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의 신' 양학선(24)이 빠진 도마 세상은 북한판 '도마의 신' 리세광(31)의 천국이었다.
양학선과 리세광은 숙명의 라이벌이다. 둘은 서로 자신의 이름을 딴 '세상에 단 하나 뿐인' 기술의 주인공들이다. 하지만 둘이 나란히 한 무대 위에서 경쟁한 적은 그리 많지 않다.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도마 금메달로 화려하게 등장한 리세광은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야심차게 2연패를 노렸으나, 대회 직전 북한선수단의 나이조작 혐의가 불거지며 국제체조연맹(FIG)으로부터 2년 출전정지 중징계를 받았다. 공교롭게도 리세광의 이름이 사라진 2010년 이후 '도마 신성' 양학선은 승승장구했다.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2011년 도쿄세계선수권 금메달에 이어 2012년 런던올림픽 금메달까지 휩쓸었다.
그리고 다시 리세광 시대가 열렸다. 양학선이 부상으로 주춤하며 각종 대회에 나서지 못하는 사이 리세광은 2014년과 2015년 세계선수권 2연패로 최고의 자리를 되찾았다. 그리고 리세광은 양학선이 불참한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차지했다. 리세광은 16일(한국시각) 브라질 리우 올림픽 아레나에서 열린 2016년 리우올림픽 남자 도마 결선에서 1, 2차 시기 평균 15.691점을 기록하며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예선에서 이미 15.433점을 받으며 1위로 통과했던 그는 결선에서도 깔끔한 연기로 경쟁자들을 압도했다.
1차시기에서 난도 6.4점의 드라굴레스쿠 파이크(무릎 펴고 앞으로 몸접어 2바퀴 공중돌며 반바퀴 비틀기)를 시도한 리세광은 착지가 다소 불안해 수행점수 9.216점에 그쳤다. 합계 15.616점. 2차 시기에서 주무기인 난도 6.4점의 리세광(뒤로 몸굽혀 2바퀴 공중 돌며 1바퀴 비틀기)을 시도했다. 착지까지 깔끔하게 성공시키며 수행점수 9.366을 더해 총 15.766점을 얻었다. 두 팔을 번쩍 든 리세광은 코치와 함께 포옹하며 금메달을 확신했다. 결국 리세광은 15.514점을 기록한 데니스 아블리아진(러시아)과 15.449점의 겐조 시라이(일본)를 따돌리고 금메달을 차지했다. 북한의 장 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시상자로 나선 이날 금메달을 목에 건 리세광은 시상대 위에서 인공기를 향해 거수경례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리세광은 경기 후 진행되는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제법 긴 시간동안 외신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다소 난감한 듯한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국내 취재진들의 인터뷰에도 응했다. 리세광은 "우리 군대와 인민들에게 크나큰 승리를 안겨주고, 경애하는 지도자 김정은 동지께 승리의 보고, 영광의 보고를 드릴 수 있게 돼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리세광은 금메달을 예상했냐는 질문에 "그렇다. 승리의 기운을 가지고 브라질에 왔다"며 자신있게 말했다. 금메달의 원동력으로 "우리의 제일 큰 힘은 정신력이다. 정신력 덕분에 오늘의 금메달이 이뤄진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라이벌' 양학선에 대한 생각이 궁금했다. 리세광은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양)학선 선수가 이번에 부상으로 인해서 못나왔는데 체조는 학선 선수가 대표하는 게 아니다"라고 답했다. 양학선이 있었더라도 금메달을 딸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라이벌이 없었던 데 대한 허전함도 있었던 것 같다. "그저 치료를 잘해서…"라며 말 끝을 흐렸다. 양학선과 제대로 붙어보지 못한 아쉬움의 표시였다.
리세광은 도쿄올림픽 출전에도 강한 의지를 보였다. 그는 "아직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힘 닿는데 까지 해보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양학선과 리세광은 라이벌이지만 아직 제대로 진검 승부를 펼치지 못했다. '한국 도마의 신'과 '북한 도마의 신'이 펼치는 신의 전쟁, 4년 뒤 도쿄올림픽이 그 무대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박찬준 기자 vanbasten@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