 달이 꿈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승리의 환호성보다 패배의 아픔만이 가슴 깊은 곳에 상처로 남았다.
표정에서 모든 것을 읽을 수 있었다. 17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신 감독과 아이들은 아무 말이 없었다. 검은색 마스크로 얼굴을 반쯤 가린 채 고개를 푹 숙이고 팬들 앞에 섰다. 미안해서였다. 그러나 팬들은 선수들의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팬들은 머나먼 브라질 땅에서 한국을 대표해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일부는 유니폼을 흔들며 "고맙다"고 외쳤고, 지나가던 여행객들도 무사히 돌아온 태극전사들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팬들의 응원을 받은 선수들의 얼굴에는 그제서야 조금씩 미소가 돌기 시작했다. 아쉬운 마음이 사라질 수 없지만, 올림픽을 위해 뛰고 또 뛰었던 발자취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신 감독은 "'골짜기 세대'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최종 예선도 쉽지 않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아쉬움은 있지만 선수들이 똘똘 뭉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본다"며 "앞으로 감독을 또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 역시도 더 큰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브라질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겨루며 경험을 쌓은 어린 태극전사들도 '성장'을 외쳤다. 권창훈(22·수원)은 "아쉽지만 끝은 아니다. 이번 대회가 앞으로 축구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며 "더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문창진(23·포항) 역시 "아직 젊다. 앞으로 배우고 나아가야 할 길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성장하기 위해 더욱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정승현(22·울산)도 더 밝은 내일을 향해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
신 감독과 아이들의 뜨거웠던 2016년 여름은 막을 내렸다. 돌아보면 아쉬움과 슬픔도 있었지만, 승리를 향해 흘렸던 땀방울은 연료가 돼 청춘의 미래를 더욱 환하게 밝혔다. 류승우는 "와일드카드 형들과 코칭스태프까지 원팀이 됐다는 사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성장해야 할 나이다.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웃었다.
인천공항=김가을 기자 epi17@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