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을 위해 4년을 기다렸다.
지구 반대편인 남미에서 열리는 사상 첫 올림픽에 대한 기대는 컸다. 양궁의 첫 싹쓸이 금사냥, 사격 진종오의 올림픽 첫 3연패, 펜싱 박상영의 깜짝 금메달이 터질 때만해도 리우의 하늘은 금빛이었다.
그러나 변화무쌍한 현지 날씨처럼 반환점을 돌자 상황은 180도로 변했다. 메달 레이스의 가속력이 급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눈물의 의미가 달라졌다. 뜨거운 기쁨의 눈물이 사라진 자리를 아쉬운 아픔의 눈물이 채우고 있다. 물론 피땀어린 노력은 메달보다 더 가치가 있다. 그러나 승부의 세계는 늘 그렇듯 1위부터 꼴찌까지 줄을 세운다.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한국 선수단의 목표는 '10-10'이었다. 금메달 10개 이상을 수확해 4회 연속 종합메달 순위 10위 안에 든다는 계획이었다. 리우올림픽의 종착역도 얼마남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 선수단에는 한숨만이 가득하다. 21세기 들어 최악의 올림픽으로 역사에 남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경고등은 이미 켜졌다. 여자 배구대표팀이 16일(이하 한국시각) 4강 진출에 실패하면서 단체 구기 종목에서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1972년 뮌헨 대회 이후 44년 만이다. 불참한 1980년 모스크바 대회를 제외하고 1976년 몬트리올 여자 배구(동메달)로 시작된 여정은 1984년 LA 여자 농구와 여자 핸드볼(이상 은메달), 1988년 서울 여자 핸드볼(금메달), 남자 핸드볼과 여자 하키(이상 은메달), 1992년 바르셀로나 여자 핸드볼(금메달), 1996년 애틀랜타 여자 핸드볼과 여자 하키(이상 은메달), 2000년 시드니 남자 하키(은메달), 야구(동메달), 2004년 아테네 여자 핸드볼(은메달), 2008년 베이징 야구(금메달), 여자 핸드볼(동메달), 2012년 런던 남자 축구(동메달)로 이어졌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메달 레이스가 뚝 끊겼다.
리우올림픽 단체 구기 종목은 남자의 경우 축구가 유일했고, 여자는 배구, 핸드볼, 하키에서 메달 획득에 도전했다. 배구에 이어 축구가 8강에서 멈췄고, 핸드볼과 하키는 조별리그를 통과하지 못했다.
비단 단체 구기 종목의 눈물이 전부가 아니다. 17일 오전 현재 한국 선수단의 성적은 금메달 6개, 은메달 3개, 동메달 5개로 10위권(11위) 밖으로 밀려났다. 이틀 연속 메달 소식이 끊겼다. "10-10은 물건너갔다"는 탄식이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조영호 대한체육회 사무총장은 "선수단이 부진해 죄송하다"고 했다.
금메달을 떠나 메달 총수에서도 21세기 들어 최저를 예약했다. 현재까지 메달 개수는 14개에 불과하다. 마지막 남은 희망인 태권도와 여자골프, 손연재의 리듬체조에서 메달을 추가하더라도 2000년 28개, 2004년 30개, 2008년 31개, 2012년 28개를 넘을 수 없다. 더 나아가 1984년 LA 대회 이후 32년 만에 총 메달 개수가 20개 이하로 떨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LA 대회의 메달 개수는 19개였다. 반면 1988년은 33개, 1992년은 29개, 1996년은 27개였다.
메달 경쟁에서 축 늘어진 것은 역시 양궁을 제외한 전통적인 효자 종목에서 충격의 늪에 빠졌기 때문이다. 유도가 '노골드'로 대회를 마쳤고, 배드민턴도 이변의 희생양으로 전락했다. 레슬링에서도 힘을 못쓰고 있다.
박상영을 제외하고는 '깜짝 스타'도 사라졌다. 예상 밖의 서프라이즈 메달은 전체 선수단의 사기를 높이는 촉매제 역할을 하지만 아쉬운 눈물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부담감을 가중시켰다. 선수단 전체의 발걸음도 무거워졌다.
리우올림픽은 22일 오전 8시 폐막식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과연 마지막 반전은 일어날까. 전망이 썩 밝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김성원 기자 news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