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못이기는 겁니까."
4년 전 일이다. 해외 언론이 런던 올림픽에 참가한 일본 유도 선수에게 다소 공격적인 질문을 던졌다. 7명의 남자 대표팀은 '노골드', 여자 대표팀에서만 1개의 금메달이 나온 직후였다.
일본은 유도 종주국이다. 1964년 도쿄 대회부터 2008년 베이징 대회까지 유도에서만 총 65개(금35·은15·동15)의 메달을 쓸어 담았다. 2004년 베이징에서는 8개(남자 3개·여자 5개)의 금메달을 독식하기도 했다. 하지만 런던에서 체면을 구겼다. 최대 4개의 금메달을 자신하던 남자 대표팀은 '빈손'이었다. "도대체 왜 이기지 못하느냐". 선수들은 별다른 답변을 내놓지 못한 채 "분하다"고만 했다.
세계랭킹 1위가 4명이나 포진해 '판타스틱 4'라 불렸던 2016 리우 올림픽 한국 유도 남자 대표팀. 마치 4년 전 일본 대표팀을 보는 듯 하다. 10일(한국시각) '마지막 희망'으로 불린 90㎏급 곽동한(24·하이원)마저 결승 진출에 실패하면서 자칫 노골드에 그치는 것이 아니냐는 탄식어린 우려가 터져나왔다. 유도에서 노골드 충격은 2000년 시드니 대회(은2·동3)가 마지막이었다. 애초 여자 대표팀은 세계 정상권과 거리가 있어 남자 선수들에 대한 기대가 컸다.
곽동한은 이날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파크 카리오리카 아레나2에서 열린 준결승에서 바를람 리파르텔라니(조지아·세계랭킹 5위)에게 한판패 했다. 경기 시작 39초 만에, 또 종료 2분45초 전에 잇따라 허벅다리걸기에 넘어가며 절반 2개를 빼앗겼다. 업어치기가 장기인 그는 상대 주특기 허벅다리걸기를 경계했지만 방어에 실패했다. 완패였다. 다만 첫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내면서 유종의 미를 거뒀다. 마르쿠스 뉘만(스웨덴·세계랭킹 4위)과의 동메달결정전에서 경기 시작 2분31초만에 전광석화 같은 업어치기로 상대를 눕혔다.
그래도 아쉬움이 짙게 남는다. 유도 대표팀은 대회에 앞서 남자 대표팀에게만 최소 2개의 금메달을 낙관했다. 곽동한을 비롯해 김원진(양주시청·60㎏급), 안바울(남양주시청·66㎏급), 안창림(수원시청·73㎏급) 모두 세계랭킹 1위였다. 그 중 안바울과 곽동한은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하며 '절대 강자'로 불렸다. 최근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금빛 메치기'는 없었다.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우선 상대의 집중 분석을 이겨내지 못했다. 유럽 선수들은 '타도 한국'을 외치며 이번 대회를 준비했다. 가뜩이나 '판타스틱 4'의 주특기는 모두 업어치기다. 상대는 소매만 내주지 않으면 승산이 있다는 판단을 했다. 극도로 움츠리고 나왔다. 시간이 흐를수록 다급해지는 쪽은 우리 선수였다. 결국 서두르다 뼈아픈 되치기나 불의의 일격을 허용하는 패턴을 보였다.
지나치게 일본만 경계한 것도 독으로 작용했다. 대표팀은 일본 선수와 4강 이후에 만나는 시나리오를 짜기 위해 올림픽 전 많은 국제대회에 참가했다. 대진 추첨에서 좋은 시드를 받으려면 세계랭킹을 높일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로 인해 상대적으로 정보가 부족한 유럽 선수를 만날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세계랭킹 1위인 한국 선수들을 훤히 꿰뚫고 있었지만, 우리는 아니었다. 세계랭킹 1위의 허상이 불러온 역효과였다.
대회 초반 금메달이 나오지 않으면서 그 부담이 다음 선수들에게 도미노처럼 전가된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첫 날 시상대에 서지 못한 김원진, 다음날 결승에서 세계 랭킹 26위에 충격적인 한판패를 당한 안바울. 그 뒤 안창림마저 조기 탈락 수모를 겪으며 대표팀 분위기는 참담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세계랭킹 1위 곽동한의 경우 '반드시'라는 중압감과 부담감을 안고 싸워야만 했다. 제 기량을 온전히 발휘하기 힘든 조건이다.
그래도 이들의 유도가 끝난 건 아니다. 4년 뒤 도쿄 올림픽은 또 열린다. 4명 모두 다시 출발대에 서서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한판승의 사나이 '작은 거인' 최민호 코치도 첫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 2004 아테네 대회 남자 60㎏급에서 동메달을 목에 건 뒤 4년 뒤 베이징에서 시상대 꼭대기에 섰다. 이번이 첫 올림픽 출전인 '판타스틱 4'는 최 코치처럼 아프지만 값진 경험을 했다.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박찬준 기자 hamts7@sportschosun.com